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포제련소 논란] ③ 창업 70주년 앞둔 영풍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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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명석 기자
입력 2018-02-12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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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풍그룹 CI


일반인들에게는 ‘영풍문고’로 잘 알려진 영풍그룹은 내년이면 창업 70주년을 맞는, 국내 대표 비철금속 제련 기업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 지정현황에 따르면, 2017년 5월 기준 영풍그룹은 계열사 수 23개사, 자산총액 10조8000억원으로, 기업순위는 26위에 올라있다. 2016년 현재 매출은 8조3305억원, 당기순이익은 5600억원, 종업원 수는 4679명이다.

1949년 11월 25일 황해도 출신의 동향인 영풍(永豊) 장병희 창업주와 최기호 창업주가 ‘불놀이’로 유명한 주요한 시인과 공동 설립한 영풍기업사를 모태로 한다. 회사를 설립할 당시 ‘수출산업과 수출진흥을 통한 한국경제 재건’이라는 창업이념을 제시했다. 후일 주요한 시인이 장면 내각의 상공부 장관으로 입각하면서 2인체제로 전환했다.

1951년 5월 애국해운을 설립, 이듬해 2월 영풍기업사를 흡수합병해 영풍해운으로 상호를 변경했고, 1962년 6월 대유티탄을, 11월 양양상사를 흡수합병해 영풍상사로 사명을 바꿨다. 1967년 영풍어업과 1972년 경인철강을 흡수합병했다.

1974년 고려아연(주)을 자매회사로 설립했으며, 1978년 4월 지금의 상호인 (주)영풍으로 변경했다. 1979년 일본 도쿄에 영풍재팬(YP Japan Corp.)을 설립했다. 1980년 영풍문화재단을 설립했다. (주)영풍은 1995년 영풍통산을 흡수합병했으며, 2000년 4월 대규모 기업집단 소속회사로 지정됐고, 5월에 한국시그네틱스를 인수했다.

영풍그룹의 초기 주요 사업은 농수산물과 철광석을 수출하는 무역업이었다. 그러던 중 1960년대 초 국내 최대 아연광산으로, 일제시대 당시 미쓰비시가 세운 칠성광업사를 정부로부터 불하받아 연화광업소를 설립했다. 초반에는 아연광을 채굴해 일본에 전량 수출했으나 정부의 중화학공업육성 정책 시기에 맞춰 직접 아연을 생산하기 위해 1970년 석포제련소를 설립, 비철금속 제련 사업에 뛰어들었다.

이후 (주)영풍은 석포제련소의 생산규모를 지속적으로 확대해 단일 아연 제련 사업장중 생산량 규모 세계 4위, 자매회사인 고려아연은 세계 1위에 이름을 올리며 한국은 물론 글로벌 아연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국내 시장에서 소요되는 아연의 85%를 공급함으로써 수요산업의 안정적인 아연 수급과 가격 안정화에 국부 유출 방어 등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종합비철금속제련회사로 발돋움한 영풍그룹의 주요 제품은 아연괴, 황산, 황산동, 은부산물, 인듐 등이다. 또한 종속회사를 통해 인쇄회로기판 제조업, 반도체 패키지업, 상품중개업 등도 진행하고 있다.

일본·중국·오스트레일리아·캐나다·볼리비아·페루·태국·싱가포르·독일·인도네시아 등지의 해외 현지법인을 보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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