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계 큰 별 지다②] 영화 500편 출연부터 정계 진출까지…故신성일의 역사를 돌아보다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최송희 기자
입력 2018-11-04 10:41
    도구모음
  • 글자크기 설정

4일 타계한 배우 신성일[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영화계 큰 별' 신성일이 4일 오전 2시 30분 세상을 떠났다. 크고 작은 대외사를 돌보며 영화계를 이끌어왔던 신성일은 영화계 발전을 위해 큰 노력을 기울여왔다. 당대를 풍미하고 영화계를 주름잡았던 신성일의 역사를 돌아보았다.

1937년 서울에서 태어나 생후 사흘 만에 대구로 이사한 그는 1956년 경북고를, 1966년 건국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1993년 고려대 언론대학원 최고위언론과정, 1997년 동국대 문화예술대학원, 2000년 경희대 대학원 사회학과를 수료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한국배우전문학원에 들어간 신성일은 3000대 1 경쟁률을 뚫고 당시 신상옥 감독이 세운 신필름 전속 연기자가 됐다. 그는 신상옥 감독의 영화 '로맨스 빠빠'로 데뷔한 뒤 이후 유현목 감독의 '아낌없이 주련다'에 출연, 대중들에게 이름을 알렸다.

신성일을 지금의 자리로 이끈 것은 김기덕 감독의 '맨발의 청춘'이다. 이 작품은 당시 서울에서만 36만 명을 동원, 유례 없는 히트를 쳤고 이후 '별들의 고향', '겨울 여자' 등 히트작을 탄생시켰다.

신성일의 출연작품 편수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는 영화 524편, 연출 4편, 제작 6편, 기획 1편에 참여했다. 특히 1967년에는 한해 동안 51편의 영화에 출연했는데, 그해 제작된 한국영화는 총 185편이었다.

신성일의 영화 사랑은 지극했다. 그는 적극적으로 영화 단체 활동에 참여해왔다. 1979년 한국영화배우협회장, 1994년 한국영화제작업협동조합 부이사장, 2002년 한국영화배우협회 이사장, 춘사나운규기념사업협회장 등을 맡았다.

영화계 인기를 발판 삼아 정계에도 진출한 바 있다.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국국민당 후보로 서울 마포·용산 선거구에 출마했으나 낙선한 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 신한국당 후보로 출마, 또다시 낙선했다.

2000년 제16대 총선에서 삼수 끝에 대구 동구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국회 외교통일위원장 자유한국당 강석호 의원은 고인의 조카다.

영화 관련 일에 적극적인 활동을 펼쳐왔던 그는 청룡영화상 인기상(1963~1973), 아시아 영화제 남우조연상(1979), 대종상영화제 남우주연상(1968), 대종상영화제 남우조연상(1986), 대종상영화제 남우주연상(1990), 대종상영화제 남우조연상(1994), 대종상영화제 영화발전공로상(2004), 제28회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특별공로예술가상(2008), 제17회 부일영화상 영화발전공로상(2008), 제8회 대한민국영화대상 공로상(2010), 제47회 백상예술대상 공로상(2011), 제33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공로상(2013), 제37회 황금촬영상 공로상(2017), 한국영화를 빛낸 스타상 공로상(2017) 등 숱한 상을 받기도 했다.

이에 따라 영화계에선 고인의 업적을 기려 영화인장을 치르는 방안을 놓고 논의 중이다.

유족으로는 부인 엄앵란, 아들 강석현(51)씨, 딸 강경아(53)·수화(48)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30호실에 마련됐으며 조문은 이날 오후1시부터 가능하다. 발인은 11월6일이며, 장지는 경북 영천이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실시간 인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