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포커스] 명문장수기업 씨 말리는 가업상속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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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오 IT・중기부 부장
입력 2017-11-27 0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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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오 IT중소기업부장]

섬유·의류 제조업체인 호전실업의 박용철 회장은 최근 들어 고민이 많다. 지난 30년 넘게 땀 흘려 일군 회사를 이제 자식에게 넘겨줄 때가 됐다는 생각이 들지만 대외환경이 녹록지 않다는 점 때문이다. 그동안 오로지 성공하겠다는 일념으로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리면서 회사를 대물림하는 문제에 소홀히 한 터라 준비가 덜 됐다. 주변에선 가업승계를 잘못 했다가는 세금 폭탄을 맞을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가업승계를 ‘부의 대물림’으로 보는 사회의 부정적 인식과 과중한 상속·증여세가 중소·중견기업의 지속적 성장을 막는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가업승계는 단순히 개별 기업의 경영과제에 그치지 않는, 고용 및 경제 활성화 등 국민경제에 있어 중대한 사안이다. 가업승계가 순탄하지 않으면 건강한 기업생태계 조성은 불가능하다.

국내 가업승계 관련 세금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현행 상속세 규정에 따르면 최대주주는 최고 실효세율이 상속 자산의 50%에 30% 할증을 더해 최고 65%의 세율을 부과하고 있다. 정부는 1997년 가업승계를 지원하기 위해 가업상속공제를 처음 도입했다. 하지만, 가업상속공제제도가 시행된 지 10년이 된 현재 시점에서도 제도의 실효성은 여전히 미지수다. 상대적으로 혜택이 적고 조건도 까다롭다. 그나마 매출 3000억원이 넘는 곳은 혜택을 받지 못한다. 높은 상속세율 부담을 낮춰달라는 기업의 주장을 받아들여 가업상속 공제 한도액이 2007년 1억원에서 2014년 이후 500억원까지 500배 늘어났지만 비합리적 요건들로 인해 도입을 시도조차 못하는 기업들이 대부분이다.

열정을 바쳐 키운 '명문 가업'을 상속세 등으로 망가뜨리기보다는 승계를 통해 더 키워 나가는 것이 국가경제적으로 더 큰 이익을 가져다준다. 선진국에서는 일찍부터 가업승계의 중요성을 인식해 세제지원뿐만 아니라 장수기업 우대 등 다각적 측면 지원책을 강구해 왔다.

우리나라처럼 가족 기업 비중이 높은 독일의 경우에는 상속 공제 혜택을 주는 데 별도의 제한이 없다. 가족 기업 비중이 낮은 영국도 상속 공제 혜택을 부여할 때 ‘물려주는 피상속인이 상속 직전 2년간 소유하라‘는 조건만 달아놨을 뿐 상속 공제대상이나 공제한도 등에 별다른 제한을 두지 않았다.

일본은 한시적으로 상속세 납부를 유예했다. 미국은 지난 9월 상속세 폐지(2025년부터 적용 예정) 등을 담은 세제 개편안을 공개했다. 기본적으로 상속 세율을 낮게 유지하거나 폐지하고 있는 주요 선진국들은 기업 자산에 대해서는 상속세를 면제 해주는 공제 혜택 범위를 폭넓게 인정해 주고 있는 것이다.

정치권과 학계 등에서는 스웨덴처럼 가업승계 기업에게 차등 의결권을 보장하는 ‘황금주’를 발행하거나, 창업주 가족이 공익재단에 주식을 넘기고 경영권을 계속 행사하도록 하는 방안 등을 보완책으로 거론하고 있다.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에서 가업 승계 규제 완화에 대해 "여야 모두 가업 승계 문제에 대해서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상속증여세를 탈루하는 방식이 아닌 이상 건전한 가업 승계는 정부가 적극 지원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취임 일성으로 이에 역점을 두고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셈이다.

정부가 이번 기회에 가업승계를 책임의 대물림, 기업의 경쟁력 강화, 고용 안정, 중소·중견기업 육성이라는 관점에서 보다 전향적으로 접근해 세법을 손질하고 현실에 맞게 정비하는 작업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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