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인상 여파, 내가 사는 아파트에..."경비원 줄일까요" 투표 단지 속속

윤지은 기자입력 : 2019-05-26 17:18
최저임금 인상→무인화 선호→인력 감원 요구..."얼마나 아낀다고 사람 줄이냐" 반발하기도 "최저임금 인상은 변수 아닌 상수...입주민들도 관리비 인상 공감할 필요 있어"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최저임금 인상과 무인 관리 기술 향상 등으로 관리비 감축 차원에서 경비 또는 청소 등 저임 인력 감원을 추진하는 단지들이 늘고 있다.

이 단지들은 지은 지 오래됐고 무인 관리가 안되는 곳이 대부분이다.

특히 한 채당 가격이 10억원을 훨씬 웃도는 서울 강남권 단지 중에도 여전히 경비 인력 감원을 추진한 곳이 잇따라 등장했다.

이 과정에서 "인건비가 줄면 얼마나 준다고 사람을 자르느냐"는 반발의 목소리도 이어져 단지 주민끼리 대립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26일 서울 서초구 방배동에 위치한 B아파트 단지 주민 모씨는 "얼마 전 입주자대표회의가 관리비 절감을 위해 경비원 감원을 묻는 찬반투표지를 보내왔다"며 "이전에도 감원 주장이 제기됐지만 사그라졌는데, 일부 거주자가 계속 감원 의견을 제기하자 입대위도 버티기 힘들었던 것 같다"고 전했다.

이 단지 관리사무소 관계자 A씨는 "주민 대상으로 투표용지를 받고 있는데 반대가 많아 부결 가능성이 높다"며 "주민 대다수는 그거(관리비) 얼마나 준다고 감원을 하냐는 입장이다. 실제로 무인경비시스템 업체들은 경비원 한 분 인건비와 맞먹는 월 200만원씩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이어 "일부 젊은 분들은 무인화를 원하지만 우리단지 주민 대다수는 60~70대 어르신들이라 무인화를 오히려 불편하게 여긴다"면서 "투표용지 가지러 가면 경비원들이 아무리 나이가 있어도 아직 먹고 살아야 하고 책임져야 할 가정도 있는데 그럴 수 있는 거냐고 나를 혼내는 어르신들이 많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현상은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이에 따른 무인화 선호 확산이 영향을 미쳤다는 지적이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한 자릿수 증가율을 보였던 최저임금은 문재인 정부 들어 16.4%, 10.9% 등 두 자릿수 인상을 했다.

강남권뿐 아니라 수도권 일부 단지들 사이에서도 인력 감축을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경기도 화성시 S아파트 단지 주민 모씨는 "지난 4월 입대위가 경비원을 7명에서 5명까지 줄이겠다고 의결했는데도 여전히 경비원 수는 7명 그대로"라며 "4월 관리비도 경비원 인건비가 줄지 않아 그대로 2000만원 이상이 지출될 것"이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경비인력 감축을 결정한 단지도 적지 않다. 인천시 연수구 송도동 E아파트 단지는 최근 청소비를 줄이기 위해 인력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이 단지 동대표 모씨는 지난 24일 입주자 커뮤니티에 "우리 단지는 타 단지 대비 규모가 큰 데다 신규 입주 단지여서 청소비가 많이 드는 게 사실"이라며 "현재 32명인 청소인력에서 7명을 빼면 절감 예상액은 월 1738만7536원"이라고 알렸다.

아파트 단지 종합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J업체 관계자는 "보통 1년 단위 계약을 맺는데, 노동법 강화 등으로 계약 파기라는 극단적 선택을 하는 단지는 없지만 재계약률이 낮은 건 분명하다"며 "단지별로 여러 이유가 있지만 인건비가 가장 큰 이유다. 관리비 가운데 인건비가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이 같은 현상이 사회 전반에 깔리고 있는 건 아니다. 이상혁 노무사는 "문재인 정부 집권 초기 최저임금이 이슈가 되면서 몇 건 상담이 있었지만 요즘은 뜸하다"며 "최저임금이 인상에 따른 충격이 어느정도 흡수된 듯하다"고 말했다.

최저임금 인상보다는 다른 이유가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도 따랐다. 박사영 노무사는 "물 들어왔을 때 노 젓는다고 예전부터 구조조정할 의도가 있다가 최저임금 인상을 구실 삼아 (인력 감축을) 단행하는 경우가 나오는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이상혁 노무사는 "기술의 발전에 따라 관리시스템을 무인화하는 편이 편리하겠다는 판단에 인원을 감축하는 것"이라며 "예전에는 출차 시에도 사람이 필요한 경우가 있었지만 이젠 아니다. 이에 따라 한 명이 담당할 수 있는 업무 스코프도 더 넓어진 것"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기계화 선호가 늘며 재계약이 어려워졌다는 경비용역업체도 있었다. G업체 관계자는 "재계약 시점에 우리와 안 하고 기계 쪽과 한다는 분들이 많지는 않지만 있다"며 "대다수 아파트 단지는 최저임금 인상으로 경비원을 줄이기보단 '휴게시간'을 늘리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위탁관리회사 W업체 관계자는 "어떤 단지는 직원 근무시간보다 휴게시간이 더 긴 경우가 있는데, 이런 경우 노동부에서 휴게시간의 일부도 업무시간으로 잡아 정산해주라고 할 수도 있다"며 "이 때문에 휴게시간을 줄이기보다 무인경비를 택하는 단지도 나오는 것"이라고 전했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이 인력 감축의 도화선이 된 건 맞지만, 최저임금 이슈가 '변수'가 아닌 '상수'가 된 지금은 입주민들도 보다 성숙한 대처를 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W업체 관계자는 "어떤 단지는 직원에게 '임금정산'을 요구하기도 한다"며 "4대보험을 들지 않는 고령자를 채용해놓고, 4대보험 미적용으로 아낀 금액만큼을 토해내라 요구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단지별로 정해둔 관리비 수준이 있는데 입주민들은 이를 늘릴 생각이 없고 위탁관리회사가 금액을 맞춰주길 바란다. 위탁관리회사가 관리비를 낮출 수 있는 방법은 에너지 절감 정도인데, 요즘은 위탁수수료까지 깎으라고 하는 판이다. 1000가구 규모 아파트는 평균 위탁수수료가 평당 7원, 월 30만원정도"라며 "입주민들도 관리비 수준을 높이는 데 동의할 필요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진=서울 서초구 방배동 B모 아파트 입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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