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개혁개방 40년] [기고] 중국의 개혁개방 40주년을 바라보는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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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만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입력 2018-10-17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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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만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특별 기고

[사진= 이상만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중국은 28년의 혁명기간 동안 700만명의 공산당원 중 350만명의 당원이 사망했고, 부패한 국민당 정권과 투쟁하면서 공산혁명을 완성했으나 신중국은 인적 물적 자원의 고갈로 남은 것이 아무것도 없는 일궁이백(一窮二白)상태로 전락했다. 이러한 상태를 인정하면서 초기 중국공산당은 국가발전을 모색하기 위해 1956년 농공상업 부문의 사회주의화 ‘1화3개(1化3改)’를 기획했다. 대약진과 인민공사로 특징지어지는 “56체제”를 통해 사회주의 총노선에 전력을 다했으나 의도했던 공산풍 운동은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실패했다.

물론 중국에서 전(專)은 홍(紅)을 위한 수단으로 작용하고 있지만 홍(사상)-전(실용)노선투쟁은 생산력 제고와 생산관계 변혁의 과정일 뿐이었다. 중국의 성장은 한마디로 개혁개방40년을 거치면서 생산력의 발달에 부응하는 생산관계를 능동적으로 변혁함으로써 가능했던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부와 권력에 대한 욕망이 존재한다. 중국에서는 생산력의 발전에 방해가 되는 것은 무엇이든 제거해야 한다는 생산력 제일 노선은 분명했다. 이에 따라 사회주의 기획 하에 시장경제 기제, 소유제 개혁, 주식제 도입, 상속권 인정과 같은 시장경제에서 아주 중요한 제도를 변혁하는 데 성공했던 것이다.

사회주의 프로젝트 실현을 위한 간헐적 홍전(紅專)투쟁은 중국 현대사에서 중요한 작용을 하게 된다. 56체제의 실패를 정당화하기 위한 권력투쟁에서 홍(紅)이 대세를 장악하고 그후 10년간 이어진 문화대혁명의 후유증으로 인해 중국은 10년이나 퇴보됐다.

이와 같이 중국사회를 어둠으로 전락시켰던 역사를 청산하고 덩샤오핑을 핵심으로 한 실용주의자들은 1978년 11차 3중전회를 거쳐 ‘78체제’를 탄생시켰다. 덩샤오핑의 실용주의 정권은 중국을 과거 마오쩌둥의 중국과 전혀 다른 개혁개방의 새 시대로 인도했다. 이는 마오쩌둥 시대의 도덕적 인센티브를 폐기하고 물질적 인센티브를 허용함으로써 생산력을 제고시키려는 담대한 실천이었다.

사상을 해방하고 실천을 진리의 표준으로 삼으며 생산력 향상을 위해 선부론을 내세우는 등 농촌으로부터 시작된 개혁은 전국으로 확산됐고, 4개 경제특구로 시작된 개방정책은 탄력을 받아 점-선-면식 점진적인 개방을 통해 중국사회는 외국의 기술과 자본을 받아들이는 대가로 중국대륙이라는 거대한 시장을 내주면서 자연스럽게 자본주의 세계체제로 편입해 중상주의적 부국강병을 모색하는 과감한 국가발전 전략을 시도하게 됐다. 이후 중국은 덩샤오핑이 제시한 로드맵에 따라 한 발자국씩 세계가 놀랄 정도의 연 10%대의 경제성장을 통해 국부를 창출해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 됐다.

그러나 1990년대 접어들어 중국은 그간의 경제적 성장통을 겪으면서 중국공산당 내에서 경제성장에 따른 분배문제를 놓고 또다시 노선투쟁을 하게 됐고, 공산당 내 보수파의 공격으로 인해 덩샤오핑의 실용주의 개방노선이 위협을 받게 되자 덩샤오핑은 1992년 1월 ‘남순강화’를 통해 개혁개방의 부진을 질타하면서 변방인 선전에서 중앙인 베이징을 향해 개혁개방의 가속화를 촉구했다.

그 결과 그 해 10월 14차 당대회를 통해 “사회주의 시장경제체제”를 공산당의 당장에 삽입함으로써 덩샤오핑의 생산력 제일 개혁개방의지는 살아나게 됐다. 토지 사용권, 주식제와 상속권으로 대표되는 사회주의 소유제가 개혁돼 중국국민은 생업에 더 열중하게 됐고, 그들이 축적한 부는 그대로 본인의 소유가 되는 그런 정통 사회주의 이념이 퇴색된 홍색 자본주의 시장경제 국가로 변모해갔다.

필자는 개혁개방 중기에 해당되는 1990년대와 2000년 그리고 2010년대를 현장에서 중국의 변화하는 모습을 지켜봐 왔다. 다행히도 지난 7월 말 개혁개방 40주년 중국탐방단의 일원으로 8일간 베이징·상하이·항저우·선전 등 개혁개방의 산실을 방문하는 기회가 있었다.

베이징 유학시절 필자가 거주하던 중관촌 지역의 진르터우탸오(今日頭條), 친구 찾아 자주 갔던 아름다운 항저우의 알리바바 그룹과 상하이의 푸둥신구, 그 당시 홍콩을 가면서 자주 들렀던 선전의 화웨이 본사와 텐센트(텅쉰) 본사를 둘러보고 개혁개방의 열매가 필자의 주관적인 시야에서 매우 풍성하다는 것을 봤다.

이러한 열매는 거시적 측면에서 중국 인민들의 생활수준이 향상되고, 첨단기술과 제조업이 공존하는 이상적인 조합 속에서 중국경제의 성장공간을 확장시키고 있었다. 가령, 점점 늘어가는 역동적인 도시화, 세계역사상 동시대 가장 성공한 빈곤퇴치, 교육을 통한 우수한 인적자원의 배양과 배치, 역동적인 젊은 세대들의 창의적 사고활동, 국가의 적극개입을 통한 산업발전 지원, 어려움을 받아들이는 중국인들의 인내심(吃苦精神) 등 이러한 특징들은 미래에도 중국의 성장을 지속 가능케 하는 불가역적 성장의 DNA인 것이다.

개혁개방 40주년이 되는 2018년 현재 중국은 중견국들의 경제적 성과를 학습함으로써 후발주자의 이득(catch up)이라는 학습효과를 중국화하는 베이징 컨센서스를 만들어 낼 정도로 성장했으며, 노동집약적 성장에서 자본과 기술이 연합하는 기술집약적 성장으로 체제전환을 성공시켰고, 급기야는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는 첨단기술 강국이 돼가고 있다.

물론 중국이 미시적 측면에서 사회주의의 근간인 사회보장제도의 약화, 소유제의 변화, 세계체제 내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주기적 경제위기 속의 패권경쟁, 강대국 간의 무역마찰 그리고 금융부실 등 적지 않은 리스크가 발생할 수 있는 경제성장의 그늘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이것은 강대국간의 헤게모니 쟁탈과정에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필연적 과정이자 중국이 스스로 극복해야 할 문제일 뿐이다.

오늘날의 중국은 덩샤오핑 시대의 도광양회를 거쳐 시진핑 시대의 분발작위로의 진화를 통해 미국이 경쟁자(잠재적 적국)라고 인정할 정도의 “중미공치(中美共治)”시대를 열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제 중국은 미국의 파트너가 아니며, 미국과 세계패권을 놓고 한판 자웅을 겨뤄야 하는 경쟁국이며, 지역적 또는 글로벌 수준에서 발생하는 국제사회의 다양한 문제에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규칙제정자로서의 역할이 증대되고 있다.

그러나 이에 부응하여 중국은 그만큼 국제사회에 대한 의무도 커지고 있다. 중국은 국제사회를 향한 더 많은 국제공공재를 제공해야 하는 의무가 따른다. '인민을 위한 봉사(为人民服务)'를 넘어 '국제사회를 위한 봉사(为国际社会服务)'로 승화되고 진화될 때 중국은 주변국가들로부터 신뢰관계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 중미공치 시대를 맞이하여 국제사회를 위한 중국의 포용적이고 시혜적인 역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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