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병희 칼럼] 사회적 윤리와 기업의 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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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병희 기자
입력 2017-07-16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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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반병희]



1944년 겨울 알프스 동부 산악지역. 눈보라가 세차게 내리쳤다. 비상식량은 동이 나고 통신마저 끊겼다. 그때 병사 중 한명이 외쳤다. 배낭에서 구겨진 지도 한 장을 찾아낸 것이다. 부대원들은 지도에 마지막 희망을 걸었다. 밤새 걸은 끝에 마침내 포위망을 뚫고 산악지대를 빠져 나왔다. 2차대전 당시 알프스에 급파됐으나 독일군에 포위됐던 헝가리부대가 겪은 실화다.
반전은 탈출 뒤에 일어난다. 안전지역에 도착한 부대원들은 경악을 했다. 병사의 지도는 알프스가 아니라 수천㎞ 떨어진 피레네산맥을 나타낸 지도였다.
눈치 빠른 분은 알아차렸겠지만 이 사례에서 읽을 수 있는 키워드는 ‘신속한 행동’과 ‘신뢰(윤리)’라는 두 개로 집약된다.
10여년 전 필자에게 이 사례를 소개한 신동엽 연세대 교수(경영학·전략)는 기업경영과 관련지어 ‘경영진의 비전 수립→(구성원 간)목표의식 공유→(즉각적)실천’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경영진은 성공에 대한 믿음을 갖되 일단 비전을 설정하면 좌고우면하지 말고 즉각 행동(실천)에 옮겨야 지금과 같은 초경쟁시대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반드시 전제돼야 하는 것이 있다. 신뢰를 바탕으로 한 공공의 윤리와 선이다. 부대원 중 누군가 춥다고 불을 지피거나, 자기 혼자 편하자고 랜턴을 켜는 일은 반드시 피해야 할 금기사항이다. 그러지 않았다가는 언제 어디서 날아올지 모르는 적의 총알에 머리가 부서지기 십상이고, 부대원 전멸도 불보듯 뻔한 일이다. 지휘관의 명령이, 군령이, 법이 강제하지 않아도 상식선에서 지켜야 하는 질서이자 윤리인 것이다.
한국에서 기업활동의 최고 윤리는 ‘이윤창출’이었다. 돈만 잘 벌면 됐다. 고용을 늘리고 경제성장의 주역으로 자부심도 가득했다. 재벌들은 당당했고, 법도 단지 참고대상일 뿐이었다. 매출 늘리고 세금 잘 내면 ‘시장경제’와 ‘자본주의’는 튼튼한 갑옷이 돼 주었다. 그야말로 ‘권불오년(權不五年), 재벌천년(財閥千年)’이었다.
지나치면 탈이 나는 법. 치킨 판매사를 포함한 대형 식품 3총사, 닭고기 사촌 격인 피자회사, 라면회사, 그리고 일부 대기업 오너들이 요즘 연일 만들어내고 있는 희극을 보노라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닌 듯하다. 해가 기울어도 한참 기울었다.
합법적인 절세라고(설사 정상적인 조세회피라 해도 기업경영이 아닌 어린 자녀 상속을 위한 것이라면 문제는 달라진다), 기업경영의 묘수라고 뿌듯해할지 모르겠으나 법기술자와 세금기술자를 동원한 이들의 행태를 보면 햇빛에 드러난 곰팡이균 수준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딱 그만큼의 천민자본주의의 민낯, 윤리의 부재(不在) 그 자체다.
지주회사를 만들어 수천억원짜리 기업을 몇 십만원의 세금만 내고 대학생 나이의 자식에게 지분을 넘겨주거나, 이런저런 방법으로 미성년자 자녀들에게 수조원짜리 기업의 주식을 대거 양도하고, 유령 회사를 통해 역시 어린 3, 4세에게로 상속에 성공했다며 희번덕거리는 이들은 도대체 누구일까?
한 술 더 떠 한 대형 제약사 오너가 자가용 운전기사에게 폭언을 일삼다 또다시 들켰다. 운전기사를 패대기쳐 물의를 빚은 재벌 총수들이 한둘이 아니건만 기업 오너들의 일탈은 더해간다. 하기야 한국의 대기업 치고 오너나 그 일가가 감옥을 다녀오지 않은 경우가 천연기념물만큼이나 희귀하다는 비아냥이 일상화된 현실이고 보면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마침 공정거래위원회가 문제의 식품사들을 대상으로 조사에 나서겠다고 하니 지켜볼 일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안 될 듯하다. 국세청도 이들이 정말 합법적 절세를 했는지 탈세를 했는지 면밀히 살펴보아야 하고, 검찰 또한 꼼꼼하고도 철저하게 들여다봐야 한다.
‘내가 피땀 흘려 일군 기업, 내 자식에게 물려준다는데 뭐가 잘못이냐?’는 식의 천박한 단순논리에 매몰된 한국기업인들이 스스로 그 미몽에서 깨어나지 못하면, 인위적이라도 그게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워줘야 한다.
굳이 애덤 스미스나 막스 베버를 들먹이지 않아도 자본주의는 공동체의 질서와 윤리가 있기에 가능하며, 경제 플레이어의 하나인 기업도 이에 따라 공공의 이익과 선에 기여해야 한다는 명제는 이미 당위성으로 받아들여진 지 오래다.
기업실적뿐만 아니라 환경, 사회, 지배구조 등 비재무적 요인까지 평가해 ‘착한 기업’에는 투자하고 나쁜 기업에는 투자하지 않는 사회책임투자(SRI·Socially Responsible Investment)가 선진국에서 날로 중시되고 있는 현상이 이를 반증한다. 사회구성원이나 약자와 연대해 경제적 이윤 및 사회적 가치를 함께 만들고 공유하는 공유가치창출(CSV·Created Shared Value)이 자본주의의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는 점 또한 그렇다.
기업도 사회를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다. 그래서 기업에게는 사회적 책무가 따른다. 이미 수많은 한계와 문제점을 노정시키고 있는 자본주의가 다양한 보완 수정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이런 자본주의 반성과 세계적 추세를 외면하고 우리 기업인들이 아직도 ‘내가 키운 회사는 내 것, 그래서 마음대로 한다’라는 퇴행적 사고에 머문다면 기업인들의 사회적 가치와 유리된 일탈행위는 계속될 수밖에 없고, 결국 그들의 기업활동은 정당성을 인정받기 어려워질 것이다. 한국의 기업인들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손봐야 할 단골 대상이 되는 것이 지겹지도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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