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석규의 대몽골 시간여행-10] 약탈혼(掠奪婚)은 정당한가?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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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석규 칼럼니스트
입력 2017-07-31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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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배석규 칼럼니스트]

▶ 호수가의 신부(新婦)사냥
몽골 동북부에 있는 빈데르 솜에서 동쪽으로 10킬로미터 정도 나아가면 차가누르라는 이름의 아담한 호수를 만난다.
솜은 우리의 행정단위로 보면 군(郡)정도로 보면 된다.

몽골의 초원에서는 이처럼 폭이 1Km에서 2Km 정도 되는 자그마한 호수를 간간이 만나게 된다.
몽골에는 그 폭이 수십 킬로미터에 달하는 바다와 같은 호수가 여러 개 있지만 대부분의 호수는 빈데르 근처에 있는 차가누르와 비슷한 크기를 하고 있다.
 

[사진 = 차가누르(흰호수)]

흰 호수라는 의미의 차가누르의 가장 자리를 타고 이름을 알 수 없는 조그마한 물새들이 떼를 지어 나르고 있다.
수 백 년 수 천 년을 초원 속에 조용히 가라앉아 있었던 이 호수는 지금도 푸른 하늘과 그 위를 떠가는 구름 그리고 물새들을 수면에 담은 채 별로 달라질 것이 없는 모습으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호수에서 2 킬로미터쯤 북쪽으로 길게 이어진 나무 행렬이 눈에 들어온다.
초원에서 만나게 되는 줄지어 선 나무들은 그 행렬을 따라 어김없이 강이 흐르고 있다는 것은 그 동안의 경험으로 알 수 있었다.

그 나무 틈새로 흐르고 있는 강이 바로 과거 몽골족의 젖줄이었던 오논강 이었다.
차가누르와 오논강 사이에는 초원이 길쭉한 모양으로 뻗어 있다. 그 초원은 동쪽으로 낮은 언덕으로 이어지고 있었지만 나무 한 그루 없이 초원과 마찬가지로 풀로만 덮여 있어서 산이라기보다는 조금 지대가 높은 초원이라는 느낌이 든다.

오논 강변 초원 지대에서 매 사냥에 나섰던 테무진의 아버지 예수게이가 다른 부족인 메르키드족에게 시집가던 미래 테무진의 어머니 호엘룬을 처음 만난 무대가 바로 이곳이다.
테무진은 칭기스칸이 칸에 오르기 전의 이름이다.

▶ 5부족이 분할한 몽골초원

[사진 = 몽골 주요 5부족]

12세기 몽골 초원은 다섯 개 유력 부족이 분할하고 있었다.
몽골 초원 동북쪽 오논강 일대에 몽골족이 자리 잡고 있었고 그 아래 동남쪽에는 용맹성으로 이름난 타타르족이 중국 금나라와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지금 수도 울란바토르 근처 툴 강 지역에는 케레이트족이, 북쪽 바이칼 호수 아래쪽에는 메르키드족이 장악하고 있었다.
그리고 서쪽 알타이산맥 쪽은 투르크 계통의 나이만이라는 종족이 자리하고 있었다.

미래의 칭기스칸인 테무진의 아버지 예수게이는 몽골 울루스를 탄생시킨 첫 번째 칸인 카불칸의 둘째아들 바탐 바아토르의 세 번째 아들로 태어났다.
몽골족의 귀족 출신이기는 해도 그는 칸의 자리를 차지할 만한 위치에 있지 않았고 바아토르라는 칭호를 가진 키야트씨족의 한 수령으로 머물러 있었다.

바아토르라는 칭호는 용맹스러운 장수에게 주어지는 명칭으로 보면 된다.
예수게이가 테무진의 어머니 호엘룬을 만난 과정을 몽골비사를 근거로 그려보면 이렇다.

▶ 예수게이와 호엘룬의 운명적 만남
매사냥을 하고 있던 예수게이 바아토르는 이곳에서 신부를 데려가는 메르키드족의 에케 칠레두와 마주쳤다.
칠레두는 바이칼호 남쪽에 사는 메르키트족의 족장인 토크토아 베키의 사촌동생으로 옹기라트부의 일파인 올쿠누우드 족장의 딸 호엘룬을 신부로 맞아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몽골 고원의 동쪽 끝에 자리한 옹기라트부는 예로부터 빼어난 미인이 많아 미인들을 이용한 정략결혼을 통해 생존을 도모해 온 특이한 씨족이었다.

"예로부터 옹기라트 딸들은 예쁜 얼굴을 가진 미인들입니다. 용모가 빼어난 딸들을 길러 앞방에 있는 수레에 태워 높은 자리 한쪽에 앉게 합니다."

몽골비사는 옹기라트 사람들이 스스로 밝힌 생존 전략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실제로 몽골의 왕후 자리는 대원제국의 마지막 황제 토곤 테무르에 이르기까지 거의 이 옹기라트 여인들의 차지였다.

근년에 방영된 TV 드라마 ‘기왕후’(奇王后;하지원, 지창욱 주연)에 등장하는 왕후 타나실리도 바로 이 옹기라트 출신이다.
드라마에서는 탤런트 백진희가 이 타나실리 역을 맡았다.
호엘룬이 천 킬로미터 가까이 떨어진 메르키트 족장의 사촌 동생에게 시집가게 된 것도 다분히 이러한 정략결혼에 의한 것이었다.

▶ 남의 신부(新婦)를 가로 챈 예수게이

[사진 = 원조비사(몽골비사)]


당시의 상황을 몽골비사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호엘룬의 빼어난 미모에 혹한 예수게이는 급히 집으로 달려가 형 네쿤 타이시와 동생 다리타이 옷치긴을 데려와 그들 일행을 뒤쫓았다.

그들이 다가오자 심상치 않은 상황에 호엘룬은 "저들이 누군지 아세요? 인상이 예사롭지 않아요.
당신의 목숨을 해칠 얼굴이에요."하며 칠레두에게 도망갈 것을 권유했다.

"당신은 살아만 있다면 숙녀와 귀부인을 얼마든지 얻을 수 있어요. 다른 여자를 얻어 그 여자의 이름을 호엘룬이라고 지으세요. 우선 목숨을 돌보는 것이 중요해요 내 냄새를 맡으며 가도록 하세요."
라며 자신의 저고리를 벗어 줬다.

칠레두는 겁을 집어먹고 타고 있던 발 빠른 호박색 말의 뒷다리를 걷어차며 언덕 너머로 열심히 달아났다.
칠레두가 일곱 개의 언덕을 넘을 때까지 뒤쫓아 갔다가 다시 돌아 온 세 사람은 호엘룬의 수레를 끌고 집으로 가려 했다.

이때 호엘룬 우진은 "내 신랑 칠레두는 바람에 거슬러 머리칼을 흩뜨린 적도 없고 거친 들에서 배를 주린 적도 없었는데 지금 어찌하여 두 갈래 머리채를
한 번은 등 뒤로 한 번은 가슴 앞으로 날리며 가는가?"라고 말하면서 오논강이 물결치도록 숲이 울리도록 큰소리로 울어댔다.

그러자 예수게이의 동생 옷치긴이 나란히 가면서 그녀를 설득했다.
"당신이 그리워하는 사람은 고개를 여럿 넘었소. 당신이 울어 주는 사람은 이미 물을 여럿 건넜소. 외쳐도 당신을 돌아보지 않을 것이오. 찾아도 당신은 그가 간 길을 찾을 수가 없소. 이제 그만 좀 해 두고 예수게이를 따르도록 하시오!" 하고 달랬다.
예수게이는 이렇게 해서 호엘룬 우진을 집으로 데려왔다.

몽골에 하나 밖에 없는 유일한 중세 역사서 몽골비사는 예수게이가 호엘룬을 납치해 아내로 삼은 장면을 이처럼 당당하게 기록하고 있다.
남의 아내가 될 여자를 빼앗아 자신의 아내로 삼은 이른바 약탈혼(掠奪婚)은 크게 문제시되는 일이 아니라는 그 당시 몽골인들의 인식이 그 밑바닥에 깔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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