[낱말인문학]경청이란 무엇인가

이상국 논설실장입력 : 2019-07-01 09:38

[박근혜 전 대통령.]



2016년 박근혜 정부 후반기에 교수신문이 그해의 4자성어로 '혼용무도(昏庸無道)'를 꼽아 사람들을 놀라게 한 일이 있다. 현직 대통령을 향한 직설적 비판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혼군(昏君)은 판단력과 이해력이 둔한 리더를 말하고, 용군(庸君)은 큰 것을 읽지 못하고 자잘한 것에 얽매어 제대로 처신을 못하는 용렬한 리더를 뜻하며, 무도지국(無道之國)은 그런 리더로 인해 나라에 바른 원칙이 살아있지 못한 상황을 의미하고 있지 않은가. 많은 이들이 이런 대담한 지적에 공명을 했다는 게 더 문제였다. 

대통령의 혼용무도가 경청(傾聽)의 부족에서 나온다는 것은 당시에는 그다지 거론되지 않았던 것 같다. 정권 후반기에 '인(人)의 장막'에 둘러싸인 리더가 국가의 중요한 문제들에 대한 상황 파악의 끈을 놔버리고, 여론의 이름으로 쏟아지는 '반대의견'들을 공격으로만 이해하며 이미 문제가 드러나고 있는 주장을 고집하는 일. 그것이 혼용무도로 가게 되는 치명적인 길이었다. 

오늘 아침 한 신문에서는 이런 글이 보인다. "박근혜식 불통이 소통채널 자체를 봉쇄한 것이었다면, 문재인식 불통은 소통채널은 열어뒀지만 소통효과가 안 나온다는 것. 쉽게 말해 백날 얘기를 해도 변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 필자는 문 대통령 특유의 장점이던 경청마저 실종될 조짐이 보인다고 말하고 있다. 경청이 사라졌다는 것은 권력자의 단순한 태도변화가 아니라 박근혜 정권이 보여줬던 독단과 유체이탈의 폐단들이 살아나고 있다는 의미도 되니 무서운 말이다. 이쯤에서 대체 경청이란 무엇인지 한번 살펴보면 어떨까.

경청을 경청(敬聽)으로 이해하는 분들도 있지만, 이건 조금 어색한 말이다. 존경하는 마음으로 들으면 그것이 경청이 아니냐고 하지만, 듣는 일에 다른 생각이 끼면 오히려 잘못 듣기 쉽다. 존경심이 만들어낸 선입견이 잘 듣는 일을 방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인가를 혹은 누군가를 지나치게 존중하면 건전한 판단력이 흐려진다. 우스개로, 생전의 성철스님이 산불조심을 거꾸로 읽으면서 심조불산이라고 했더니, 뒤따르던 보살들이 마음을 붙들어 흩어지지 않게 하라(心操不散)는 명언이라고 받아 적는 것도 다 존경심이 빚어낸 난청(難聽)이다.

듣는 일에 공경을 더하는 방법은 오직 경청(傾聽)이 있을 뿐이다. 경청은 귀를 기울여 듣는 일을 말한다. 귀를 기울이는 것은 의식적인 동작이기도 하지만, 무엇인가를 자세히 듣거나 잘 듣고자 할 때 저절로 취하게 되는 동작이다. 귀를 기울이는 것은 우선 몸을 기울이는 것을 포함한다. 조금이라도 소리의 진원지와 가까워지려는 동작이다. 굳이 몸을 기울이지 않더라도, 다른 감각을 끄거나 줄이고 귀에다 듣는 감각을 몰아주는 일이 바로 경청이다. 청각은 시각에 비해 지각의 정도가 상대적으로 낮다. 그만큼 제대로 잘 듣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란 얘기다.

경청이란 이런 청각 자체의 인식도(認識度) 개선에 주력하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소리의 연결과 구성과 흐름과 미감, 이야기의 맥락과 말 속에 숨은 의미까지를 읽어내는 '깊이 있는 듣기'가 되어야 경청이란 표현을 쓸 수 있다. 음악을 듣는 일도 경청이 가능하며, 어떤 사람의 지시나 의견을 듣는 것도 경청이 가능하다. 또, 강연이나 이야기, 혹은 잘 들리지 않는 무엇을 집중하여 읽어내는 것 또한 경청이라고 할 수 있다. 경청은 귀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주의를 기울이고 마음을 기울이며 또한 감수성과 뇌활동을 투입하는 것이기도 하다.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해 경청하는 일은 할 수도 없지만, 그게 좋은 경청도 아니다. 경청이 의미와 가치를 지니려면, 무엇을 경청해야 할 것인가를 선택하고 결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경청은 같은 '소리'를 다르게 들을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주의깊게 듣는 것은, 흘려듣는 행위가 파악하거나 인식하지 못했던 중요한 무엇을 소통하는 일이다. 경청은 자기 귀가 듣고 싶은 것만을 듣는 확증편향 혹은 '맥락의 편집'이 아니라, 저쪽이 말하고자 하는 것의 진의를 공명하며 읽어내는 힘이다. 자기를 반대하는 말들이 어느 순간엔가 저절로 걸러져서 들리지 않을 때, 그때가 가장 위험한 때이다. 

경청은 스스로를 각성시키는 힘이 있다. 타자의 입장과 상대의 형편을 읽어내는 힘은 경청에서 생겨나며, 자신의 생각을 수정하고 자신의 의견을 보완하거나 검증하는 기회도 경청에서 얻을 수 있다. 대통령들이 이게 잘 안되는 까닭은 누군가가 중간에 끼어들어 권력자의 귀를 장악해버리기 때문이다. 혼(昏)은 결국 귀가 어둡다는 뜻이고, 용(庸)은 어두운 귀가 판단을 어둡게 해서 결국은 행동이 어둡다는 뜻이다. 경청이 불가능해진 리더는 혼용무도에 이를 수밖에 없다. 

총명(聰明)은 귀 속에 지혜가 있다는 말이다. 경청하는 인간에 대한 옛사람들의 경배다.

                               이상국 논설실장


 
창간12주년 이벤트 아주탑골공원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네티즌 의견 0
    0 / 300

    실시간 급상승

    9.9초 더보기
    창간12주년 이벤트 아주탑골공원

    아주 글로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