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4강 리더십 특집] 한반도 정세 변화 속 악몽의 시기 보내는 아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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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은주 기자
입력 2018-06-26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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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력한 '대북 압박'에서 '대화 가능'으로 대북 정책 선회 신호

  • 미·일 공조 바탕이었던 북핵 위기 해소되며 한반도 정세 급변

  • 북한의 적극적 외교 행보에 '대화 외교' 대세...아베에 부담 줄 듯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 12일 도쿄 소재 총리 관저에서 북·미 정상회담 개최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입장을 밝히고 있다. [사진=연합/AP]



‘대북 강경’ 일변도였던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지난 12일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을 기점으로 태도를 180도 바꿨다. 불과 몇개월 전만 해도 북한에 대한 최대 압박을 강조하던 그가 북한과 새로운 출발을 하겠다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러브콜'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 해결은 2012년 제2기 아베 정권이 출범한 이래 최대 숙원사업이다.  2013년에는 아예 '납치 문제 대책 본부'를 신설했을 정도다. 그는 납치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 일본과 북한의 국교정상화는 없다는 방침을 수없이 강조했다. 

그러나 지난 18일 참의원 결산위원회에 참석한 아베 총리의 화법이 미묘하게 바뀌었다. 납치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면서도 북·미 정상회담을 이끌어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리더십을 칭찬했다. 불과 3개월 전만 해도 "강력한 제재를 통해 북핵 문제도 해결하고 납북 문제도 해결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던 그였다. 4·27 남북 정상회담도, 6·12 북·미 정상회담도 선택지에 놓이지 않았던 때였다. 

◆'강력한 압박'에서 '대화 가능'··· 대북 태도 180도 바꾼 아베의 속내 

북한 이슈는 아베 내각에 있어 일종의 '부활 찬스'였다. 정치적 위기가 닥칠 때마다 북한 카드를 꺼내들었다. 아베 총리의 부인인 아베 아키에가 일본 오사카 사학 국유지 헐값 매입에 연루됐다는 의혹에서 촉발됐던, 이른바 '사학 스캔들'로 궁지에 몰렸을 때도 그랬다. 미사일 발사 등 북한의 핵실험을 빌미로 북핵위기론을 강조하면서 북한 이슈를 여론 눈돌리기에 활용, 안보 위기를 부각했다. 

안보법을 정비해 전쟁 가능 국가를 만들겠다는 아베 총리의 야심에 한 발짝 다가서는 듯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친분을 과시하면서 본격적인 친(親)미 외교에도 공을 들였다. 미·일 동맹의 신뢰를 바탕으로 북한을 더욱 압박하겠다는 복안이었다. 2017년 11월에는 트럼프 대통령을 일본으로 초청, 함께 골프 회동을 하다가 벙커에 굴러떨어지는 굴욕을 당하기도 했다. 워싱턴포스트 등 외신들은 당시 '아베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의 충실한 조수', '아베는 미국 외교의 보조' 등으로 보도했지만 아베 총리의 북한 고립 작전에는 타격을 주지 못했다.

그러나 갑자기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김정은 위원장이 한국과의 고위급 대화·정상회담을 제안한 데 이어 집권 후 처음으로 중국으로 해외 방문에 나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추진했다. 줄곧 대립해왔던 미국 측에 지속적으로 회담을 제안하는 등 180도 다른 외교 행보를 선보였다. 현지 언론과 외신이 '재팬 패싱' 우려를 내놓기 시작하자 아베 총리의 마음도 급해지기 시작했다. 미국이 일본산 철강·알루미늄에 대해 각각 25%, 10%의 관세를 부과하기로 한 방침도 아베 내각의 체면을 구겼다.

급기야 역사적인 북·미 정상회담이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개최되는 것으로 확정되자 그보다 앞선 지난 7일(미국시간) 미국을 방문했다. 그동안 미·일 공조를 통해 북한 압박의 뜻을 함께했던 트럼프 대통령은 아베가 도착하기 전 "(북한에 대해) '최대한의 압박'이라는 표현을 더 이상 사용하고 싶지 않다"고 밝혔다. 50여일 만에 트럼프 대통령과 만난 아베 총리는 "북·미 회담이 성공하길 빈다"면서도 "일본인 납치 문제를 언급해달라"고 읍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싱가포르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한반도 비핵화와 북·미 관계 정상화를 목표로 담은 합의문에 서명하며 한반도 해빙이 완연해지자 아베 총리는 대북 정책을 선회하기로 본격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일단 그는 김 위원장과의 북·일 정상회담 일정을 조율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르면 8월 중 평양을 방문할 수 있다는 가능성도 제기된다. 명분은 역시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 해결'이다. 그간 강력한 대북 압력을 주장해 왔지만 김 위원장의 대화 외교 전술에 맞서 대화 노선을 유지해야 한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북한은 2014년 아베 총리의 요구에 따라 납북 일본인 문제를 추가 조사했으나 문제가 없었다는 입장을 내놓은 상태인 만큼 쉽지 않은 대화가 될 것으로 보인다.

◆악몽의 3개월 보낸 아베식 외교··· 또 다른 전환점 맞을까

사학 스캔들은 2017년 3월 처음 불거졌지만 한반도 위기론 덕분에 그동안 아베 정권에 큰 타격을 주지는 못했다. 그러나 남북 정상회담, 북·미 정상회담 개최 등 한반도를 둘러싼 북한 리스크가 해소되면서 아베 총리가 정치적 난관에 부딪힐 때마다 썼던 '북핵 카드'도 이젠 부도수표가 돼버렸다. 각종 스캔들에도 50%대를 유지하던 아베 내각의 철통 지지율은 재팬 패싱 우려가 불거지면서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30%대까지 뚝 떨어졌던 지지율은 최근 들어 40%대에 복귀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다만 아베 총리의 리더십보다는 사학 스캔들이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진 것이 지지율 회복에 도움이 된 것으로 보인다는 게 현지 언론의 중론이다. 

사실상 차기 일본 총리를 결정하는 자민당 총재 선거가 석 달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지지율이 불안한 모습을 보이면서 2021년까지 집권하는 역대 최장기 총리가 되겠다는 아베 총리의 계획도 물거품이 될 위기에 놓였다. 요미우리신문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아베 총리의 자민당 총재 임기가 오는 9월 30일 만료됨에 따라 자민당은 그보다 앞선 같은 달 20일 전후로 차기 총재 선거 투표일을 조정 중이다. 아베 총리 등 4명의 후보가 출마할 예정인 가운데, 아베 총리와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전 자민당 간사장의 2파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에 따라 아베 총리에게는 향후 3개월이 3연임으로 가는 열차에 탑승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될 전망이다. 북·일 정상회담이 언제 어떤 방식으로 추진될지 여부에 관심이 모아지는 이유다. 아베 총리는 그동안 회담을 갖는 상대국 정상의 상황에 맞추는, 이른바 '오모테나시(손님을 극진하게 접대한다는 뜻)' 외교로 주목 받았다. 트럼프 대통령과 만날 때는 트럼프 대통령이 좋아하는 햄버거를 대접하고 골프를 함께 즐겼다. 문재인 대통령이 임기 1주년을 맞았을 때는 서프라이즈 케이크를 선물하기도 했다. 북·일 정상회담이 개최된다면 어떤 카드를 선보일지 주목된다. 

한·중·미 정상이 각각의 방식으로 북한과의 대화를 성공적으로 이끌어낸 만큼 아베 총리의 부담이 높아질 전망이다. 더구나 일본 정치권에서 일본인 납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베 총리를 적극 지원해야 한다는 의견과 졸속 추진을 경계해야 한다는 주장이 엇갈리면서 당분간 내홍을 겪을 여지가 남아 있다. 한반도의 급격한 정세 변화 탓에 지난 3개월간 마음고생을 한 아베 총리는 자민당 선거까지 또 다른 3개월을 앞두고 또다시 정치 롤러코스터 앞에 서게 됐다. 여러 모로 '새로운 출발' 앞에 선 아베 총리의 향후 행보에 관심이 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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