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100주년]③"대한독립 만세!" 우렁찬 함성을 듣다…천안 독립기념관‧유관순 열사 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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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수정 기자
입력 2019-03-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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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년 3월은 의미가 깊다. 3·1운동 발발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는 역사적인 해이기 때문이다.
지난 1919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시작된 3·1운동, 한국의 독립을 대대적으로 선언한 이 역사적인 사건의 정신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으로 이어졌고 우리 민족의 독립운동과 외교 활동의 동력으로 작용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자부심을 갖고 당당히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이렇게 뜻깊은 날을 목전에 두고 있다. 이 날을 그저 공휴일로 치부하지 말고, 밖으로 나가 가슴 시린 역사를 되새겨보는 것은 어떨까.
 한국관광공사(사장 안영배)가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역사적 의미를 되새길 수 있도록 소개한 전국 명소들이 있다. 


◆자주독립을 위해 희생한 우리 민족의 고난을 마주하다...독립기념관
 

독립기념관 겨례의 탑[사진=한국관광공사 제공]

올해는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다.

특별한 의미가 있는 봄, 아이들 손잡고 떠난 충남 천안 여행은 감동과 교훈이 함께 한다.

천안에는 독립운동의 함성과 결의, 일제강점기의 고통을 되새겨볼 만한 곳이 여럿 있다.

먼저 목성읍 흑성산 아래 들어선 독립기념관으로 가자.

지난 1982년 일본 고교 역사 교과서 검정 당시, 문부성은 한국에 관련된 내용을 일본 측에 유리하게 수정했고 이는 독립기념관 탄생 의지를 불태우게 된 계기가 됐다.

1982년 8월 28일 독립기념관 건립 계획을 발표했고 기념관 건립을 위한 모금 운동 결과 500억원이 모였다. 그렇게 1986년 8월 15일 순조롭게 개관할 예정이이었지만, 열흘 남짓 앞두고 화재가 나면서 독립기념관은 결국 이듬해 8월 15일 개관하게 됐다.

독립기념관은 이름 그대로 무수한 외침을 극복하고 자주독립을 지켜온 우리 민족의 국난 극복사를 살펴보고, 겨레의 독립 의지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가장 먼저 ‘겨레의탑’을 만난다. 높이 51m로, 고개를 힘껏 젖혀야 꼭대기를 바라볼 수 있을 정도다. 주차장에 설 때부터 방문객을 압도하는 위용을 자랑한다.

겨레의탑을 지나면 또 한 번 놀란다. 방문객 앞에 버티고 선 ‘겨레의집’은 웅장함 자체다.

수덕사 대웅전을 본떠 설계했으며, 기념 홀 같은 역할을 한다.

기와는 구리로 제작했으며, 현판은 서예가 일중 김충현이 썼다. 겨레의집 내부에는 ‘불굴의 한국인상’이라는 조각상이 있다.

한 무리 사람들이 힘찬 동작으로 앞을 향해 나아가는 형상이다.

온몸을 바쳐 국가와 민족의 미래를 연 순국선열을 상징한다. 겨레의집 앞으로 태극기 815기를 연중 게양하는 ‘태극기한마당’이 펼쳐진다. 2005년에 광복 60주년 기념으로 조성했다.

독립기념관은 7개 전시관과 입체영상관으로 구성된다. 자료가 워낙 방대하고 전시관이 넓어, 꼼꼼히 둘러보려면 5시간 정도 걸린다.

미리 정보를 알고 동선을 짜서 가는 것이 좋다. 7개 전시관에서는 일제의 잔인한 침략상과 각지에서 펼쳐진 독립운동을 시기별로 살펴볼 수 있다. 다양한 문헌 자료와 미니어처, 영상물이 이해를 돕는다.

제1전시관은 선사시대부터 조선 후기인 1860년 이전까지 우리 민족의 문화유산과 외세 극복의 역사를 정리한다. 고인돌 모형, 가야 기마 무사상 모형, 거북선 재현 모형 등이 눈길을 끈다.

제2전시관은 개항기와 일제강점기(1860년부터 1940년대까지) 우리 민족의 시련을 살펴볼 수 있고, 제3전시관은 일제에 항거한 의병 전쟁과 안중근 의사의 의거 등 구한말 국권 회복 운동에 관한 자료를 전시한다.

제4전시관은 독립운동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공간으로, 다양한 시각 자료가 감성을 자극한다.

국외에서 활동한 독립군과 광복군의 흔적이 있는 제5전시관,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의 밀랍 모형이 눈길을 끄는 제6전시관, 관람객이 독립 만세를 불러보는 등 국내외에서 전개된 다양한 독립운동을 체험할 수 있도록 꾸민 제7전시관도 발길을 붙든다.

◆유관순 열사, 만세운동을 '주도'하다...독립운동의 도화선 '아우내장터'
 

유관순 열사 영정[사진=한국관광공사 제공]

독립 만세 운동이 전국으로 번지는 도화선이 된 것이 ‘아우내장터 만세 운동’이다. 아우내를 한자로 쓴 지명이 병천(竝川)이다.

1902년 병천면 용두리에서 태어난 유관순 열사는 이화여자고등보통학교 1학년에 진학한 1919년 3·1운동에 참가한다.

3월 10일 전국에 휴교령이 떨어지자, 열사는 같은 학교에 다니던 사촌 언니 유예도와 고향 천안으로 내려와 만세 운동을 주도한다.

"대한독립 만세!"

4월 1일, 아우내장터에서 우렁찬 울림이 시작됐고 순식간에 3000여 명이 모였다.

아우내장터 만세 운동으로 유관순 열사의 부모는 일제의 총칼에 무참히 죽고, 유관순 열사도 체포돼 3년 형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다시는 독립운동을 하지 않고 대일본제국 신민으로 살아갈 것을 맹세하겠는가?”라고 물었지만 유 열사는 의자를 던지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왜놈 따위에게 굴복하지 않는다. 언젠가 네놈들은 천벌을 받아 반드시 망할 것이다.”

옥중에서 모진 고초를 당하면서도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며 항거했던 유관순 열사는 이듬해 4월 이왕세자(영친왕)가 도쿄(東京)에서 결혼하는 것을 기념해 1년 6개월로 감형됐지만, 1920년 9월 28일 결국 옥사하고 만다. 

유관순 열사 생가는 아우내장터 만세 운동 당시 일본 관헌이 가옥과 헛간을 불태워 빈터만 남은 것을 1991년 12월 30일 복원했으며 봉화 터와 함께 사적 230호로 지정됐다.

생가 옆에는 박화성이 시를 짓고 이철경이 글씨를 쓴 기념비가 세워졌고, 열사가 다닌 매봉교회가 있다.

생가에서 유관순 열사 사적지까지 10여 분이면 걸어갈 수 있으며 열사의 영정이 모셔진 추모각과 동상, 기념관 등이 그의 숭고한 뜻을 기린다.

유관순 열사가 만세 운동을 펼친 아우내장터 일대는 지금 병천순대거리가 조성됐다.

순대를 내는 식당 50여 곳이 들어서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1960년대 인근에 돼지고기를 가공하는 공장이 있었는데, 여기서 나오는 부산물로 순대를 만들어 팔며 시작됐다고 한다. 당면 대신 채소와 선지로 속을 꽉 채운 병천 순대는 누린내가 나지 않고 깊은 맛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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