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권에서는 역대 정권에서 볼 수 없던 일이 하나 벌어지고 있다. 대통령 임기가 3년 8개월이나 남았는데도 대통령을 향한 거침없는 비판과 공격이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도 야당이 아니라 민주당을 비롯한 범여권 진영 사람들에 의해서다. 아무리 민주화된 세상이라고 하지만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다. 대통령을 향해 어떤 말이든 마음 놓고 쏟아내는 세태를 민주주의의 만개라고 봐야 하나, 대통령 권위의 부정이라고 봐야 하나?
작가 유시민씨의 작심 발언들이 대표적 사례이다. 유씨는 이 대통령이 “검찰 수사권과 기소권의 완전한 분리를 원하지 않기 때문에 검찰 개혁이 1년 넘도록 지연되고 있다”며 "대통령이 지금까지 국민을 속였다"고 했다. 유씨는 “책임을 본인이 지지 않고 법무부 장관이나 총리 등 참모진 뒤에 숨어 욕먹을 일은 남에게 시키고 인기는 본인이 챙기는 방식”이라고도 했다.
"국민 속였다" "내란 세력에 전전긍긍"
현직 대통령에게 ‘국민을 속였다’는 표현보다 더 노골적이고 직설적인 비판은 없다. ‘욕 먹을 일은 남에게 시킨다’는 말처럼 대통령에게 모욕적인 언사도 없다. 유씨는 이 대통령이 여당 대표 선거 등 당의 주요 인사에 직접 개입해 자신이 원하는 사람을 앉히려 한다면서 “오만한 권력자” “과거 윤석열 정부와 유사한 증상”이라고도 했다.
추미애 경기지사도 유씨 못지않다. 추 지사는 이 대통령의 검찰 개혁과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은 내란 세력을 징벌해야 하는데 왜 내란 세력에 업혀서 전전긍긍하는 것인가"라고 비판했다. 이 대통령이 초대 중수청장 후보로 검찰 간부 출신인 김지용 변호사를 지명하자 부적절하다고 주장하며 임명 철회를 요구했다. 추 지사는 민주당 지도부의 경고와 만류에도 불구하고 몇 번이나 같은 주장을 폈다. 현직 도지사인 공직자가 공개적으로 대통령의 임명권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민주당 김용민 의원도 김지용 중수청장 후보자 지명을 비판하며 지명 철회를 요구했다. 그는 ‘정치 검찰의 세력이 그대로 새 중수청에 이식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했다. 박은정 조국혁신당 의원은 행정안전부 차관 등이 김지용 후보자의 과거 행적을 두둔하는 것을 비판하며 "이재명 정부도 잠깐 흘러가는 한 페이지일 뿐"이라고 했다. 김 의원이나 박 의원은 국회의원이니 다른 공직자보다 더 자유롭게 대통령을 비판할 수 있는 위치에 있긴 하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들의 말은 너무도 거침이 없다.
이화영씨, "가석방해라" 공개 압박
대통령이 범여권 인사들에게서 비판과 공격을 받는 사이 이번에는 이화영 전 경기도부지사 측이 대통령을 압박하고 나섰다. 이 전 부지사 변호인인 김광민 변호사는 이 대통령에게 “가석방해 달라”고 요구했다. 이 전 부지사는 ‘쌍방울 불법 대북 송금’ 사건으로 징역 7년 8개월 형이 확정돼 복역 중이다. 이 대통령도 이 전 부지사와 공범 관계라는 이유로 기소된 상태이다. ‘이재명 (당시) 도지사에게 쌍방울그룹 방북 비용 대납을 보고했다’는 이 전 부지사의 검찰 진술이 이 대통령 기소의 근거가 됐다. 현재 이 전 부지사는 검찰의 ‘연어 술 파티’ 회유에 넘어가 허위 진술을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만약 이 전 부지사가 ‘이재명 지사에게 보고했다’고 언젠가 법정에서 다시 진술을 번복하면 이 대통령도 공범 관계가 인정돼 유죄 판결을 받을 가능성이 커진다. 김광민 변호사는 언론 인터뷰에서 “이 전 부지사가 계속 방치돼 화가 많이 났고, 이 대통령에게 섭섭하다는 말을 많이 한다”고 했다. 속사정이 이렇기에 정치권과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 전 부지사의 가석방 요구를 ‘수틀리면 다 불어버릴 수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중국 제자백가 중 한 명인 한비자가 쓴 <한비자>라는 책에는 ‘역린’(逆鱗)’ 이야기가 나온다. “용이라는 동물은 유순해 길들이면 사람이 올라탈 수 있다. 그러나 턱밑에 길이 한 자쯤 되는 거꾸로 난 비늘, 바로 역린이 있는데, 만약 사람이 그 비늘을 건드리면 반드시 그 사람을 죽인다. 군주에게도 역린이 있다. 군주에게 조언하려는 자는 군주의 역린을 건드리지 않을 수 있어야만 성공을 기대할 수 있다.”
군주에게도 역린이 있고 이를 잘못 건드리면 죽임을 당할 수 있다는 뜻이다. 역린은 당사자에게 금기로 여겨지는 그 무엇을 뜻한다. 원칙으로 따진다면 역린은 군주시대에나 통하는 말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역린이라는 게 있을 수 없다. 헌법에 언론의 자유가 보장돼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이라도 자유롭게 비판할 수 있는 게 민주주의 사회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다르다. 대통령에게 역린이 존재할 수 있다. 대통령 개인의 성격이나 대통령이 처한 상황에 따라 역린으로 여겨질 수 있는 말이 다를 뿐이다. 같은 말이라도 처한 상황에 따라 또는 누가 하느냐에 따라 역린을 건드리는 것이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유시민씨는 공직자가 아니고 일종의 평론가이다. 더 자유롭게 대통령을 비판할 수 있다. 하지만 그의 말은 듣기에 따라 대통령의 역린을 건드리는 것이 될 수도 있다. ‘국민을 속였다’ ‘책임은 지지 않고 욕 먹을 일은 남을 시킨다’는 말이 그 예다. 추미애 지사나 김용민·박은정 의원의 말도 마찬가지다. 대통령 인사권을 정면으로 부정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화영 전 부지사 측의 가석방 요구도 대통령에 대한 도전으로 여겨질 있다는 점에서 역린을 건드리는 게 될 수 있다.
대통령의 역린을 건드려도 무사할 만큼 세상이 좋아지긴 했다. 과거 박정희 유신 시절이나 전두환 정권 때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지금도 임명직 공직자나 공공기관 임원은 대통령 심기를 그르치면 무사하지 못할 수 있다. 이학재 전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과 박지향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이 그런 경우다. 이 전 사장은 대통령 업무 보고에서 이 대통령 질타를 받은 뒤 이를 논박했다가 결국 임기 중에 물러났다.
박 이사장은 대통령의 ‘환단고기’ 질문에 부정적으로 대답한 뒤 수차례 교육부의 조사를 받은 끝에 업무상 횡령 혐의 등으로 직무 정지 처분을 당했다. 교육부는 박 이사장 해임을 추진하고 있고 박 이사장은 이에 맞서 법정 소송을 벌이고 있다. 이 전 사장과 박 이사장은 대통령의 역린을 건드린 경우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유시민씨나 추 지사·김용민 의원 등의 대통령에 대한 거침없는 비판과 공격, 이화영 전 부지사의 공개적인 압박을 민주주의가 그만큼 성숙해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만은 없다. 대통령의 권위라는 측면에서 봐야 할 수도 있다. 권위와 권력은 다르다. 대통령은 막강한 권력을 갖고 있다. 그중에서도 핵심은 인사권이다. 대통령은 인사권을 통해 공직 사회를 직접 통제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인사권으로 수사기관도 장악할 수 있다. 사실상 수사권을 통제할 수 있는 것이다. 수사권은 공직 사회를 넘어 사회 전체를 통제할 수 있는 막강한 힘이다. 과거 정권들은 검찰을 통해 정권에 밉보인 사람을 옥죄곤 했다.
그러나 인사권은 유시민씨 같은 민간인이나 추미애 지사와 김용민 의원 같은 선출직 공직자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수사권은 범죄 혐의자라면 누구에게라도 적용의 예외가 될 수 없다. 그러나 수사권은 신중하게 행사해야지 함부로 휘둘렀다간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 이처럼 인사권이든 수사권이든 제한이 있다. 이게 권력의 한계이다.
대통령 권위 실추의 신호인가
그래서 중요한 게 권위이다. 권력이 법적으로 주어진 힘인 데 비해 권위는 지적 능력, 사회적 기술, 덕성 같은 여려 요인들이 어우러져 나오는 보이지 않는 힘이다. 지적 능력은 국정 중요 현안에 관한 올바른 이해력과 판단력을 말한다. 사회적 기술이란 경청하고 공감하고 배려하는 능력이다. 덕성은 도덕성·겸손함·정직성 같은 올바른 품성이다. 사람들은 권력에는 강제적으로 복종한다. 권력자의 뜻이 자기 뜻과 다르더라도 권력자가 무섭거나 권력자에게 이익을 기대하고 복종한다. 하지만 권위에는 자발적으로 복종한다. 무섭거나 이익을 노려서가 아니라 스스로 마음이 움직여서 따른다.
물론 정치에서 권력은 중요하다. <군주론>을 쓴 마키아벨리도 이를 강조했다. 그는 군주가 사람들에게 사랑의 대상이 되는 게 좋은가,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게 좋은가 묻고 이렇게 답한다. "가능하면 둘 다 되는 게 좋다. 다만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게 좋다. 사랑은 사람들이 스스로의 결정으로 한다. 그래서 사람들의 마음이 식으면 언제든 바뀔 수 있다. 그러나 두려움은 권력자의 결정으로 갖게 된다. 권력자가 힘을 유지하고 있는 한 사람들은 그를 두려워한다."
마키아벨리가 말한 사랑이란 권위와 성격이 비슷하고, 두려움은 권력과 비슷하다. 마키아벨리는 권위보다 권력을 더 중시하고 있다. 그러나 마키아벨리가 말한 ‘군주’는 수백 년 전 전제왕정 시대의 인물이다. 민주주의 시대인 요즘 세상의 대통령과 비교할 수 없다. 민주국가의 대통령은 권력에만 의존해서는 나라를 이끌 수 없다. 권위를 인정받지 않으면 안 된다.
이 대통령은 현직 대통령으로서 막강한 권력을 갖고 있다. 임기가 많이 남아 있어서 레임덕을 걱정할 상황도 아니다. 그러나 권력과 함께 권위도 인정받아야 성공한 대통령이 될 수 있다. 범여권 인사들의 거침없는 비판과 공격은 민주주의가 그만큼 만개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대통령의 권위가 부정당하는 신호는 아닌지 생각하게 한다. 아직은 작은 불씨라도 이대로 가면 언젠가 큰 불이 될 수도 있다.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정치학과·대학원 정치학 석사 ▶조선일보 논설위원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본부장 ▶전 원주 한라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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