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생일 이틀 전 곁으로 떠난 SK창업자 부인 노순애 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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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6-01-29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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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8일 89세의 나이로 별세한 담연 최종건 SK그룹 창업주의 부인 노순애 여사[사진=SK그룹 제공]


아주경제 채명석 기자 = 남편 고 (故) 담연(湛然) 최종건 SK그룹 창업회장의 탄생 90주년(1월 30일)을 이틀 앞둔 28일 밤 89세를 일기로 별세한 노순애 여사는 다른 기업 창업자들의 부인들과 같이 조용히 내조하고 집안의 화목을 일궈낸 큰 어른이다.

1928년 경기도 용인에서 태어난 노 여사는 교하 노씨 규수로 1949년 4월 당시 22세로 수성 최씨의 장손이었던 두 산 연상의 담연을 만나 백년가약을 맺었다. 당시 담연은 자기 사업을 해보겠다며 첫 직장이었던 선경직물공장을 떠난 직후였다.

신혼의 단 꿈을 채 누리기도 전에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해 남편과 시동생 최종현 회장, 시아버지 최학배 공과 함께 피난길에 오른 노 여사는 맏며느리로 남편을 대신해 집안을 지켜냈다. 그해 9월 연합군의 서울 수복 후 집으로 돌아온 뒤, 시어머니는 담연을 시켜 만삭이 된 노 여사를 데리고 처가가 있는 용인으로 가도록 했다. 추수기로 바쁜 시기였지만 임신한 며느리에게 일을 시킬 수 없다는 배려였다.

처가에 온 담연 부부는 사업에 관해 의견을 나눴다. 담연은 새 사업을 위해 그만 둔 선경직물공장이 전쟁으로 폐허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가슴 아파했고, 공장을 다시 살리고 싶어했다. 그러던 중 노 여사가 서울 창고에 사두었던 인견사(인조섬유)는 어떻게 됐느냐고 물었다. 담연이 곧바로 서울 창신동으로 향했고, 천만다행으로 인견사 열한 고리가 고스란히 놓여 있었다. 까맣게 잊고 있었다가 노 여사의 한 마디로 되찾은 이 열한 고리의 인견사로 얻은 자금을 통해 담연은 1953년 8월 정부 귀속 재산이었던 선경직물을 인수했다. 선경직물은 SK그룹의 시발점이었다.

담연이 SK그룹을 이끌었던 기간은 1973년 별세하기 전까지 20년이었다. 국내 기업 창업자들 가운데 가장 짧고 화려한 생을 살다간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러다보니 기업가로서의 살아간 하루하루는 다른 이들에 비해 두 배, 세 배는 힘든 역정이었다. 이러한 담연이 단기간 내에 SK그룹의 기반을 닦은 것은 최종현 회장이라는 최고의 파트너와 함께, 노 여사의 헌신적인 내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후문이다. 평소 말수가 적고 나서는 것을 무척 꺼렸던 노 여사는 가정 일에는 한 치의 소홀함이 없었지만 넉넉한 시골 인심을 느끼게 하는 스타일이었다고 그를 기억하는 SK그룹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담연의 삶만큼 노 여사의 인생도 단 하루도 편한 날이 없었다. 창업 초기 남편이 한 달간 공장에서 숙식을 해결하면서 재건에 힘쓸 때에도 노 여사는 남편이 집안 문제로 발목이 잡히지 않도록 하기 위해 묵묵히 가정을 지켰다. 종갓집 맏며느리로서 수많은 제사를 비롯한 집안 대소사는 물론 고생하는 직원들을 위해 손수 식사를 챙겼다. 이러한 내조가 있었기에 담연은 기업 활동에만 전념하며 선경직물 공장을 점차 발전시킬 수 있었다.

노 여사는 보살계까지 받은 신실한 불교신도로 알려졌다. 고인의 법명은 정법행(正法行)이다.담연의 병세가 악화돼 요양하고 있을 때 부처님의 대자대비로 쾌유될 것을 믿으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고 담연이 1973년 폐암으로 별세한 후에는 줄곧 불공을 드리며 남편의 명복을 빌었다. 대기업 회장 부인이지만 호강을 누려볼 기회도 없이 남편을 먼저 떠나 보낸 노 여사는 불심으로 일가친척의 화목을 이뤄냈다.

결혼 24년 만에 담연과 사별하고 2000년에는 큰아들 최윤원 회장을 후두암으로 잃는 아픔을 겪은 노 여사는 2002년 둘째 아들 최신원 SKC 회장과 함께 사재를 출연해 장학재단인 ‘선경최종건재단’을 설립하고 이사장에 취임해 후학 양성과 사회봉사활동을 펼쳐왔다.

한편 노 여사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시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은 29일 오후 2시부터 조문객을 받기 시작했다. 오전에는 SK일가 가족끼리 모인 가운데 스님들이 축원을 읽고 염불을 하는 등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고인을 추도했다. 최신원 회장과 셋째 아들 최창원 SK케미칼 부회장이 오전에 가장 먼저 빈소에 도착해 조문객을 맞았으며,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여동생 최기원 씨, 최철원 M&M 전 대표를 비롯한 SK일가 대부분의 구성원들도 오전에 도착했다.

최태원 회장은 젊은 시절 수 년간 큰어머니 집에서 생활하면서 많은 지원과 사랑을 받았다고 회고했을 정도로 고인과 애틋한 인연이 있다. 최태원 회장이 도착하기 40분 앞선 오전 10시께 부인 노소영 나비아트센터 관장이 빈소에 도착했다. 노소영 관장은 최태원 회장과 함께 장례식장에 머물다 오전 11시40분께 자리를 떴다.

노 여사는 시동생들이 결혼하기 전까지 함께 살면서 보살피고 결혼까지 손수 챙겼을 정도로 가족들을 극진히 챙긴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지난해 11월 열린 미수연에서도 노 여사는 자식들에게 “아들 딸들아 화목하게 잘 살거라”라고 당부하며 형제 간 우애와 집안의 화목을 강조했다. 고인은 당시 거동이 불편해 본인의 미수연 행사에 참석했던 400여명의 참석자들에게 동영상 메시지를 통해 인사를 건넸다.

재계와 정관계 등 각계 주요 인사들의 조화가 속속 도착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대한상의 회장인 박용만 두산 회장, 이웅열 코오롱 회장,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홍사덕 전 새누리당 의원 등이 조화를 보냈다.

SK회장을 지낸 손길승 SKT 명예회장은 오전부터 빈소에 나왔고 오후 해외 출장 일정으로 출국하는 박용만 회장이 빈소에 5분 가량 들러 최신원·최태원 회장 등을 만나 위로했다. 삼성물산 최치훈 사장도 오전에 빈소에 들러 조문했다.

고인의 발인은 31일 오전 9시이며 장지는 서울 서대문구 광림선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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