뚝심의 MK, ‘철강 현대’ 40년 만에 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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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07-01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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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지난 2013년 9월 13일 충남 당진시 현대제철에서 열린 ‘현대제철 당진제철소 제3고로 화입식’ 행사에서 제3고로의 첫 가동을 위해 불을 지피는 ‘화입(火入)’을 하고 있다.[사진= 현대제철 제공]


아주경제 채명석 기자 = △경일공업·경일산업·현대강관·‘현대하이스코’ △현대종합제철 △삼양특수강·한국특수강공업·한국종합특수강·삼미종합특수강·삼미특수강·비앤지스틸·‘현대비앤지스틸’ △강원탄광·강원산업 △동부특수강·‘현대종합특수강’ △SPP율촌에너지 △한보종합건설·‘한보철강공업’ △조선이연금속 인천공장·대한중공업공사·인천중공업·인천제철·INI스틸·‘현대제철’

창업주를 거쳐 ‘범 현대가’가 숙원사업으로 40년간 추진해온 제철사업의 역사에 남은 기업 이름들이다.

2015년 7월 1일 ‘통합 현대제철’이 공식 출범했다. 회사는 별도의 기념행사를 열지 않았다. 장기화 되고 있는 경제 불황 속에서 자축연을 열 분위기가 아니라는 판단에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날은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젊은 시절을 모두 바쳤던 큰 꿈을 이뤄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특히 현대그룹까지 더해 정 회장이 그룹 총수에 오른지 20년을 앞두고 있는 가운데에서 마무리 됐다. 건설과 조선, 자동차 등 현대를 말할 때 떠 올리는 주력사업 가운데 정상궤도에 오르기까지 가장 오랜 기간이 걸린 사업이 제철이다.

종합제철에 대한 꿈은 창업주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1975년 경일공업(현대하이스코)를 설립하면서 시작됐다. 이어 창업주는 1977년 현대종합제철을 설립하고, 1978년 인천제철을 인수하며 종합제철사업의 커다란 발걸음을 내딛었다.

창업주의 꿈이었지만 실질적으로 이를 이뤄낸 주인공은 정 회장이었다. 1981년 경일공업에서 이름을 바꾼 현대강관 대표이사 사장에 취임하며 제철사업과 첫 인연을 맺었고, 5년 후인 1986년에는 인천제철(현대제철) 대표이사 사장에 취임하며, 현대가의 철강사업을 실질적으로 이끌게 된다.

이 과정에서 창업주와 정 회장은 1980년대 ‘제2종합제철소’, 1994년 ‘제3종합제철소’를 짓겠다고 선언했으나 경쟁사의 견제 및 정부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1996년 아버지의 뒤를 이어 현대그룹 회장에 오른 취임사를 통해 “제철사업을 재추진 하겠다”고 천명하고, 일명 ‘하동 프로젝트’를 가동했다. 하지만 IMF외환위기가 발발해 1998년 스스로 포기해야만 했다.

세 번의 도전과 실패. 하지만 위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1999년 현대그룹은 정부의 재벌 구조조정 요구에 대응하기 위해 인천제철과 현대강관을 매각하고 제철사업에서 손 떼겠다고 발표했다. 꿈이 사라지는 순간. 정 회장은 사돈기업이었던 강원산업을 인천제철과 합병시킨 뒤 1999년 현대그룹에서 독립한 현대자동차그룹에 인천제철과 현대강관을 편입시킨데 이어 2000년 삼미특수강을 인수하며 조용히 종합제철에 대한 의지를 이어갔다. 체력을 키운 4년 뒤 한국에서 일관제철사업을 진행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던 한보철강 인수전에서 승리했다.
 

현대제철 당진 제철소내 3개 고로가 가동하고 있다.[사진=현대제철 제공]


기세를 올린 정 회장은 2006년 충남 당진에 일관제철소 건설을 시작해 2010년 고로 1, 2호기, 2013년 고로 3호기를 연이어 가동했으며, 이어 특수강 공장 건설, 동부특수강 및 SPP율촌에너지 인수 등을 통해 쇳물에서 강판, 강관, 특수강, 선재, 스테인리스스틸(STS) 등 철강에 관련한 모든 분야를 포괄하는 최초의 민간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포기하면 될 일을 창업주와 더불어 정 회장이 왜 그토록 평생을 두고 종합제철사업에 열정을 쏟아냈는지에 대한 의문을 던지곤 한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전후 개도국의 종합제철 건설에 대한 갈망을 “우선 독립 그다음 항공로 그 다음엔 바로 제철공장 건설”이라고 표현했다. 치솟은 고로에서 올라오는 검은 연기는 선진국에 대한 정치적 독립의 상징이며 경제적인 면에서는 오래고도 질기게 엮인 ‘남(개도국)’과 ‘북(선진국)’의 종속관계를 끊는 이정표가 된다는 것이다. 정 회장이 생각하는 종합제철사업도 이와 같다.

1970년 현대차에 입사 후 1974년 현대자동차써비스 사장에 취임한 정 회장은 이후 현대정공, 현대강관, 인천제철, 현대산업개발 등의 경영을 총괄하며 ‘MK사단’을 형성했다. 이들 회사들을 그는 자동차 부품 생산 및 애프터서비스·컨테이너박스·공작기계·철도차량·전차·골프카·구명정·요트·헬기·완성차·건설 등 다양한 사업을 추진했다. 이들 사업들은 모두 철강을 다량 소비한다는 특성을 갖고 있었다. 1970년대말 이후부터 철강소비를 가장 많이 하는 기업은 현대였다.

당연히 철강소재 자급의 필요성을 그 누구보다 뼈저리게 느꼈고, 어떻게 해서든지 진출을 하려고 했지만 그 때마다 경쟁사들은 물론 정부로부터 강한 견제와 반발에 부딪쳐야 했다.

어려운 과정이 되풀이 됐으나 정 회장은 때를 기다리며 대규모 투자를 통해 경쟁사들이 미처 손을 뻗지 못했던 신사업을 벌이는 한편 활발한 기업 인수·합병(M&A)을 통해 사업을 키웠다. 총수의 뚝심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다며, 범 현대가에서도 제철사업은 MK의 성과라고 인정하는 이유다.

현대제철 관계자는 “통합 현대제철의 출범으로 자동차 제조의 가장 중요한 소재인 소재산업(상류부문)과 현대모비스의 부품생산 전문화(하류부문)의 연계라는 큰 사이클을 완성하게 됐다”며 “정 회장의 리더십 덕분에 현대차그룹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고도화 된 자동차 전문기업이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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