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度 넘은 금융포퓰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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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운 금융부 부장
입력 2019-05-09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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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운 금융부장]

미국은 2011년, 직불카드 수수료를 건당 21센트로 제한하고 정산수수료율을 결제액 대비 0.05% 이하로 못 박는 내용이 담긴 ‘도드-프랭크 금융개혁법’ 개정안을 시행했다.

카드발급 은행의 이익을 줄여 소비자와 가맹점의 혜택을 높이겠다는 취지였다. 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이었지만 전형적인 금융 포퓰리즘의 하나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결국 수익이 떨어진 은행이 고객 혜택을 축소하고 직불카드 발급을 줄이자 소비자는 카드를 해지하고 시장은 위축됐다.

국내에서도 도드-프랭크법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한국의 금융 경쟁력이 포퓰리즘에 휘둘려 끝없이 추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 산업의 후진성에다 정부의 일방적인 정책까지 겹치면서 총체적 난국에 처한 상황이다.

가장 대표적인 정책이 바로 카드수수료다. 정부는 소상공인의 비용 부담을 덜고 양질의 일자리를 만든다는 명분으로 카드수수료 인하 방책을 꺼내들었다. 하지만 소비자들의 혜택만 줄어들고 있는 실정이다.

이번 정부는 벌써 세 번에 걸쳐 수수료를 인하했다. 그러자 수익이 떨어진 카드사들은 카드 부가서비스 유지 의무 조항을 현재 3년에서 1년으로 줄여 달라고 당국에 요청하고 있다. 포인트·할인 등 고객에 대한 의무 서비스 기간을 줄여 수익 악화를 최소화하겠다는 취지다. 소상공인의 표심을 얻기 위한 정부의 포퓰리즘이 기업과 소비자 피해로 고스란히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올해 1분기 카드사들의 당기순이익은 기업별로 최대 40%까지 떨어졌다. 혜택이 두둑하던 카드상품들은 최근 들어 무더기 단종되면서 소비자들의 피해가 만만치 않다.

포퓰리즘에 의한 금융산업의 경쟁력 저하는 금융혁신도시 정책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영국 컨설팅그룹 지옌이 최근 공개한 국제금융센터지수(GFCI) 조사 결과 서울은 세계 112개 주요 도시 중 36위, 아시아권에서는 11위로 대만 타이베이, 중국 칭다오에도 밀렸다. 2015년에 6위였던 서울이 3년여 만에 급락한 것은 인적·물적 인프라 집결이라는 금융허브의 속성을 거스른 탓이다.

서울에 있던 주택금융공사·예탁결제원·자산관리공사 등 수많은 금융공기업이 2014년 이후 줄줄이 부산 등으로 이전했다. 국가 균형발전 정책에 의해서다.

뉴욕과 런던이 세계 1·2위를 지키고 있는 이유는 글로벌 금융사와 금융 관련 기관을 집중 배치해 비즈니스·협업·국제행사 기회를 키우고, 우수한 인재를 끌어들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내에선 부산마저 2015년 24위에서 올해 46위로 떨어졌으니 모두를 위한다는 정책이 모두를 패자로 만들고 있다.

현 정권은 전라북도를 제3금융 중심지로 지정하겠다며 대선 공약을 내세운 바 있다. 최근 정부가 지정을 보류해 부산 등에 인프라를 더욱 집중시키기로 했지만, 포퓰리즘으로 인한 탁상공론을 여실히 보여준 단적인 예다.

최근에는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기업은행 등 주요 국책은행이 벌써 정치 외풍에 휘말리기 시작했다. 각종 선거 때마다 불거진 국책은행 본점의 지방 이전이 다시 수면 위로 부상하면서 국책은행 내부에서는 금융경쟁력은 차치하고 일할 분위기라도 만들어 달라는 하소연이 나오고 있다. 총선을 11개월 앞둔 정치권의 전형적인 포퓰리즘 행보다.

경기침체로 신음하는 중소 상공인을 지원하고 지역 균형 발전을 추구한다는 명분에 반대할 사람은 많지 않다.

하지만 민심을 달래기 위한 금융 포퓰리즘으로 인해 기업과 소비자가 희생하고, 금융 산업 전체가 후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금융시장의 경쟁 원리는 무시한 채 모든 문제를 ‘관치’로 해결하려는 오래된 병폐가 되풀이 돼서도 안 된다.

정치권과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시장에서 공정한 경쟁이 이뤄지도록 룰을 만들고 시장질서가 유지되도록 감시하는 것이다. 또 한국이 선진금융 국가로서 자리매김하도록 지원해야 한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또다시 보여주기식 정책을 펼친다면 기업과 소비자, 나아가 지역사회에 치명적일 수 있다는 점을 정부와 정치권은 분명히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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