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적폐판사의 ‘뒷담화’

장용진 기자입력 : 2019-06-17 08:41
얼마 전 ‘엘리트 판사’로 승승장구하던 현직 법관 한명이 사표를 냈다. 이름을 말하지 않아도 누구나 아는 국내 최대의 로펌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한다. 곧바로 옮기면 말이 나올까 염려한 탓인지 한동안 쉬었다가 갈 예정이란다.

현직 시절 그는 입이 무겁기로 유명했다. 법리에 대해서는 해박한 설명을 하면서도 법원 내부 분위기에 대해서는 알 듯 모를 듯한 웃음만 지을 뿐 단 한번도 입을 연 적이 없었다.

하지만 사표를 던지고 난 뒤 마음이 바뀌었던 모양인지, 그는 어느 기자와의 저녁자리에서 ‘방언’이라도 터진 듯 법원의 내밀한 이야기를 떠들어댄 모양이다. “들려 드릴 말씀이 많다”고 시작한 그의 ‘뒷담화’는 상당한 수준의 팩트를 담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늘 그렇듯 팩트만큼의 ‘조미료’와 '사적인 감정'도 상당부분 첨가된 듯했다.

현직 대법원장을 ‘어·대(어쩌다 대법원장)’라고 조롱한 그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 대해서도 “가장 극단적인 선택만 하려 한다”고 비난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대법원 재판연구관들이 나름대로 진보적인 판단이라고 가지고 갔는데, 대법원장은 더 진보적인 것을 요구한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술자리 분위기가 무르익자 그는 "김명수 대법원장 취임 초기에는 다른 대법관들이 김 대법원장을 왕따시키기도 했다"면서 “그런 자를 내가 도와줬는데 검찰 수사를 받게 했다”며 배신감을 쏟아내기도 했다. 알고 보니 그는사법농단에 가담한 혐의로 검찰에 불려가 치도곤을 당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대법원장이 구명을 안 해줬다는 거다.

그래서 그랬는지 그의 ‘뒷담화’는 도를 훌쩍 넘기기도 했다. ‘촛불혁명이나 국정농단 사태 등이 아니었다면 대법원장이 되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겸손해한 대법원장의 말을 두고 “문재인 대통령 덕분에 대법원장이 됐다”고 말한 것처럼 꼬아서 해석하기도 했다.

그가 잘나갔던 양승태 시절이었다면 어쩜 ‘판사 블랙리스트’에 오르고도 남았을 수준의 발언인 데다, 아무리 술자리지만 판사의 발언치곤 품격이 떨어진다.

그의 말을 가만히 살펴보면, 자신이 잘나갔던 시절의 사법부는 정상이었고 할 만한 사람들이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는데, 자신을 내친 지금의 사법부는 비정상이고 ‘감’도 안 되는 자들이 차지하고 있다는 취지로 들린다.

어찌 보면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조롱이나 의도적 왜곡, 비방과 비슷해 보인다는 생각도 든다. 나보다 잘나고 똑똑한 사람들이 어련히 잘 알아서 하겠냐마는 대한민국 사법부, 걱정된다.

[사진=장용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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