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13일 종합부동산세 위헌 소송에서 세대별 합상 조항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림에 따라 종부세는 사실상 뼈대만 남고 실제적인 효력이 사라지는 불능화의 운명에 처하게 됐다.
이미 정부가 종부세 개편안을 통해 과표와 세율을 대폭 완화하고 장기적으로 종부세를 아예 폐지하는 작업을 추진하고 있는 과정에서 헌재가 '세금폭탄'의 근간을 이뤘던 세대별 합산 조항에 대해 사형선고를 내렸기 때문이다.
더욱이 거주목적 1주택 보유자에게 부과하는 조항을 헌법불합치라고 판단함에 따라 실제 종부세가 부과되는 대상은 크게 줄어들고 대대적인 환급 작업도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야권이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의 '헌재 접촉' 및 '위헌판결 예상' 발언을 겨냥해 공세를 늦추지 않고 있는데다 정부의 종부세 개편안이 국회 심의를 앞두고 있어 종부세를 둘러싼 정치적 사회적 논란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을 전망이다.
다만 헌재가 종부세의 세부담이 과도하지 않고 원본잠식 문제도 위헌사유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함에 따라 세부담을 크게 완화한 정부의 종부세 개편안이 향후 국회를 거치며 완화 폭을 놓고 치열한 줄다리기가 벌어질 가능성도 예고했다.
◇ 유명무실 종부세
이날 헌재 결정의 핵심은 세대별(부부) 합산 조항이 위헌이며 거주 목적의 1주택 보유자에 대한 부과는 헌법불합치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부부합산은 2005년 12월말 개정으로 2006년분부터 시행된 조항이다. 같은 시기에 9억원에서 6억원으로 낮춘 주택 과세기준과 함께 종부세의 위력을 배가시킨 양대 축을 이뤄왔다.
그러나 정부가 주택 과세기준을 9억원으로 높이려 하는 상황에서 이날 위헌 결정까지 감안할 경우 부동산이 부부 공동명의이거나 나눠 등록된 경우 전체 자산이 18억원까지는 종부세 부과대상에서 빠지게 된다.
여기에 거주 목적의 1주택 장기보유자에 대한 과세에 대해서도 헌법불합치 결정이 내려짐에 따라 종부세가 부과될 대상은 큰 폭으로 줄어들게 됐다. 결과적으로 `징벌적 과세'라는 이름까지 따라다녔던 종부세의 힘은 사라지게 됐다.
이에 따라 정부가 추진해온 종부세 개편의 폭은 커질 수 밖에 없게 됐다.
정부는 이미 9월1일 세제 개편안에서 올해부터 주택과 종합합산토지의 과표적용률을 작년 수준으로 동결하고 세 부담 상한도 낮추기로 했고 9월23일 종부세 개편안에서는 내년부터 주택 및 사업용 부동산, 종합합산토지에 대한 과표구간 및 세율을 대폭 완화하는 동시에 과표 산정방식을 공시가격이 아닌 공정시장가액으로 바꾸기로 했다.
여기에 헌재 결정까지 반영해야 할 상황이어서 종부세법은 몸통만 남고 수족은 잘리는 형국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 환급 이뤄지고 논란은 증폭될 듯
부부합산 위헌 결정에 따라 납세자들은 이미 납부한 종부세 가운데 부부합산에 따라 더 낸 부분을 돌려 받을 수 있을 전망이다. 현행 국세기본법에 따르면 잘못 부과된 세금에 대해 법정신고기한인 3년 안에 당초 부과 처분을 내린 세무서를 통해 경정청구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정부가 환급 가능 결정을 내려도 2005년분 종부세의 경우 세대합산이 아닌 인별합산 방식으로 부과된만큼 경정 신청 대상에서 제외될 것으로 보인다. 2006년 이후 종부세 납부자 가운데 세대합산 때문에 세금을 더 낸 사람만 경정 신청을 낼 수 있다는 얘기다.
또 헌재가 거주목적 1가구 장기보유자 과세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지만 이는 위헌처럼 법적 무효를 의미하는 것이 아닌 만큼 환급이 불가능하다.
가장 큰 문제는 헌재 결정 이후 이어질 논란이다. 정부의 정책적 판단이 투영된 개편안에 헌재의 법리적 결정이 가세한 상황에서 국회의 정치적 절충과 판단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향후 국회 심의과정에서 헌재 결정이 반영된 종부세법 개정 부분은 더이상의 판단 대상이 아닌 만큼 당연히 통과되겠지만 정부가 애초 내놓았던 개편안의 통과 전망은 여전히 불투명해 보인다.
이미 민주당은 정부 개편안에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해놓고 있는 상황이다. 나아가 정부가 종부세 개편을 위해 내세웠던 통계조차 부풀려졌다는 논란까지 불거지고 강 장관의 '헌재접촉' 발언을 둘러싼 불씨도 아직 살아있는 상황이다.
더욱이 침체일로를 걷고 있는 부동산 시장이 헌재 결정과 정부의 개편안으로 다시 과열 양상으로 치달을 경우 정부의 개편안이 힘을 잃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헌재의 이날 결정 내용에는 정부에 불리하게 작용할 대목도 들어 있다. 종부세의 세 부담이 과도하지 않고 이중과세나 미실현 이득에 대한 과세가 아니며 원본잠식 문제도 위헌 사유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부분이 여기에 속한다.
이는 종부세 개편안을 추진하면서 담세력을 초과하는 과도한 세부담을 문제 삼고 보편성의 원칙과 수익자 부담 원칙에도 배치된다는 정부의 논리에 타격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야당도 이런 내용을 종부세 개편안 저지에 적극 활용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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