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효백 칼럼-중국정치7룡] 시진핑의 여덟 차례 미국 방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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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효백 경희대 법무대학원 교수
입력 2018-11-0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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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진핑 중국 공산당 총서기(18) 시진핑의 대외 외교관계―① 미국

  • 덩과 후계자들··· 江-胡-習는 모두 친미파?

  • 32세때 허베이성 정딩현 서기로 미국 첫 방문한 習

  • 국가부주석 신분으로 5차 방미…'정상급' 예우받아

만물은 변한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도 변한다. 국가도 국제 관계도 변한다. 냉전체제가 종식된 지 강산이 두 번 이상 변하는 세월이 탄환처럼 지나갔다. 국제 정세와 동북아 역학관계는 상전벽해 수준으로 급변했다.

개인 간이나 국가 간이나 우호 관계를 위해선 상대와 상대의 대외 관계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필요하다. 우리나라와 미·중·일·러 등 주변 4강과의 관계 못지않게 시진핑(習近平) 시대 중국의 한국·북한·미국·일본·러시아 관계의 실상과 그 변화를 알아야 하는 이유다.

[자료=강효백 교수 제공]


그럼 여기서 잠깐,  아래에서 말하는 국가가 어디인지를 한 번 맞춰볼까.

△ 시진핑이 처음 해외여행을 간 나라  △덩샤오핑(鄧小平)이 재집권한 후 최초 방문한 나라  △ 쑨원(孫文)이 아시아 최초의 공화국 중화민국을 세우면서 롤모델로 삼은 신 대륙 최초의 공화국인 나라 △ 중국 본토를 침략한 적이 없는 열강으로서 중국이 역사적 원한이나 피해의식이 없는 나라 △ 지난 10년간 중국인의 호감도 순위 앞 자리를 차지하는 나라 △ 화교와 중국인 유학생이 제일 많은 나라 △ 중국의 최대 수출대상국인 나라  △ 중국이 그 나라의 돈과 채권을 제일 많이 가지고 있는 나라 △ 중국에 빚을 제일 많이 진 나라 △ 시진핑 딸이 유학 간 나라, 그 나라가 바로 미국(美國)이다.

◆ 덩과 후계자들··· 江-胡-習는 모두 친미파?

중국 역대 지도자 중 최고의 ‘친미파’(단 여기서의 ‘친’은 대등한 친구 관계의 親)는 '개혁개방 총설계사' 덩샤오핑이다. '덩샤오핑의 아이들', 장쩌민(江澤民), 후진타오(胡錦濤), 시진핑(習近平), 실은 모두 개혁파이자 친미파다.

역대 중국 지도자의 방미 관련 사진.(왼쪽부터) 덩샤오핑, 장쩌민, 후진타오, 시진핑. [자료=강효백 교수 제공]


세 번 쓰러지고 세 번 일어난 '부도옹' 덩샤오핑은 집권한 이듬해 벽두 1979년 1월 1일, 미국과 공식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이어서 그해 1월 29일부터 2월 5일까지 7박 8일 일정으로 태평양 건너 미국을 방문했다. 집권 직후 소련을 방문했던 마오쩌둥(毛澤東)과 대조적이다.

중국 역대 최고지도자로서는 사상 최초로 미국을 방문한 덩은 워싱턴에서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과 미·중 정상회담을 개최했다. 마오 시대 중국은 봉건제국 시절 중원에 앉아서 속방으로부터 조공이나 받아오던 전통 때문인지 초청 외교가 주를 이루었고 방문 외교는 드문 편이었다.

덩은 방미 기간 중 카우보이 모자를 눌러쓰고 로데오 경기를 관람하는가 하면, 공식 석상에서 엘비스 프레슬리의 '러브 미 텐더(Love Me Tender)'를 열창하는 등 미국인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려는 모습을 보였다. 수행했던 중국 지도부 역시 커다란 문화 충격과 함께 경제 개발에 대한 강한 자극을 받았다.

덩은 “쇄국은 중국에 정체와 빈곤, 우둔과 낙후를 가져왔다. 쇄국정책으로는 국가 발전은 불가능하다",  “바다는 우리의 장벽이 되어서는 안 된다. 미국과 중국은 태평양처럼 연대하여야 한다”라고 누차 강조했다. 미국 방문에서 돌아온 후 덩은 중국을 발전시키는 데는 자본주의나 사회주의나 관계없다고 주장하며 그 유명한 “흰 고양이든 검은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 남쪽 기슭이든, 북쪽 기슭이든 정상에만 오르면 된다”는 명언을 남겼다. 원래 이 말은 그의 고향 쓰촨(四川) 지역에 널리 전해오는 속담이다. 실질적이고 실효성을 중시하는 쓰촨 지역민의 가치관을 대변해주는 격언이기도 하다.

덩샤오핑 방미 후 지금까지 중국의 핵심 브레인들은 대개 세계 초강대국 미국의 힘이 ‘공정한 자유경쟁’에서 비롯된다고 분석하면서, 중국 사회주의 영혼도 ‘공정’해야 하며 시장경제의 본질도 ‘자유경쟁’이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중국은 미국의 '풍만한 몸통'에서 민주주의 정치제도 '뼈'는 추려버리고 자본주의 시장경제 '살'을 취해 '중국특색의 자본주의' 대로를 질주하고 있다. 그리하여 중국은 지금 미국과 더불어 이른바 ‘세계 자본주의 공생체 차이메리카(중국과 미국 영문합성어)’로 불리는 'G2(주요2개국)'로서 글로벌 경제를 쥐락펴락하고 있다.

덩샤오핑의 최후의 후계자이자 제3세대 지도자 장쩌민 전 국가주석은 1997년 10월 26일부터 11월 3일까지, 7박8일 미국을 방문, 빌 클린턴 당시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개최해 21세기 건설적 전략동반자관계를 체결했다. 그는 미국 캘리포니아 주를 방문해 그곳 현지 화교들과 함께 어울리며 간담회를 개최했다. 또 하와이에서는 ‘Aloha Oe’를 연주하며 하와이 주장의 부인과 함께 열창했다.

장쩌민의 동향 후배이자 제4세대 지도자 후진타오 전 국가주석은 2006년 4월 18일부터 21일까지, 그리고 2011년 1월 18일부터 21일까지 미국을 국빈 방문해 각각 조지 워커 부시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했다. 중국 역대 지도자중 가장 사근사근한 성품의 후진타오는 두 차례 국빈방문 기간 동안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주와 스티븐 잡스 애플 창업자를 포함해 미국 각계 저명인사로부터 극진한 환대를 받았다.

◆시진핑의 여덟 차례 방미 스케치

제5세대 영도 핵심인 시진핑 주석은 32세 때 미국을 처음 방문한 이후 지금까지 총 여덟 차례 미국을 방문했다. 그의 모든 방미기는 1등국 미국의 장점을 학습해 미국을 앞서자는 데에 초점이 맞춰 있다. 반면 미국의 단점 거론 등 비판은 거의 없었다.

덩샤오핑이 미국에서 돌아온 다음 달인 1979년 3월 초 26세의 젊은 시진핑은 덩샤오핑이 중앙군사위 제1부주석으로 사실상 수장이었던 중앙군사위의 판공청 비서(현역 중령급)로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시진핑은 32세 때 그의 생애 첫 해외여행을 나갔다. 1985년 4월 28일부터 5월 1일까지, 그의 나이 32세때 허베이(河北)성 정딩(正定)현 당서기 시절 미국 아이오와 주를 방문한 것이다. 이는 1983년에 허베이성과 아이오와주와 자매결연 관계를 맺었던 덕분이다(중국과 미국은 2017년말 현재 36개 중국의 성과 미국의 주와 자매결연주, 161개 자매결연시 관계를 맺고 있다). 시진핑은 아이오와 주의 소도시 마스카틴 카운티의 한 직원 집에서 2박 3일간 민박을 하며 정딩현과 마스카틴 카운티간 자매결연을 체결했다.

시진핑의 2차, 3차 방미는 그가 푸젠(福建)성 중심도시 푸저우(福州)시 당서기 시절인 1992년 9월과 1993년 5월이다.  시진핑은 주로 푸젠 출신 화교들과 간담회를 가지며 미국 동부지역의 번화한 도시를 시찰하며 푸저우시의 건설 청사진을 그렸다. 현재 푸저우시가 중국에서 도시 계획이 잘 된 도시로 손꼽히게 된 건 당시 시진핑의 미국 학습 덕분이라고 중국 언·관·학은 입을 모아 칭송한다.

4차 방미는 2006년 5월 시진핑이 저장(浙江)성 당서기로 재임하던 때다. 그는 저장성의 자매결연주 뉴저지 주를 비롯해 워싱턴과 뉴욕을 방문했는데, 미국 상무부의 중국계 직원 퉁지링(董继玲)이 그의 전 일정을 수행했다. 퉁은 후일 뉴저지 주장과의 회담을 비롯 시진핑이 원고를 전혀 보지 않고 대화와 연설을 하는데 복잡한 내용과 소수점까지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며 시진핑이 놀라운 기억력의 소유자로 회고했다.

시진핑의 5차 방미는 2012년 2월 14일부터 18일까지 4박5일간 이뤄졌는데, 이는 고거 네 차례와 비교해 격이 완전히 다르다. 당시 국가부주석이었던 시진핑에게 미국은 사실상 국가 정상급 예우를 하였다. 시진핑이 그해 가을 후진타오에 이어 당 총서기에 오를 것이 확실했기 때문이었다.

시진핑은 당시 버락 오바마 대통령, 조지프 바이든 존 부통령,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등과 잇따라 면담했다. 미국의 배려로 펜타곤까지 방문했다. 시진핑이 1985년 미국 방문 때 묵었던 아이오와 머스커틴 카운티의 직원집은 물론 NBA 농구경기를 관람하는 로스앤젤레스 방문까지 바이든 부통령이 함께 했다. 특히 미국 측은 1980년 시 부주석의 아버지인 시중쉰(習仲勳) 당시 광둥성 당서기가 방미 대표단을 이끌고 17일간 미국을 방문할 당시 남긴 사진첩을 선물로 증정했다.

방미일정을 마치고 떠나기 전 시진핑은 "황금시대는 우리의 앞에 있지 뒤에 있지 않다."는 19세기 미국 작가 E. 벨라미의 명언을 인용해 미·중 양국 관계의 미래가 세계의 황금시대와 함께 한다는 말을 남겼다. 그러자 시진핑은 미국 각계로부터 찬사를, 벨라미는 재조명을 받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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