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20세기 격변기가 21세기 우리에게 주는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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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진 유엔 경제사회위원회 정치경제학자
입력 2018-11-02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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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승진 유엔 서아시아경제사회위원회 경제정책관

백승진 유엔 사아시아경제사회위원회 경제정책관


유엔을 비롯한 여러 국제기구들이 한국을 여전히 개발도상국 그룹으로 분류하고 있긴 하지만, 내부 직원들 사이에서 이 분류에 대해 의아해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도 그럴것이 이미 우리는 세계 10대 경제대국이자 세계 7대 수출대국 반열에 올랐섰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싸이에 이어 방탄소년단이 주도하고 있는 한류의 세계화는, 우리가 더 이상 개발도상국 입장이 아닌 명실상부한 선진국가로써 국제사회공동체 번영에 기여해야 함을 말해주고 있다.

수년 전 한국의 ‘경제발전경험공유사업(KSP)’이 중남미 대륙에서 효과적인 개발협력사업으로 거듭나기 위한 방안에 대해 몇자 적어 일간지에 낸 적이 있다. 우리가 ‘한강의 기적’을 일구어 낼 수 있었던, 예컨대 몇 차에 걸친 경제개발 5개년 계획 등의 노하우를 중남미에 전수시, 중남미 전문가 확보, KSP 전담조직 설립 등, 쉽게 말해 정말 잘해보자라는 것이었다. 그래야만 밀도 있는 ‘KSP 한류’를 탄생시킬 수 있을 거라 믿었기 때문이다.

칼럼 집필시 유엔미션 지역인 중남미를 거쳐 아프리카 그리고 현재는 중동의 경제∙사회발전을 위해 현장에서 발빠르게 뛰어 오면서, 앞서 말한 방안들이 충분조건이 아닐거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물론 “새벽종이 울렸네 새아침이 밝았네. 너도 나도 일어나 새마을을 가꾸세”를 매일 아침마다 흥얼거리셨던 우리 부모님들이 바로 한강의 기적의 주역이였음에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어느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필자가 경험한 많은 개도국 리더들이 보유한 경제정책의 전문성은 우리에 전혀 뒤쳐지지 않았다. 따라서 우리의 경제개발계획 노하우, 새마을운동 경험 등의 전수만으로는 그들의 절박함을 채워줄 수 없을지도 모른다.

지난 정부의 ‘통일대박론’에 이어 현 정부의 “평화가 경제다”라는 슬로건에서도 조금은 유추해볼 수 있듯이, 필자가 주목하는 점은 바로 한국의 경제발전과 동반한 치안역량이다. 우리의 눈부신 발전은 치안안정성을 위한 치열한 노력, 이로 통한 민주적 법적 질서의 틀이 없었다면 결코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치안이란 한 나라의 경제를 지탱하는 펀더멘탈이라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적인 예로, 90년대 말 한국에 불어닥친 외환위기 직후 국내총생산이 6%가량 하락하는 동안 범죄 발생률은 10% 이상 상승한 점을 되집어 본다면 이러한 논리가 크게 비약되지 않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중동은 아랍의 봄 이후 정정불안 상황이 장기화되고 있다. '시리아 내전', '이슬람국가(IS)', '이라크', '난민' 등 수많은 동시대의 국제적 불안 키워드만 떠올려봐도, 지역 내 안보와 치안의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는 곱십어 볼 수 있다. 이러한 정정 불안은 사회개혁, 정치발전 및 민주화에 저해 요인으로 작용되는데, 특히 이와 같은 '불확실성(uncertainty)'은 지속가능한 경제개발계획의 수립∙이행∙평가를 불가능하게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즉 분쟁/취약국가(conflict-affected/fragile countries)에선 치안의 안정성이 담보되지 않는 한 ‘메이드인코리아-KSP’가 통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한국의 외교부, 경찰청 등 몇몇 관련 기관 간 협업 형태로 개별 국가 별로 치안상황 개선을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곤 있지만 아직까진 시작단계에 불과하다. 반면에 여러 역내기구의 국가사무소 또는 유엔과 같은 거대국제기구 차원에서 치안상황 개선과 관련한 수많은 역량구축 프로젝트는 오래 전부터 추진되어오고 있다. 물론 지금은 조금 뒤쳐져 있을진 모르지만, 우리가 이 분야에서 개도국들에 미칠 잠재력은 가히 절대적이다. 왜냐하면 우리에겐 이미 압축된 격변의 산업화·민주화를 경험하면서, 이와 동시에 밀도 높은 치안안정 역량이 축적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에겐 다른 국가나 기관들이 보유하고 있지 않은 KSP라는 브랜드가 있지 않은가.

우리의 경제 발전경험을 집대성한 데이터베이스인 'K-Developedia'가 이미 구축되어 있고, 더 나아가 이를 모듈화시켜 최근 에드엑스(edX)라는 하버드대와 메사추세츠공대가 공동으로 설립한 온라인공개강좌(MOOC)에 런칭되었다. 이렇듯 이미 잘 짜여진 경제발전경험의 판에, 치안역량 강화를 연계시킨다면 이는 단순한 ‘치안-경제발전 KSP’이라는 하나의 이러닝 콘텐츠 추가의 의미를 넘어, 기존에 수많은 국제기구들이 진행하고 있는 치안 관련 개발협력 프로젝트에 우위를 선점할 수 있다. 정부차원에서 적극 검토해서 블루오션을 찾아낸다면 이는 전 세계 어디에도 없는 선도적인 개발협력 방식이 될 것이며, 진정한 ‘KSP 한류’를 창조해 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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