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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검인물전] 신성일 "난 소확행이 마음에 듭니다"

윤경진 기자입력 : 2018-11-07 00:02수정 : 2018-11-07 00:02

2017년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회고전에 주인공인 배우 신성일이 참석한 모습. [연합뉴스]


지난해 10월.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에 백발의 노신사가 청바지와 가죽 재킷을 걸치고 나타났다. 배우 신성일이었다. 자신의 회고전이 열린 자리에서 그는 "영화가 사람을 죽이고, 분노가 치밀어 오르게 하고, 만날 때리고 욕하고 싸우다 보니 너무 살벌해서 본질을 벗어난다고 생각한다"면서 "따듯한 영화를 만들고 싶다. 작품에 대한 욕심은 항상 있다"는 바람을 밝혔다. 신성일이 만들고 싶다는 따듯한 영화는 '소확행'(소박하지만 확실한 행복)이었다.

신성일은 지난해 10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영화 제목으로 "'행복'을 생각했는데 이장호 감독이 누군가 쓴 것 같다고 하더군요"라며 "일단 '소확행'으로 했어요. 난 그게 마음에 듭니다"라고 밝혔다. 소확행은 신성일이 직접 시나리오 작업을 했다. 그는 "3년 전부터 기획을 하고 있었는데 병 때문에 잠시 미뤘었죠. 시나리오 완성본은 이달 말쯤 나오니까"라고 말했다. 신성일은 이미 배우 안성기와 박중훈을 소확행에서 함께 호흡할 배우로 점찍어 놓았다.

소확행은 노년이 된 유명 사진작가와 두 사위, 외손녀의 이야기를 다룬 가족영화다. 영화 속 노년 사진작가를 신성일이 맡기로 했었다. 스마트폰도 안 쓰고 유선전화만 사용하며 아날로그에 집착하는 장인어른이자 사진작가 역이었다. 옛것에 빠진 사진작가와는 다르게 사위와 외손녀는 디지털 세대를 살아간다. 아날로그와 디지털 세대의 갈등을 아내의 목소리로 만들어진 AI 프로그램으로 풀어가는 이야기다.

그는 지난 4일 오전 2시 25분 조용히 눈을 감았고 6일 영화인장으로 영결식과 발인식이 치러졌다. 신성일은 이미 지난해 6월 폐암 3기 판정을 받고 항암 치료 중이었다. 투병 중에도 영화제에 참석해 영화 산업을 걱정하며 차기작인 소확행을 준비했다.

이장호 감독은 빈소에서 "형(신성일)이 했던 영화들이 계속 남아 있고 영화 속에서는 살아 있으니 그게 우리에게 위로가 된다"며 "형에 대한 약속과 믿음이 있다. 배역은 바뀌겠지만 영화(소확행) 완성을 잘해서 형님 영혼 앞에 바치겠다"고 밝혔다.

소확행은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1986년 수필집 '랑겔한스섬의 오후'에 처음 등장한 용어다. 갓 구운 빵을 손으로 찢어 먹을 때나 하얀 셔츠가 따듯한 햇빛에 바짝 마를 때 풍기는 냄새 등 작지만 가까운 곳에서 느끼는 행복을 뜻한다.

1960년 신상옥 감독의 영화 '로맨스 빠빠'로 데뷔한 신성일이 남긴 영화는 524편이다. 그의 작품을 보며 추억을 되새기고 작은 행복을 얻을 영화팬은 많을 것이다. 신성일이 시나리오를 집필한 '소확행'이 스크린에 걸리는 순간이 그가 우리에게 주는 행복의 마지막 퍼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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