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는 순간의 기분, 그날의 온도와 습도, 나의 경험은 종종 평가의 기준이 되기도 한다. '최씨네 리뷰'는 필자의 시선과 경험을 녹여 조금 더 편안하고 일상적으로 영화를 소개하는 코너다. <편집자 주>
영화 '디거' 스틸컷 [사진=워너브러더스 코리아㈜]
본 기사는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스크린 너머의 재난을 완벽한 타인의 비극쯤으로 소비한다. 푹신한 객석에 기대어 팝콘을 씹으며 부조리한 세상을 비웃는 일은 얼마나 안전하고 유쾌한가. 알레한드로 G. 이냐리투 감독의 신작 '디거'는 바로 그 안전하다는 착각을 기어이 박살 내는 영화다. 전 지구적 재난을 대재앙급 블랙 코미디로 포장해 관객을 낄낄거리게 만들더니, 종국에는 스크린과 현실의 경계를 허물며 불편한 진실을 들이민다.
석유 재벌 디거 록웰(톰 크루즈 분)은 막대한 부와 권력을 손에 쥔 괴짜 사업가다. 집안 대대로 시추 사업을 통해 부를 축적해온 그는 자신에게 듣기 좋은 말만 골라 들으며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그린란드 빙하에 설치한 시추 시설에서 작은 균열이 발생한다.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문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급기야 전 세계를 위협하는 대재앙으로 번진다. 그러나 디거는 자신의 사업이 초래한 결과 앞에서도 좀처럼 반성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신뿐이라며 구원자를 자처한다.
디거는 모순 자체인 캐릭터다. 늙은 반려묘 매기에게는 헌신하지만 집안 곳곳에는 북극곰 등 야생동물의 박제가 걸려 있고, 자신의 사업으로 그들이 죽어가는 현실에는 무관심하다. 자신의 탐욕을 지적받을 때면 타인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며 행동을 정당화한다. 환경보다 이익이 먼저이고 책임보다 변명이 앞선다. 이냐리투 감독은 이런 디거를 통해 막대한 권력을 가졌으면서도 그에 따르는 책임에는 무심한 인간의 민낯을 신랄하게 풍자한다.
흥미로운 건 영화가 이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이다. 초반부 '디거'는 괴짜 재벌이 초래한 전 지구적 재난을 따라가는 블랙코미디처럼 보인다. 인물들의 과장된 행동과 기묘한 대화, 현실과 어딘가 어긋난 공간들이 쉴 새 없이 웃음을 만들어낸다. 영화 중반에 이르면 이냐리투 감독은 벼락처럼 판을 뒤집는다. 관객이 영화라고 믿고 따라왔던 디거 록웰의 이야기가 실은 무대의 이야기라는 사실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영화 '디거' 스틸컷 [사진=워너브러더스 코리아㈜]
그 순간 카메라가 뒤로 물러나며 무대 조명과 소품, 그리고 지금껏 보이지 않던 객석이 한꺼번에 모습을 드러낸다. 영화 속 현실은 무대 위 이야기로 바뀌고, 앞서 지나쳤던 기묘한 장면들도 뒤늦게 제 의미를 찾는다. 과장된 인물들의 연기와 부자연스러운 소품 등이 하나씩 맞아떨어지는 순간이 흥미롭다. 관객을 놀라게 하기 위한 반전이 아니라 영화의 전반부를 완전히 다른 시각에서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영리한 구성이다.
이후 영화는 한층 노골적으로 연극의 형식을 끌어들인다. 무대와 객석을 오가며 인물들의 연기는 더욱 과장되고 소품과 공간 역시 연극적 특성을 적극적으로 드러낸다. 이미 익숙해진 이야기의 형식을 깨뜨린 뒤 또 다른 이야기를 시작하는 이냐리투 감독의 대담함이 돋보인다. 그 과정에서 영화는 디거 록웰이라는 인물의 허세와 탐욕을 비웃는 데 머무르지 않고 그를 연기하는 배우의 삶까지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촬영과 미술 역시 이냐리투 감독의 대담한 구상을 뒷받침한다. '버드맨'과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에서 호흡을 맞췄던 엠마누엘 루베즈키 촬영감독은 이번 영화 전체를 35㎜ 필름 포맷인 비스타비전으로 촬영했다. 이를 위해 새롭게 설계한 광각 빈티지 라이카 렌즈까지 동원했다. 인물의 외형부터 의상과 소품, 공간을 채우는 색감까지 세심하게 계산된 미장센은 영화가 연극이라는 또 다른 형식으로 전환되는 순간 더욱 흥미로운 볼거리가 된다.
이 대담한 실험을 이끄는 건 단연 톰 크루즈다. 수십 년간 불가능한 임무에 뛰어들며 숱하게 세상을 구해온 배우가 이번에는 세상을 위험에 빠뜨린 괴짜 재벌로 돌아왔다. 백발에 불룩한 배를 두른 파격적인 외형부터 익숙한 톰 크루즈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나 진짜 놀라운 건 외형적인 변화보다 연기다. 그는 디거의 터무니없는 자신감과 안하무인에 가까운 태도를 능청스럽게 표현하면서도 그 밑에 깔린 불안과 모순을 놓치지 않는다. 자신의 잘못조차 인정하지 않는 인물의 뻔뻔함은 웃음을 자아내다가도 어느 순간 섬뜩하게 다가온다. 액션 한 번 없이도 128분의 러닝타임을 꽉 채우는 연기는 그의 연기 인생을 통틀어 가장 강렬하고 성공적인 파격이다.
그러나 '디거'의 진짜 백미는 연극이 막을 내린 뒤에 찾아온다. 배우들이 무대를 떠나는 순간, 영화는 또 한 번 관객의 예상에서 벗어난다. 지금까지 연극의 재난을 안전하게 지켜보던 객석은 극장 밖의 현실과 맞닿기 시작한다. 기후 위기는 어느 괴짜 재벌의 황당한 이야기 속에서만 벌어지는 사건도 무대 위에서 막을 내리면 끝나는 연극도 아니다.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에서 현재진행형으로 벌어지는 일이다. 영화 속 객석에 앉아 있던 관객들이 어느새 실제 극장의 관객들과 겹쳐지는 순간, 스크린과 무대, 그리고 현실을 나누던 경계도 무너진다.
영화 '디거' 스틸컷 [사진=워너브러더스 코리아㈜]
그제야 영화의 처음으로 돌아가게 된다. 디거의 허세를 비웃고 그의 변명에 혀를 차던 관객들 역시, 정작 자신의 삶에서는 얼마나 다른 선택을 하고 있을까. 반려묘만은 끔찍하게 아끼던 디거의 모순과 기후 위기를 외면하는 우리의 일상은 과연 얼마나 다를까. 이냐리투 감독은 그 답을 장황하게 설명하는 대신 영화와 연극의 형식을 무너뜨리며 관객을 이야기의 당사자로 만든다. 앞서 터뜨렸던 웃음이 뒤늦게 씁쓸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버드맨'에서 무대와 현실 사이의 균열을 파고들고, '레버넌트'에서 인간과 자연의 가혹한 대립을 그렸던 이냐리투 감독은 '디거'를 통해 자신의 관심사를 더욱 과감하게 확장한다. 인간의 욕망과 자기기만을 향한 질문은 여전하지만 이를 풀어내는 형식은 이전보다 훨씬 짓궂고 도발적이다. '디거'의 연극은 막을 내렸지만 극장 밖 우리의 재난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10월 3일 극장 개봉. 러닝타임은 128분, 관람등급은 15세 이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