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련, 배철현의 아침묵상] 일기日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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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철현 서울대 교수(종교학)
입력 2017-11-2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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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배철현 서울대 교수(종교학)]

 
여명(黎明)
이른 아침 어김 없이 등장하는 여명(黎明)을 본 적이 있습니까? 빛줄기가 된 여명이 당신이 앉아 있는 방으로 들어와 새로운 여정을 시작하려는 당신을 감싸는 그 온화함을 느낀 적이 있습니까?

여기 한 사람이 새날을 시작하고 있다. 그는 지난 13년 동안 고향 로마를 떠나 오늘날 오스트리아, 세르비아, 헝가리, 그리고 유고슬라비아가 위치한 ‘판노이아’라는 로마 식민지에서 군대 진영을 치고, 거친 야만인들과 매일매일 생사를 넘나드는 전투를 벌이던 사람이다. 그는 자신을 ‘남자, 나이는 들었음, 정치가, 로마인, 그리고 통치자’라고 소개한다. 그는 바로 로마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121~180년)다.
 
기원후 166~167년 로마와 로마제국 전역에 역병이 창궐해 제국의 기반이 흔들렸다. 특히 로마제국의 북쪽 국경은 켈트족과 게르만족 등 야만인들이 이탈리아 본토를 침공하려고 힘을 규합하고 있었다. 아우렐리우스는 황제 재위 시절(161~180)의 대부분(168~180)을 이들과 싸우기 위해 로마군대와 함께 전쟁터에서 보냈다. 그는 오늘날의 세르비아인 시르미움에서 180년 사망했다.

그가 이 전쟁터에서 맞이하는 하루는 간절했다. 그 아침은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매일 아침 동이 틀 때, 자신의 느낌을 일기로 기록했다. 그의 아침일기는 하루를 시작하는 의례다. 태양이 뜨지 않으면 하루가 시작하지 않듯이, 아침일기는 그가 하루를 시작하는 빛줄기였다. 한 치의 미래도 예상할 수 없는 전쟁터에서 그의 일기는 유언장(遺言狀)이다. 175년 시리아를 치리하던 신복 아위디우스 카시우스가 반란을 일으켰고, 자신의 사랑하는 여인이자 아내인 파우스티나가 터키 카파도기아에서 사망했다. 그는 자신의 인생을 회고하면서 최선의 삶을 일기에 가감 없이 적어 내려갔다.
 
명상록(瞑想錄)
아우렐리우스가 남긴 이 일기를 우리는 '명상록'(瞑想錄) 혹은 '자성록'(自省錄)이라고 부른다. 이 명칭들은 그가 남긴 소중한 글들의 특징을 잘 대변해 주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생존할 당시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통치자였다. 그는 로마 황제로서 하루에 처리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 같았을 것이다. 우리가 그를 로마 황제보다는 가장 위대한 철학자들 중 한명으로 아는 이유는 그가 전쟁터에서 남긴 이 일기 때문이다. 가장 공적인 인간일 수밖에 없었던 아우렐리우스는 가장 사적인 인간이었다. 그는 매일 새벽 시간을 구분해 온전히 자신에게 쏟았다.
 
그는 자신을 둘로 나누었다. 자기 자신과 우주와 자연이 그에게 맡긴 의무를 실행하는 ‘또 다른 자신’이다. 명상록은 ‘또 다른 자신’에게 바라는 충고와 숙고의 글들이다. 아우렐리우스는 자신 안에 존재하는 ‘또 다른 자신’에게 경고하지만, ‘또 다른 자신’은 그 경고에 답하지 않는다. 이 책은 ‘자신’과 ‘또 다른 자신’과의 고요한 대화다.
 
‘그 자신’
아우렐리우스는 명상록을 자신의 언어인 라틴어로 기록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현재를 자신이 열망하는 모습으로 향상시키고 자신의 마음의 온전한 주인이 되기 위해 자신이 어려서부터 철학을 배우며 연마한 고대 그리스어로 기록했다. 그는 어려서부터 그리스 철학과 수사학을 배우며 자신이 세상을 이해하는 중요한 시선을 연마했다. 상상해보라. 로마 황제가 이른 아침 목욕재계하고, 진영에 마련된 자신의 서재에 앉아 자신의 언어가 아닌, 자신에게 삶의 철학을 가르쳐 준 고전 그리스어로 아침 일기를 썼다. 아우렐리우스가 자신의 일기는 쓰는 시간은 순간이 영원이 되는, 인간 정신의 정수가 탄생하는 빅뱅의 순간이다.
 
명상록의 심오한 의미는 이 책의 그리스어 원제목에서 드러난다. 원제목은 ‘타 에이스 헤아우톤’ta eis heauton이다. 이 제목을 있는 그대로 번역하자면 ‘그 자신에게 (말하고 싶은) 것들’이다. 그는 이 일기를 자신을 위해 기록했다. 2000년이 지나 우리가 읽는 것을 알면 소스라치게 놀랄지 모른다. 그는 이 일기는 ‘자기 자신’이 아니라 ‘그 자신’(헤아우톤)에게 썼다. 그의 마음속에는 자신에게 편하고 익숙한 ‘내 자신’(myself)과 그런 자신을 정복해 자신이 건축해야 할 숭고한 자신인 ‘그 자신’(himself)이 있다. 아우렐리우스는 욕심과 욕망으로 가득한 ‘자신’이 아니라, 자신이 수련하여 도달해야 할 ‘우주적인 자신’ 혹은 ‘신적인 자신’을 ‘그 자신’이란 3인칭으로 사용했다. 자기편리가 장악하는 편견에 사로잡힌 자신을 위한 생각이 망상(妄想)이다. 우리가 흔히 ‘기도’라고 부르는 대부분의 종교행위는 욕망에 사로잡힌 자신의 이익을 자신도 알지 못하는 신에게 요구한다. 대개 망상들이다.
 
과거의 자신을 버리고 새로운 자신을 만들기 위해 자신은 스스로를 나비가 고치를 버리듯이, 새가 자신을 감싸는 알을 깨고 나오듯이 과거의 ‘자신’을 유기해야 한다. 그런 행위를 '무아'(無我) 혹은 ‘비움’이라고 말한다. 힌두교 경전 우파니샤드는 우주적인 자아가 바로 진정한 자아라고 말한다. 힌두교 스승이 학생에게 무화과 열매를 가져왔다. 스승은 학생에게 무화과 하나를 갈라보라고 말한다. 그리고 묻는다. “너는 그 안에서 무엇을 보느냐?” 학생은 “수많은 씨가 보입니다”라고 대답한다. 스승은 조그만 씨 하나를 다시 열어보라고 시킨다. 그리고 다시 묻는다. “너는 그 안에서 무엇을 보느냐?”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이에 스승이 말한다. “네가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으로부터 이 커다란 무화과나무가 자라났다.”

커다란 무화과나무가 상징하는 온 우주인 ‘브라흐만’(Brahman)은 눈이 보이지 않은 개개인의 마음속에 있는 진정한 자아라는 ‘아트만’(Atman)에서 출발했다. 아우렐리우스의 ‘그 자신’은 우파니샤드의 ‘브라흐만’이다. 그는 매일 아침 우주와 자연이 자신에게 부여한 의무가 무엇인지 깊이 묵상했다. 3인칭은 그가 열망하는 자신의 모습이자, 그가 존경하는 신이며, 그의 삶의 원칙인 자연의 조화와 이성이다.
 

마르쿠르 아우렐리우스(로마 카피톨리니 박물관 소장) [사진=배철현 교수 제공]


‘요새’
명상록의 원제 ‘타 에이스 헤아우톤’(ta eis heauton)에서 두 번째 단어인 ‘에이스’(eis)가 의미심장하다. 에이스는 그리스어 전치사로 ‘(장소) 안으로’라는 의미다. 그 장소는 누구나 한 번에 들어갈 수 있는 쉬운 장소가 아니다. 그곳에 들어가려고 오랫동안 정성스럽게 노력해야 들어갈 수 있는 거룩한 요새(要塞)다. 아우렐리우스는 지상의 요새보다 정복하기 어려운 요새를 자신의 마음에서 발견하였다. 그는 이 요새를 고대 그리스어로 ‘아크로폴리스’(akropolis)라고 불렀다. 그가 이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선 먼저 장애물들을 제거해야 한다. 그것들은 자신을 과거의 자신으로 되돌려 보내려는 것들이다. 편견, 충동, 욕심 그리고 욕망이다.

그는 무절제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습관을 장악하는 마음을 ‘헤게모니콘’(hegemonikon), 즉 ‘지배적인 이성’이라고 불렀다. 아우렐리우스는 말한다. “너의 지배적인 이성은 자신이 원하지 않는 것을 하지 않는 자족의 상태에 이를 때 난공불락이다 ··· 욕심을 제거한 마음은 요새(akropolis)다.”(명상록8절 48장) 그는 매일 아침 자신의 마음속 깊은 곳에 위치한 요새로 들어간다. 이곳은 우주와 내가 하나로 신비하게 하나가 되는 공간이다.
 
‘권고’
아우렐리우스는 이 요새로 들어가 자신이 그 날 해야 할 일을 스스로에게 촉구한다. 그는 매일 아침 자신에게 그날 자신이 반드시 행해야 할 것들을 스스로에게 추천하고 권고(勸告)한다. 원제 ‘타 에이스 헤아우톤’의 첫째 단어인 ‘타’(ta)는 고대 그리스어 3인칭 중성 복수형 대명사로 ‘것들’이란 의미다. 그는 우리에게 자신을 정복하고 승화하기 위해 매일매일 수련한 것들을 이 책으로 알려주었다. 그가 로마제국을 통치하고 전투를 해야 하는 외적인 압박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요새로 매일 이른 새벽에 들어갔다.

당신은 하루를 섬세하게 준비하십니까? 당신은 오늘 하루 자신이 간절하게 원하는 ‘그 자신’을 가지고 있습니까? 당신은 그에게 무엇을 권고하시겠습니까? 아우렐리우스는 말 위에 앉아 왼손으로 말의 고삐를 잡고 오른손은 우리를 향해 뻗은 채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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