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호 칼럼] ​적산가옥과 校歌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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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초빙논설위원, 극동대 교수(정치학)
입력 2019-03-25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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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초빙논설위원]

3월을 보내면서 풀리지 않은 의문 하나가 있다. 친일파가 지었다는 교가는 바꾸려고 하면서 왜 적산가옥은 그렇게 애지중지할까. 적산가옥이야말로 일제의 잔재 그 자체가 아닌가. ‘친일교가’를 폐기할 정도면 적산가옥도 응당 없애는 게 논리적으로 맞을 터. 그런데도 곳곳에서 신주단지처럼 모셔진다. 손혜원 민주당 의원의 투기 논란 속에 목포시가 벌이고 있는 ‘근대역사 문화공간’ 조성사업도 핵심은 적산가옥의 보존·재생에 있다.

목포는 작년 8월 군산, 영주와 함께 문화재청으로부터 이 사업의 실행자로 선정됐다. 구(舊) 도심인 만호동과 유달동 일대가 등록문화재로 지정돼 2023년까지 복원·보수·정비 공사를 마쳐야 한다. 예산만 500억원. 이 지역엔 구 목포 일본영사관, 동양척식회사 목포지점 등 일제강점기의 가옥과 건물이 산재해 있다. 문화재청은 사업의 취지를 이렇게 정리했다. “근대 건축물은 근대사의 문화유산으로서 전통과 현대를 이어주는 매개체이자 도시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깊이 이해하도록 만든다.”(문화재청 홈페이지)

의미를 따지기로 한다면 ‘교가’인들 그만 못할까. 논란이 된 광주제일고만 해도 올해로 개교 100주년이다. 호남의 명문으로 그동안 지역사회와 국가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교가는 이를 가능케 한 정신적 고리였다. 동문들은 ‘무등산 아침 해같이 눈부신 우리의 이상···’으로 시작되는 교가를 부르며 광복 후 전쟁과 분단을 극복했고, 근대화와 민주화의 고지를 넘었다. 그런 교가를 이제 와서 ‘친일음악인’이 작곡했다는 이유로 폐기해야 한다면, 그럼 적산가옥은?

일본인이 살았던 적산가옥은 유형의 자산으로, 해당 지자체의 관광수익에도 보탬이 되니까 괜찮은 건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그보다는 아픈 역사도 역사이니 직시하자는 이유가 더 클 것이다. 광복 50주년이던 1995년 일제 잔재 청산으로 광화문의 조선총독부를 철거했을 때 이에 반대했던 사람들이 그런 논리를 내세웠다. 그러나 당시 김영삼 정권은 “단절된 역사의 회복”을 이유로 철거를 강행했다. 결국 총독부건물은 사라졌고, 적산가옥은 남았다.

전교조에 따르면 서울에만 113개 초 중 고교가 친일 인사가 만든 교가를 쓰고 있다고 한다 (학교내 친일 잔재 청산 1차 조사).  이들이 친일의 근거로 든 것은 민족문제연구소가 펴낸 ‘친일인명사전’이다. 광주일고 교가도 이 사전에 ‘친일음악가’로 등재된 이흥렬(1909∽1980)이 작곡했다고 해서 시비가 일었다. 민간단체가 만든 사전 하나가 역사를 판단하는 바이블이 됐다.

적산가옥과 교가의 모순은 일제에 대한 ‘미완의 청산’에서 비롯된다. 원칙이 바로 선 완전한 청산이 이뤄지지 못했기에 이런 혼란이 생기는 것이다. 그렇다고 지금이라도 ‘역사’를 세탁기에 넣고 흰 빨래하듯이 빨아버릴 수 있을까. 불가능한 일이다. 아픈 역사도 내 역사이고, 얼룩진 역사도 내 역사이다. 역사에 어찌 지고지순함만 있겠는가. 그러기에 다수 국민도 가슴에 묻어두고 여기까지 온 것 아닌가. 반일(反日)이 극일(克日)로 바뀐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그런데도 굳이 완전한 청산을 고집한다면 이 또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미완의 청산’이 민족적 불행이고, 일부 세력이 그 불행에 편승해 우리 사회를 주기적으로 뒤엎더라도 그게 옳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면 막을 수 없다. 개인의 신념을 건드릴 수는 없는 일이다. 설령 ‘청산’의 뒤로 과도한 민족주의, 역사 해석의 독점, 이념의 과잉, 한국사회의 주류를 바꾸겠다는 정치적 기도가 어른거린다고 해도 말리기는 어렵다. 헤게모니 다툼을 역사의 소명(召命)으로 포장하는 경우가 흔하긴 해도.

경남 교육청은 최근 화단의 향나무를 일제 잔재라는 이유로 뽑아내고 소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군항제가 열리는 진해의 벚꽃나무도 모조리 뽑아야 하는 것 아닌가. 이런 식이면 대한민국에 남아날 게 뭐가 있을까. 거꾸로 교가를 바꾸자는 사람들에게 당신의 선대(先代)엔 창씨개명을 한 사람이 없다는 거를 증명하라고 요구한다면 증명할 텐가. 증명을 해줄 사람은 또 어떻고, 그 사람의 선대엔 창씨개명을 한 적이 없는가? 그 선대의 선대는?···. 친일논쟁이 이런 식으로 흘러서야 되겠는가. 이건 반일, 친일을 떠나 자기부정이고 자해(自害)다.

덩샤오핑(鄧小平)은 중국 현대사에서 마오쩌둥(毛澤東)이 끼친 공과(功過)에 대해 공은 7이고 과는 3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 3 속에 우리의 과오도 들어 있다고 했다.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해서, 한마디 보탠다. 지금까지 이런 리더십은 없었다, 그건 신념의 차이인가, 그릇의 차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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