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균 칼럼] 새 술을 헌 부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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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균 명지대 경영정보학과 교수
입력 2019-01-28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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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균 명지대 경영정보학과 교수 ]


문재인 대통령이 미국의 저명한 외교전문지 ‘포린 폴리시’에 의해 재차 ‘세계의 사상가’로 선정되었다. 2017년 민주적 리더십에 이어 2018년에는 북한과 서방의 소통에 기여한 외교업적이 인정을 받았다. 핵무기뿐만 아니라 핵발전소도 없는 ‘핵 없는 한반도’에서 구현하고자 하는 평화와 지속가능성에 관한 확고한 신념과 철학은 물론 북·미 정상회담과 남북 정상회담을 이끌어낸 섬세한 추진력은 분명 세계인의 공감과 감동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하지만 올해 대통령 신년사에서 나타나듯이 경제 분야에서는 집권 1년 반의 성과가 크게 미흡하다는 표현조차 민망하다. 정부가 출범하면서 야심차게 시작한 소득주도성장은 이제 완전히 실종되었다. 소득주도성장의 핵심정책으로 꼽을 수 있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최저임금 1만원, 노동시간 단축은 용두사미를 넘어서 역행하고 있다. 공공기관부터 먼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약속하며 인천공항을 방문했던 대통령이 지휘하는 정부는 공공기관들에서 ‘중규직’이라는 새로운 신분의 등장을 장려함으로써 비정규직 노동자의 가슴에 다시 한 번 대못을 박았다. 정규직화의 핵심인 처우 개선이나 산재로부터의 안전 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않고 있어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를 오히려 고착시킬 우려마저 있다. ‘최저임금 1만원’과 ‘52시간노동’에서는 시행과 동시에 정부 스스로 속도를 조절하는, 세계사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자기부정’의 상황이 나타나고 있다. 그래서 작금의 경기침체와 고용위기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 뒤집어쓰고 있다.

국내는 물론 아세안과 G20 정상회담에서도 ‘포용적 성장’에 이어 ‘포용국가’로 선포되는 비전은 현실 정책에서 공허한 경제철학으로 헛돌고 있다. 신자유주의가 약속했던 ‘낙수효과’는 처음부터 없었고, 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하는 것이 포용적 성장이라는 대통령의 인식을 뒷받침해야 하는 정책은 불평등을 더욱 심화시키는 방향으로 가속페달을 밟고 있다. 금년도 경제정책의 중심이 민간기업의 공공사업 참여,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 예산 조기집행 등 ‘경제 활력’의 회복에 주어지는 모습은 소득 불평등을 심화시킨 과거의 관행을 확대재생산할 것이 분명하다. 국정농단의 현행범으로 실형을 선고 받은 재벌 총수들이 대통령과의 간담회에 초대되어 ‘농담’까지 주고받는 장면은 과거 ‘수탈국가’에서도 볼 수 없었던 ‘소탈한’ 장면이다. 그러한 연출이 아무런 실효성도 없었다는 누적된 경험에도 불구하고 재연되었다는 사실은 신임 비서실장이 언급한 “대통령의 친기업 마인드”를 과시하면 투자 촉진과 고용창출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순진한 기대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일자리는 민간부문이 만든다’는 정부의 항복선언은 경제와 일자리를 볼모로 하는 재벌들의 횡포를 눈감아 주어야 하는 명분이 되고 있다.

‘혁신성장’을 선도해야 할 4차산업혁명위원회는 신자유주의자들이 ‘암약’하는 제2의 규제개혁위원회로 기능하고 있다. ‘카카오 카풀’이 택시기사 2명의 자살이라는 끔찍한 사회적 갈등만을 야기하고 결국 임시휴업에 들어가자 이제는‘에어비앤비’ 도입 제안으로 숙박업자들을 선동하고 있다. 위원회가 제조업 혁신이라는 본래 목표에서 벗어나 ‘규제혁신’에 나서면서 ‘4차 산업혁명’의 얼굴에 먹칠하고 있다. 현 정부가 인수위원회도 없이 출범했다는 것이 더 이상 정책의 난맥상에 대한 변명이 될 수는 없다.

정부의 비전 제시가 ‘희망고문’이 되지 않으려면 다양한 구체적인 정책수단들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관되어 상승작용을 함으로써 대한민국이 ‘포용국가’의 비전에 접근하고 있다는 믿음을 국민들에게 심어주어야 한다. 창조경제의 ‘전면 개정판’을 약속받았던 국민들은 ‘증보판’을 보면서 허탈감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다. 대통령은 외롭게 ‘포용국가’를 외치고 있지만 현실은 ‘수탈국가’의 강화로 나타나고 있다. 최소한 정책수단이 ‘포용국가’에 역행하지는 않는지에 대한 논리적·역사적 사전 점검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기업에 한 약속이 지켜지는지 정부가 후속조치를 챙길 것을 새삼 지시하는 것보다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는 오래된 약속이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지 점검하는 것이 ‘사람 중심’의 정부에게는 우선일 것이다. 경제가 활력을 회복해도 그 때문에 국민이 계속 목숨을 잃는다면 기업은 희망을 가지겠지만 국민은 절망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대통령은 경제(기업)가 아니라 국민이 뽑았다. 국민에게는 ‘사상가’보다 국민의 눈물을 닦아주는 ‘정치인’이 절실하다. ‘새 술을 헌 부대’에 담을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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