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수의 藥속]신약 ‘임상시험’도 주권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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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수 기자
입력 2018-07-11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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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약개발에만 국가지원 초점 맞춰져…임상시험 산업도 동반 성장 이뤄져야

[이정수 생활경제부 기자]

지난 수십년간 제약업계에서만 왈가왈부됐던 ‘신약개발’이라는 단어는 어느덧 사회·경제적 관심사 한가운데에 자리하고 있다. 혁신적 신약이 갖는 가치가 단순히 불치병, 중증질환 치료를 넘어서 경제적으로도 수조원에 이를 수 있음이 확인되면서다. 이로 인해 제약산업은 국가 신(新)성장동력으로 꼽혔으며, 국가적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명분을 얻게 됐다.

그러나 이는 한쪽 측면만 비춰지는 경향이 적잖다는 점에서 아쉽다.

신약을 개발하는 데는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하는데, 그 중심에 ‘임상시험’이 있다. 임상시험은 제한적인 조건만이 부여된 시험·관찰·평가 등을 통해 신약후보물질이 갖는 효과와 안전성을 입증해가는 과정으로, 신약에 있어선 필수다.

임상시험을 진행하기 위해선 계획부터 설계, 관찰, 실시기관·데이터 관리, 분석·자문 등 여러 과정에 대한 전문가와 조직 등을 갖춰야 한다. 그러나 한 제약사가 신약후보물질 탐색부터 영업·마케팅까지 신약과 관련된 모든 영역에 대한 조직과 기술을 갖추기란 쉽지 않다. 때문에 해외 유수 제약사는 오래전부터 전문성을 갖춘 기업·기관에 임상시험 대행을 맡겨왔으며, 현재는 이를 기반으로 성장한 해외 임상시험수탁기관(CRO) 다수가 국내까지 진출해 있다.

국내에서도 신약개발이 본격화됨과 동시에 몇몇 임상시험 대행업체가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이 중 대다수는 현재까지 소형 업체 수준에 머물고 있다. 2000년 설립돼 국내 최초·최대 CRO로 평가받는 LSK글로벌파마서비스 등 몇몇 국내 업체만이 서서히 두각을 드러내고 있는 정도다.

이는 국내 임상시험 대행 시장이 상당부분 외국계 기업에 몰려있기 때문이다. 국내 제약사가 추진하는 임상시험도 예외가 아니다. 한국임상시험산업본부가 발표한 CRO 실태조사에 따르면, 19개 해외 CRO업체 시장점유율은 69%로, 26개 국내 CRO업체(31%)에 비해 2배 이상이다. 2016년까지 매출 증가율에서도 해외업체가 22.2%로 국내업체 17.8%를 앞섰다.

임상시험은 규모에 따라 수백, 수천억원에 이르는 비용이 소요될 수도 있을 만큼 기업이 갖는 부담은 상당하다. 때문에 제약사로선 비교우위를 거쳐 임상시험 경험이 풍부하고 결과에 대한 신뢰성이 보장된 업체·기관을 선택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일각에선 같은 국가 간 업체임에도 불구하고 신뢰받지 못한다는 점에서 자괴감마저 느껴진다는 푸념조차 나온다.

이러한 현상은 결국 풍부한 경험과 인프라를 갖춘 해외 대기업이 사실상 독식하게 되는 시장구조로 이어진다. 이렇듯 자유경쟁이 계속되면 사실상 국내 임상시험 대행기관 업체는 점차 도태될 수밖에 없고, 결과적으로는 국내 임상시험 산업이 해외업체에게 온전히 자리를 내어줄 수도 있게 된다. 

이제는 ‘임상시험 주권’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 해외 업체에 의존하지 않고 백신 자급자족이 가능해져야 한다는 명분에서 비롯된 ‘백신 주권’처럼, 강화되는 신약개발 추세와 함께 임상시험 산업도 동반 성장함으로써 향후 해외 업체에 의존해야만 되는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미리 준비해야 한다. 이러한 변화는 정부 주도가 전제돼야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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