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기의 그래그래] '깽값' 권하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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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보기 작가·북칼럼니스트
입력 2017-11-2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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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최보기 작가·북칼럼니스트]


"이때 김 좌수가 흥부를 불러 하는 말이 '돈 삼십 냥을 줄 것이니 내 대신 감영에 가서 매를 맞고 오라' 한다. 흥부는 '삼십 냥 중 열 냥은 양식을 사고, 다섯 냥은 반찬을 사고, 다섯 냥은 땔감을 사고, 열 냥은 매 맞은 다음 장독(杖毒)을 다스려 몸보신하는 데 쓰리라' 생각한다."

흥부전에서 흥부의 가난을 극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도입됐을 것으로 보이는 '매품팔이' 대목이다. 돈을 받고 죄인, 특히 양반이 맞을 곤장을 대신 맞아 주는 것이다. 조선시대 곤장은 길이, 넓이, 재질 등이 종류에 따라 엄격하게 규정돼 있었다. '치도곤을 당하다'는 말은 가장 큰 곤장이 치도곤(治盜棍)이라 생겼다. 장사(杖死)라는 말대로 곤장은 맞다가 죽기도 하는 무서운 형벌이었다.

죽을지도 모를 매품을 팔 생각을 하는 것으로도 흥부는 동정하기 어려운, 한심한 친구다. 놀부가 부모 유산을 독차지한 후 쫓아내는데 그대로 당하고 마는 것도 그렇다. 가난한 살림에 자식을 스물 다섯 명이나 거느린 것도 그렇다. 일 년에 한 명씩 25년이면 사람의 노동력이 대우 받던 농경사회에서 머슴살이라도 돈을 벌 수 있는 자식이 최소 열 명은 넘는데도, 입에 풀칠을 못해 형수에게 ‘주걱으로 한 번 더 때려달라’던 흥부는 가정을 경영하는 가장으로도 빵점이다.

매는 무지 아프다. 맞아서 몸이 아프고 무시당한 인격에 정신이 아프다. 매 맞을 때 몸이 매우 아프다는 것은 초중고 다니며 무수히 실감했던 ‘사실’이다. 무수했던 매 중 세 번의 치명적인 매가 잊혀지지 않는다. 초등학교 1학년 때였다. 기껏해야 새총 정도의 무기를 소유하고 있던 나는 대나무를 불에 구워 제대로 된 활을 만들었다. 끝에 못을 묶고 뒤에다 닭의 깃털을 붙인 화살도 만들었다. 그걸 사용해볼 요량으로 집 밖으로 가지고 나가다 큰형님에게 들켰다. “네가 누굴 잡으려드느냐”는 꾸중과 함께 그 대나무가 다 헤질 만큼 맞았다. 지금 생각해도 그 매는 ‘사랑의 매’가 분명했다. 그렇게 때렸던 큰형님께 아무런 감정이 없는데다 그 이후부터 어떤 위험한 놀이나 도구를 스스로 경계했기 때문이다.

두 번째 매는 중학교 때였다. 박 모라는 음악 선생이 있었다. 본인의 말에 따르면 북한에 몰래 왔다 갔다 했다는 특수부대를 갓 제대한 청년이었다. 성격이 몹시 거칠었던 이 자는 교장·교감에게 꾸중을 듣거나 선생들끼리 배구 대항에서 지거나 하면 그 화풀이를 꼭 학생들에게 해댔다. 그것도 무지막지한 벌이나 매로 풀었다. 월말고사 다음날 이 자는 목공소에서 제작한 커다란 곤장으로 음악 점수가 40점 이하인 학생들을 불러내 사력을 다해 종아리를 열 대씩 때렸다.

맞은 학생들은 하나같이 한 대를 맞을 때마다 교실 바닥에 나뒹굴었다. 나도 그 안에 포함돼 있었다. 공부를 못한 만큼 낮은 점수로 대가를 치렀고, 공부 못하는 것이 죄도 아닐진대 나는 지금도 그 자의 처사를 이해할 수 없다. 지금이라면 생각지도 못할 일이지만 ‘대도시 출신으로 시골의 무지렁이 학생과 학부모를 무시했던 탓’이라는 생각에 이르면 지금도 그 자에게 분노가 솟구친다. 이미 고인이 됐을지도 모르기에 다만 실명을 밝히지 않을 뿐이다. 세 번째 매는 때린 자가 가까이에서 친하게 실존해 있고, 그 사실을 거론하는 것 자체가 나의 자존심을 건드리므로 기억에만 둘 뿐 어디서도 발설하지 않고 있다.

매와 관련된 속된 말 중 ‘깽값’과 ‘깽판’이 있다. 쉽게 말해 ‘깽판을 친 대가로 지불하는 돈이 깽값’인데 여기에는 사람을 때려 놓고 형벌을 피하기 위해 지불하는 합의금도 포함돼 있다. 언젠가 재벌가문 인사가 근로자를 야구방망이로 마구 때린 후 서민에게는 상당한 금액의 ‘맷값’을 던져줘 국민들의 공분을 샀었다. 엊그제는 또 다른 재벌가문 20대 청년이 술자리에서 국내 대형 로펌의 신입 변호사들에게 폭언과 함께 주먹을 휘둘렀다고 해서 공분이 일고 있다.

아마도 대형 로펌 변호사라면 명문 로스쿨 출신이 많을 것인 바 이 나라 최고의 엘리트들이다. 기자들은 현장에 있었던 변호사 중 이 청년보다 나이가 더 많은 30대도 여럿이라 전한다. 궁금한 것은 이 사건이 두 달 전인 9월에 발생했다는데 왜 지금에야 불거졌는가다. 더구나 폭행죄는 피해자가 원하지 않으면 처벌하지 않는 ‘반의사불벌죄’인데 피해 당사자들은 경찰이나 기자들과 연락도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는 엉뚱하게도 제3자인 대한변호사협회가 이 청년을 고발하고 나섰다.

이 대목에서 문득 ‘뺨을 맞더라도 금가락지 낀 손에 맞아라’는 옛말이 떠오른다. 뭐가 얘기가 잘 안됐던 걸까? 대형 로펌의 신입 변호사라면 상대적으로 높은 명망과 수입은 물론 소속집단의 영향력도 막강하다. 그들은 또한 앞으로 법치주의를 지키고 감시하는 일의 최전선에서 활약해야 할 문명국가의 보루다. 이 엘리트들마저 ‘돈이 깡패다. 돈이 계급이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배를 내밀고 고개를 쳐들지 못하는 야만의 사회라면 더 아래의 사람들은 누구에게 무엇을 기대할 수 있단 말인가!

그저 젊었을 때 자주 불렀던 노래의 한 구절을 흥얼거려나 볼 뿐이다. ‘새파랗게 젊다는 게 한밑천인데 쩨쩨하게 굴지 말고 가슴을 쫙 펴라.’ 일찍이 가혹한 매를 들어 나를 사람 되게 하셨던 큰형님이 무척 그립다. 이런 날 딱 소주 한 잔 쳐드리고 싶은데 이젠 그럴 수 없어 마음이 더욱 슬프다. 한 번만 딱 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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