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태 금융포럼 미리보기] ​환율 마찰 …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양성모 기자입력 : 2019-03-11 06:30

[사진=연합뉴스]


미국과 중국의 무역갈등이 환율 분쟁으로 이어지면서 제2의 플라자합의가 이뤄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 섞인 분석이 나오고 있다. 중국 관영 매체들은 '실현 가능성이 낮다'고 주장하지만, 주변국들은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되풀이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2월 중국 관영매체인 경제일보 산하 웨이보 '타오란비지(陶然筆記)'는 미·중 간 환율 합의가 중국 위안화의 가파른 절상으로 이어지진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과거 플라자합의 때 벌어진 일본 엔화 폭등과 같은 일은 없을 것이란 얘기다.

플라자합의란 미국·영국·독일(당시 서독)·프랑스·일본 등 당시 주요 5개국(G5) 재무장관이 1985년 미국 뉴욕 플라자호텔에 모여 달러의 강세를 막기 위해 외환 시장에 개입하기로 합의한 것을 말한다. 즉, 미국의 무역적자를 줄이기 위해 무역상대국들이 환율 조절에 나선 것이다. 이는 미국이 금리 인상과 무역수지 적자, 재정 확장이 맞물린 상황에서 대외 압박을 통해 경기부양을 도모했다는 점에서 현재 경제 상황과 유사하다는 평가가 있다.

미국은 1, 2차 오일쇼크를 겪으면서 물가가 크게 상승하자 1970년대 말부터 강도 높은 통화긴축정책을 시행했다. 시중에 도는 달러화가 줄자 달러화 가치가 급등하는 현상으로 이어졌다. 이어 1981년 집권한 레이건 대통령은 경제 활성화를 위해 조세감면 정책을 제시하면서 무역수지 적자 확대와 더불어 재정수지까지 악화되는 이중고를 겪었다.

미국이 빼든 칼은 관세를 부과하는 것이었다. 1985년 미국 상원과 하원은 대규모 무역흑자국 제품에 관세를 부과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제출했다. 지금의 미·중 무역분쟁 역시 미국의 대(對)중국 적자 축소가 이유 중 하나로 상당히 닮아 있다.

일본과 독일 등 무역흑자국은 이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수입물량 조정이나 관세인상은 경제에 직접적인 타격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또 미국과의 안보적 의존관계도 무시할 수 없었다.

플라자합의 후 실행계획에 따라 주요 5개국은 6주간 달러화 가치 하락을 유도하기 위해 협조 개입에 나섰다. 이로 인해 엔화는 6주간 달러 대비 14.4%, 마르크화는 7.7% 절상됐다. 총 달러 가치는 7.4% 절하됐으며, 달러 약세는 개입 이후에 더욱 확대되는 결과로 이뤄졌다. 엔화는 3년 동안 46.3%나 절상됐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은 그렇게 시작됐다. 일본 중앙은행은 엔화 강세에 따른 수출 부진이 우려되자 1985년 5%이던 정책금리를 1987년 2월까지 2.5%로 인하했다. 역대 최저 수준이었다. 저금리가 이어지자 개인과 기업들은 돈을 빌려 부동산 투자에 열을 올렸다. 또 엔화 가치 상승으로 구매력이 높아지면서 일본 기업들과 국민들은 세계를 사들였다. 미쓰비시가 록펠러센터를, 여행객들은 세계 어디든 떠나며 구매력을 자랑하고 다녔다.

하지만 축복은 짧았다. 일본 정부가 부동산 버블을 우려해 긴축에 나선 탓이다. 일본 정부는 1989년 5월 이후 급격한 금융긴축을 단행하고 1990년 3월 들어 부동산 관련 대출 총량규제를 시행했다. 이로 인해 1990년 초 거의 4만 선까지 올랐던 닛케이주가는 1992년에는 1만5000으로 떨어졌다. 땅값 또한 1989~1992년 50% 이상 떨어졌으며, 이후에도 2005년까지 하락세가 매년 계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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