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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인터뷰] 남화토건 창업주 최상옥 최상준 형제 '아름다운 동행'

(광주)박승호 기자입력 : 2018-12-03 07:43수정 : 2018-12-03 07:43

남화토건 최상옥 회장(오른쪽)과 최상준 부회장. [사진=남화토건 제공]


소탈한 외모와 해맑은 미소가 편안하다. 그래선지 나이보다 젊어 보인다. 주식회사 남화토건 최상준 대표이사 겸 부회장(81)의 첫인상이다. 광주경영자총협회 회장을 맡고 있다. 기업을 하면서 지키기 어렵다는 정도(正道)와 '원칙'을 주요 덕목으로 삼고 평생 그렇게 살았다. 차입금, 남에게 빌린 돈이 없다. 그만큼 기본에 충실하면서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몽당연필 경영인’으로 소문날 정도로 아껴 쓰면서 이웃을 도왔다. 사회공헌과 나눔을 실천했다.

이 회사 창업주이자 형님인 최상옥 회장(92)이 애초부터 그랬다. 그 형에 그 동생이라고 했던가, 최 부회장도 똑같다.

남화토건을 말할 때 형제를 떼놓고 말할 수 없다. 형이 앞서가고 동생이 뒷받침했다. 토건 분야 국내 1군인 남화토건은 그렇게 성장했다. 이들의 형제애는 지역사회의 본보기로 회자되고 있다.

광주광역시 동구 금남로 남화빌딩에서 최상준 부회장을 만났다. 형님인 최 회장의 건강이 나빠져 오랜 대화가 어렵기 때문이다. 최 회장은 매일 아침 9시에 출근해 사무실에서 잠시 머물다 퇴근한다.

▲ 남화토건 창업주 최상옥

최상옥 회장은 어릴 때부터 남다른 손재주를 가졌다. 성장하면서 토목 건축일에 관심을 가진 것은 자연스럽다. 1946년 20살 때 남화토건사를 설립했다. 이어 1958년 건설업법에 따라 토목 건축공사 면허를 딴 다음 법인으로 전환하고 국내 건설붐에 발맞추며 성장일로를 걷는다.

1977년 신창건설을 흡수합병해 사세를 키우고 1992년 철강재설치공사업에 이어 조경공사업 면허를 취득해 사업 영역도 함께 넓혔다. ISO 9001 품질시스템 인증을 받아 건축, 토목공사에서 최상의 품질관리를 하게 된다. 그 결과 최상옥 회장은 현대건설의 정주영 회장과 함께 ‘대한민국의 위대한 건설인’으로 뽑혔다. 한국 건설업계의 1세대 주역으로 입증된 셈이다.

▲ 사원으로 입사

최상준 부회장은 전남대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1964년 27살에 사원으로 남화토건에 입사했다. 창업주의 동생이라는 잇점이 있지만, 오히려 형님에게 누가 되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열심히 일을 배웠단다.

그래서일까, 최상옥 회장은 “남화토건에서 가장 믿을 만한 사람은 내 동생 최상준이 아니라 직원 최상준이다”고 말했다.

최 부회장은 입사한 지 29년 만에 대표이사가 됐고 다시 10년이 지나 현재의 자리에 올랐다. 이후 KSA 9001 품질경영시스템 인증을 받았고 부동산 개발과 산업환경설비공사, 정보통신공사까지 사업폭을 넓혔다. 특히 항만공사와 주한미군 공사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2012년 광주·전남 건설업계에서는 처음으로 코스닥에 상장해 남화토건의 가치를 키웠다. 당시 지역업계에서는 일대 경사였다. 경사는 한꺼번에 온다했던가. 이듬해 석탑산업훈장을 받고 이어 동탑, 은탑, 금탑산업훈장을 차례로 받아 건설업계의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아직도 드문 사례다.

최 부회장은 “기업을 하면서 가장 기쁜 일은 금탑산업훈장을 받은 것이고, 가장 잘했다 싶은 것은 남화토건을 코스닥에 상장한 일”이라고 말했다.

▲ IMF 위기 극복

최 부회장은 대표이사가 되고 4년 후에 위기를 맞는다. I997년 IMF 구제금융사태는 남화토건에도 시련을 안겼다. 일감이 없어 인건비를 대기도 어려웠다. 직원의 40%를 내보내야 할 정도였다.

하지만 최 부회장은 직원들을 선택했다. “죽을 각오로 같이 살자”면서 직원들에게 호소했다. 직원교육에 힘쓰고 업무능력을 키우는 데 주력했다. 수익창출로 돌파하자는 전략이었다. 성공했다. 업계 평균치의 2배에 이르는 수익을 냈고 부채비율 20%의 안정된 회사로 일궈냈다. 당시 건설업계 평균 부채율은 150%였다.

최 부회장은 “돌이켜보면 그것이 남화토건의 저력이 됐다.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직원들을 위해 자녀 학자금을 지원하고 해외 연수, 건강 진흥 등 다양한 복지제도를 마련했다.

현재 남화토건은 국내 1만여 건설회사 가운데 1군 업체다. 1군 중에서도 100위 안에 드는 A+등급이다. 계열회사로 한국C&T, 남화개발, 남화산업, 센트럴상호저축은행, 한국케이블TV광주방송, 무안컨트리클럽, 유당문화재단이 있다.

▲ 기본과 원칙주의자

창업주 최상옥 회장은 장수기업으로 성장한 비결을 기본과 원칙을 지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본이 튼튼하면 큰 것은 자연스럽게 이뤄진다’는 믿음을 가졌다.

공사 기간 단축을 자랑으로 여기지 않는다. ‘빨리빨리 문화’는 건설근로자가 가져야 할 장인정신이 부족하다는 것을 스스로 내보이는 ‘부끄러운 우리의 자화상’이라고 단언한다.

최 회장은 건설업을 하면서 학교와 장학재단을 설립했다. 문화예술, 체육분야까지 광주와 전남에서 폭넓게 사회공헌을 실천했다. “평소 나를 발전시켜 행복하고 이웃을 사랑해야 더불어 행복할 수 있다”는 신조를 행동에 옮겼다.

▲ 아름다운 동행

동생 최상준 부회장도 마찬가지다. 기부와 나눔이 몸에 뱄다. 형제가 천주교 신자고 신앙심이 깊다. “생활이 불편하지 않을 최소한의 경제력 이외는 모두 사회에 환원해 더 좋은 쓰임새를 찾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한다.

몽당연필을 사용하는 경영인으로 이름났지만, 기부에서는 통이 크다. 최근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지난 10월 고향인 전남 화순군 화순읍 동구리 호수공원에 지상 2층 규모의 ‘석봉미술관’을 지어 화순군에 기증했다. 회삿돈이 아닌 사재 30억원을 털었다. 소장하고 있던 253점의 이름난 미술품도 흔쾌히 내놨다. 개관식에는 형님 최 회장과 함께 참석했다. ‘아름다운 동행’이다.

그동안 형님과 함께 고향 화순을 위해 수많은 기부를 했으면서도 ‘고향에 무엇을 해줬는지 생각나는 것이 없어서’ 미술관 기증을 결심했다고 한다. 자신의 호를 따 석봉장학재단을 만들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하고 결식학생과 심장재단을 후원했다.

한 측근은 기부한 성금이 150억원을 넘을 것이라고 귀띔한다. 물론 1억원 이상 고액기부자 클럽인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이다. 2002년부터 광주·전남지역 적십자회 회장으로 봉사하고 있다. 국내 최고령 헌혈기증자로 무려 98번이나 헌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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