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진주의 도심 속 진주찾기] ‘폭염’도 공기 연장 사유 포함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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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진주 기자
입력 2018-08-02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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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겐 지금도 공사 현장을 지날 때면 생각나는 어린 시절 기억이 하나 있다.

건설 일을 하시던 아버지는 어린 딸을 봐줄 사람이 없는 날엔 나를 파란 트럭에 태워 공사 현장으로 출근해 혼자 놀고 있게 하곤 하셨다. 지금은 여름에 아이를 차에 혼자 둬선 절대 안 될 일이지만, 그럴 때면 내가 하는 일이라곤 보조석에 앉아 창문 밖으로 하루종일 일하는 아버지를 바라보고 있는 게 다였다.

뜨거운 여름날의 기억이 떠오른 건 이번 주 폭염이 1994년의 역대  최고 기온을 갈아치웠다는 소식 때문이다.

그날 나의 시선은 언제 일을 끝낼지 모르는 아버지에게로 향해 있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 현장에선 공사기간을 맞추려는 아저씨들이 땀을 한 바가지씩 흘리고 있었을 것이다.

지금도 때아닌 폭염에 공사 현장에선 대비책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하지만 하루하루 기록을 갈아치우는 더위에 다들 속수무책인 모습이다.

물론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옥외작업자 건강보호 가이드’에 따르면 기온이 35도 이상일 때는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긴급작업 외의 작업은 멈춰야 한다. 또 1시간 단위로 10~15분간 휴식시간을 가져야 한다. 휴식공간도 햇볕을 피할 수 있는 그늘진 곳이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에선 쉬운 일이 아니다. 지난달 건설노동조합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10명 중 7명은 그늘이 있는 곳에서 쉬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장 근로자 230명 가운데 ‘쉬는 시간에 그늘지거나 햇볕이 차단된 곳에서 휴식을 취한다’고 답한 사람은 26%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아무 데서나 쉰다’고 답했다.

업계에서도 불만이 많다. 공기를 맞추지 못하면 지체상금(遲滯償金)을 물어야 하니 근로자들에게 충분한 휴식을 보장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현재 공기 연장 사유로 태풍과 홍수·지진 등은 ‘불가항력의 사유’에 해당하지만, 폭염은 포함되지 않는다.

이에 지난달 행정안전부와 국토교통부, 기획재정부 등 관련 부처들은 폭염을 공기 연장 사유로 인정하기 위해 재난안전법과 관련 고시 개정을 추진하기로 했다. 이는 국무회의에서 폭염을 ‘특별재난’ 수준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지침이 나온 데 따른 것이다. 개정이 이뤄지면 업계도 공기 연장으로 인해 발생한 추가 비용을 보전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국토부도 전국 지자체와 산하기관에 공문을 전달하며 건설현장에서 폭염에 철저하게 대비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발주청에는 폭염을 불가항력 사유로 인정해 공사기간 연장 등 설계변경 조치를 취할 것을 요청했고, 열사병 예방 안전수칙을 지키고 있는지도 확인에 나섰다.

하지만 이런 가이드라인은 일부 대기업의 건설 현장에서 지켜지고 있을 뿐 소규모 공사 현장에선 그러지 못한다는 것이 현장의 목소리다. 아직 법 개정까지 시간이 걸리는 만큼 정부 차원에서 소규모 현장까지 들여다보는 섬세함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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