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애널리스트가 밥그릇 지키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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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호원 기자
입력 2019-04-11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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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사 리서치센터에서 일하는 이기복(가명) 애널리스트는 하루하루 한숨만 많아진다. 회사가 애널리스트 수를 줄이고 있다. 두어 명이 하던 일을 혼자 하려니 작은 기업 하나도 제대로 분석하기 어렵다. 일을 돕던 분석보조원(RA) 숫자까지 줄었다. 애널리스트 한 명이 해야 할 일이 그만큼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과거처럼 더 나은 증권사로 옮기기도 어려운 일이다. 증권가 전반적으로 애널리스트를 뽑지 않는다.

애널리스트가 증권사에서 꽃으로 여겨지던 때도 있었다. 이기복 애널리스트가 입사할 때만 해도 그랬다. 10여년 전만 해도 수억원대 연봉을 받는 애널리스트가 적지 않았다. 금융위기를 지나면서 리서치센터는 돈만 축내는 부서로 여겨지게 됐다. 회사가 구조조정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규모를 줄이는 부서 가운데 하나가 리서치센터다. 금융투자협회가 내놓은 집계는 이를 잘 보여준다. 국내 증권사 애널리스트 수는 2013년 1386명에서 2017년 1064명, 2018년 1018명, 올해 초에는 1009명으로 꾸준히 감소했다. 이 기간 4명 가운데 1명 꼴로 짐을 쌌다는 소리다. 거꾸로 1년 단위로 고용계약을 갱신하는 비정규직 애널리스트 비율은 같은 기간 17%에서 24%로 늘었다.

증권업황이 나아지면 다시 애널리스트가 늘어날까. 그러기는 어려워 보인다. 인공지능(AI)을 활용하는 로보어드바이저(로봇+자문)까지 등장했다. 시황을 점치고 기업을 분석해주는 능력이 아직 애널리스트에 못 미칠 줄 알았다. 결과는 그렇지 않다. 애널리스트나 펀드매너저보다 나은 수익률을 기록하거나 적어도 비슷한 성과를 내고 있다는 얘기다. 미국 투자은행(IB)인 골드만삭스는 2017년 기업분석 AI인 '켄쇼'를 도입하기도 했다. 애널리스트가 40시간 넘게 하던 일을 몇 분 만에 끝내준다.

잘나가는 애널리스트는 옛말이다. AI뿐 아니라 증권사에 속하지 않는 독립 리서치 회사까지 생겼다. 증권사에는 갑인 상장사 눈치를 보지 않고 투자자 편에서 기업을 분석해준다. 그래도 증권사 리서치센터는 치어리더 노릇만 한다. 한국금융연구원이 얼마 전 이를 꼬집었다. 국내 증권사가 2018년 9월까지 1년 동안 내놓은 기업분석 보고서 가운데 주식을 팔라는 의견을 담은 비율은 0.1%밖에 안 됐다. 보고서를 읽으나 마나라는 얘기다. 이제부터 리서치센터는 믿음을 팔아야 한다. 개인투자자와 기관투자자 사이에서 점점 커지는 정보 비대칭을 줄여주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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