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6 가고 924 오고"...亞 과로문화 변화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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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세미 기자
입력 2019-05-08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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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96' 성토하는 중국..“과로 강요 말라”

  • 日, 근무방식 개혁으로 인재 유치

  • ‘924’ 트렌드 이끄는 호주·뉴질랜드

일과 삶의 균형을 뜻하는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이 세계적인 화두로 부상하면서 아시아 각지에서도 악명 높은 과로 문화를 탈피하기 위한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지역마다 변화의 속도는 다르지만, 근로 시간을 줄이고 일하는 방식에 유연성을 확대하는 추세는 분명해 보인다.

◆'996' 성토하는 중국...“과로 강요 말라”

마윈 알리바바 회장은 최근 '996'을 옹호했다가 한바탕 곤욕을 치렀다. 지난달 한 행사장에서 ”나는 젊어서 996은 물론 12·12(하루 12시간씩 12개월 근무)까지 했다”면서 “8시간 일하려는 직원은 필요가 없다”고 한 게 발단이 됐다. 996은 아침 9시부터 밤 9시까지 주6일 근무하는 것을 뜻하는 말로 중국 IT업계에 만연한 과도한 초과근무 문화를 일컫는다.

당장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여론이 들끓었다. 중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인으로 꼽히는 마윈을 향해 “자본가의 진면목을 드러냈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996에 반대하는 ‘996·ICU’ 캠페인이 벌어지기도 했다. 996을 계속하다간 중환자실(ICU) 신세를 면치 못한다는 의미다. 중국 관영언론까지 나서서 현행 노동법은 하루 8시간, 주 40시간 근무를 규정한다며 쓴소리를 냈다. 결국 마윈 회장은 젊은 직원들에게 열정을 강조하기 위한 취지였다고 해명해야 했다.

중국 IT업계에서 996이 관행으로 통하던 현실을 감안할 때 반발의 강도는 예상을 뛰어넘었다는 지적이 나왔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장시간 노동에 대한 불만이 쌓이고 있었다는 방증이다. 이런 여론을 감안한 듯 중국공업정보화부(공신부)와 베이징시는 5일 996 근무제를 주제로 회의를 열어 정부 주도의 근로 환경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중국의 주요 정책 방향을 제시하는 국책연구기관인 사회과학원은 이미 '2017~2018년 중국휴식발전보고서'를 통해 중국인의 하루 평균 휴식시간이 2시간 27분에 불과해 선진국의 절반 수준이라면서 휴가 확대를 권고한 바 있다. 그러면서 2030년까지 하루 9시간씩 근무하는 주4일제의 전국 도입을 목표로 제시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日, 근무방식 개혁으로 인재 유치

장시간 근로를 '미덕'으로 여기던 일본에서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특히 고령화와 저출산 속에서 일손 부족에 시달리는 기업들은 인재를 유치하고 직원의 이탈을 막기 위한 유인으로서 일하는 방식의 변화를 꾀하고 있다. 

재팬타임스에 따르면 유니클로를 운영하는 패스트리테일링은 지역 매장 정직원들에 한해 2015년 일찌감치 주 4일제를 도입했다. 근로시간은 주 40시간으로 같지만 나흘 동안 몰아서 일을 한다. 상·하수 엔지니어링 기업인 메가워터도 지난해 여름부터 직원 1000명을 대상으로 이와 동일한 조건의 실험을 진행 중이다. 

하루 8시간씩 주 4일 근무를 하고 급여를 낮추는 방식도 있다. 야후재팬은 2017년 4월부터 초등학생 이하 자녀를 두거나 노부모를 모시는 직원들을 대상으로 이 제도를 도입했다. 원하는 직원은 평일 중 하루를 더 골라 무급으로 쉴 수 있다. 가족을 돌보느라 직원이 그만두는 일을 막겠다는 취지다.

근로시간은 동일하게 가져가되 재택근무로 근로 유연성을 높이기도 한다. 도요타자동차는 일주일에 2시간만 회사에 나오고 나머지는 재택근무하게 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미즈호 은행, 미쓰이스미토모 은행, 미쓰비시 도쿄UFJ은행 등 일본 3대 은행도 재택근무를 확대하는 추세다.

한편 아베 신조 일본 정부는 '과로 왕국'이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과로로 인한 사망이나 자살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오르면서다. 과로로 인한 잠 부족으로 일본이 1380억 달러에 달하는 경제적 피해를 보고 있다는 통계도 있다.

이에 아베 정부는 근로 방식 개선을 역점 사업으로 추진해 지난달 1일부터 과도한 초과근무를 제한하는 '일하는 방식 개혁법'을 시행했다. 잔업시간을 연간 720시간, 한달 100시간으로 제한하는 게 골자다. 지금까지는 노사 합의만 있으면 초과 근로에 제한이 없었지만, 이제는 이를 어기면 징역이나 벌금을 부과받는다. 지난달 1일부터 대기업에 먼저 적용됐고 1년 뒤엔 중소기업에도 적용된다. 또 일본 내 모든 기업들이 연 10일 이상 유급휴가를 직원들에게 부여하도록 의무화했다. 근로자는 이 중 5일을 자신이 원할 때 자유롭게 쓸 수 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924’ 트렌드 이끄는 호주·뉴질랜드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근무방식 개혁에 가장 앞장서는 곳은 호주와 뉴질랜드다. 이곳에선 임금 삭감 없는 하루 5시간 근무에서 주4일제까지 파격적인 근로시간 단축 시도가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다.

BBC에 따르면 호주의 디지털마케팅 에이전시인 베르사는 지난해 7월 주4일제를 처음 도입했다. 주말에 더해 수요일 하루를 더 쉰다. 월급은 주5일제와 같다. 처음엔 직원들 사이 커뮤니케이션이나 업무시간 부족에 대한 우려도 있었지만 업무 패턴이 효율화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회의 집중도가 높아졌고 딴짓이 줄었다. 긍정적 결과는 수치로도 증명됐다. 캐스 블래컴 최고경영자(CEO)는 지난해 7월 후 매출이 46% 증가했고 수익은 거의 3배나 뛰었다고 말했다. 병가가 줄었고 직원 만족도도 높아졌다. 지난해 화제가 됐던 뉴질랜드 신탁회사 퍼페추얼가디언의 주4일제 실험과 비슷한 결과다. 

호주 금융회사 콜린스SBA는 2년째 직원 35명을 대상으로 오전 9시에 출근해 오후 2시에 퇴근하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주 25시간 근무다. 조너선 엘리엇 이사는 근로시간을 줄이되 원래 업무량이 그대로인 만큼 잔업이 생기는 경우도 있지만 직원들의 동기 부여가 확실해졌다면서, 병가도 12%나 줄었다고 말했다.

이런 사례는 애덤 그랜트 와튼스쿨 조직심리학 교수가 올해 다보스포럼(WEF)에서 역설한 것과 일치한다. 그는 “일하는 시간을 줄이면 직원들이 집중력을 보다 효율적으로 사용해 생산성이 높아지고 업무의 질과 창의성이 향상될 것이다. 또 직원들은 회사 밖 삶을 보살필 수 있는 여유를 제공한 조직에 보다 충성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물론 근로시간 단축에 장점만 있는 건 아니다. 병원이나 식당, 소매점 등의 경우 생산성이나 직원의 충성도가 높아질지 모르겠지만 기업으로선 부족한 일손을 메우기 위해 추가 비용을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다. 업종별로 세심한 접근이 필요한 이유다. 또 직원들의 경우 제한된 시간 업무 성과의 차이가 더 극명하게 드러날 가능성이 높다. 생산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직원들이 느끼는 압박감이 커지는 셈이다. 콜린스SBA의 경우 5시간 근무 도입 후 이미 여러 명이 자진 퇴사했다고 엘리엇 이사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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