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가 끝났다. 예전 같으면 추석 밥상 민심을 다룬 기사가 쏟아졌을 법한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과거에 비해 추석이나 설이 여론에 미치는 영향이 줄었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추석 연휴 전후의 여론조사를 보더라도 명절을 계기로 민심이 크게 달라지는 경우는 많지 않다. 2017년 이후 한국갤럽의 자체 정례 여론조사를 살펴보면, 일부 예외를 제외하고는 추석 전후의 대통령 지지율 격차가 크지 않았다. 상대적으로 큰 변화가 나타난 것은 2017년과 2022년으로, 추석 전후 지지율이 각각 8%p.와 6%p. 변동했지만, 이 두 해를 제외한 나머지 해에는 추석 전후의 지지율 변동률이 3%p. 이하에 그쳤다. 2017년에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의 여파와 문재인 정부 출범 초기의 허니문 효과가 작용하던 시기였고, 2022년에는 추석 직전 이재명 당시 민주당 대표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되는 정치적 사안이 발생했었다. 이렇듯 과거 정치판의 대목이라고 불리던 명절의 위상이 달라진 이유, 그리고 필자가 2017년 이후의 여론조사 결과만 평균을 낸 이유는 모두 SNS와 유튜브의 ‘보편화’와 관련이 깊다. 우리나라 정치판에서 SNS와 유튜브가 본격적으로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한 시점은 2017년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2017년에 집권한 문재인 전 대통령은 SNS를 능숙하게 활용한 최초의 대통령인데, 이 점은 그의 팬덤이 존재한다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팬덤의 형성은 정치적 양극화의 심화를 의미한다. 또한,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역시 정치·사회적 양극화를 심화시킨 요인인데, 이런 상황은 보수 유권자들을 유튜브로 내모는 계기가 되었다. 기존 레거시 미디어는 ‘믿을 수 없다’고 배척하면서 정치 유튜브 채널을 ‘신봉’하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정치 유튜버의 영향력도 이러한 흐름 속에서 본격적으로 커졌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변화는 명절 밥상의 의미를 축소시켰다. 과거에는 명절 밥상이 정치 정보를 교환하는 장(場)이었지만, 이때부터 SNS와 유튜브가 그 역할을 대체했기 때문이다. 즉, 많은 유권자가 온라인에서 일상적으로 정치 정보를 얻으면서 명절에 새로운 정보를 접할 필요성이 줄었고, 정치적 양극화에 따른 갈등을 피하려 가족 간 정치 대화를 삼가는 경향도 나타난 것이다. 이런 상황을 종합하면, 명절 민심이 과거처럼 정치권의 흐름을 좌우하는 영향력을 발휘하기는 어려워졌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앞서 언급한 2022년의 경우처럼 중요한 사건이 발생하면 명절 전후로 여론이 달라질 수는 있다.
이번 추석 민심에 영향을 미쳤을 주요 현안으로는 ‘북한 이슈’를 꼽을 수 있다. 이재명 대통령의 유엔 총회 연설과 군사분계선(MDL) 인근 지뢰 폭발로 우리 장병들이 중상을 입은 사건 등이 여론의 향방을 가를 중요한 변수였을 것이라는 말이다. 지난 9월 22일(우리 시간으로는 9월 23일 오전 4시 43분경) 이재명 대통령은 유엔 총회 기조연설에서 “우선 북측의 핵·미사일 능력 고도화를 중단시키고, 중기적으로 축소를 거쳐 장기적으로 핵 없는 한반도를 향해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이 대통령은 뉴욕타임스 등 현지 매체와의 인터뷰에서도 “현재 상황에서 비핵화를 목표로 삼는 것은 아무것도 성취하지 못하게 될 것”이라며 대북 제재 완화를 통한 북핵 동결을 제안한 바 있다. 이를 종합해 한 줄로 정리하면, ‘대북 제재 완화를 통한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 동결, 그 이후 단계적 비핵화’로 요약될 수 있다. 이는 대북 유화 기조를 천명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데, 공교롭게도 이런 연설 직전에 북한 소행으로 추정되는 지뢰 폭발로 대한민국 군인이 중상을 입은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아주경제 보도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우리 시간으로 9월 21일 오후, 피해 장병들에게 “치료·회복 지원 다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냈다고 한다. 피해자 지원에 관한 대응은 매우 신속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이후 해당 사건에 대한 대통령의 공개 발언이 나온 날은 9월 29일이었다. 대통령이 해당 사건이 북한에 의한 것이라고 추정한다는 식의 발언은 할 수 없었겠지만, 해당 사건 조사에 시급성을 강조할 수는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사건 관련 발언을 29일에나 했다는 것은, 국민의 불만을 살 수 있는 사안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 지뢰로 우리 장병들이 중상을 입은 사건은 2015년에도 있었다. 박근혜 정부 당시 북한의 목함지뢰로 우리 병사 두 명이 중상을 입자, 바로 다음 날 청와대에 북한 소행으로 추정된다는 보고가 올라갔고, 사건 발생 6일 후에는 최종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또한, 최종 조사 결과를 발표한 당일 오후 5시부터는, 대응 조치로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했다. 반면 이번에는 사건 발생 6일 뒤에야 현장 조사에 나섰다. 두 사건의 현장 여건이 같지는 않겠지만, 이런 상황은 국민의 불만을 키울 수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 대통령은 9월 29일 지뢰 사고의 진상을 철저히 조사하고 필요한 조치를 취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이번 사안과 관련해 근거 없는 음모론을 부추기면서 국가 안보를 위태롭게 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언급했다. 음모론을 경계해야 한다는 대통령의 입장은 이해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음모론의 천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과거 북한에 의한 천안함 피격 당시에도 근거 없는 음모론이 횡행했고, 후쿠시마 오염 처리수 문제에 관해서도 비과학적 음모론이 만연했었다. 또한 사드 배치 당시에는 이른바 ‘전자파 튀김 참외’를 운운하며 민주당 의원들이 성주까지 가서, 가발을 쓰고 노래하며 춤까지 췄다. 이러한 전례를 생각하면 청와대가 그런 우려를 가질 만도 하다. 하지만 아쉬운 점은, 청와대가 음모론을 우려했다면 사건의 진상을 신속히 규명하고 이에 상응하는 조치를 발 빠르게 취했어야 했다는 것이다. 결코 빠르다고 할 수 없는 정부의 대응이 국민적 불만을 키우고 있다는 점을 청와대는 유념해야 한다.
필자 주요 이력
▷프라이부르크대학교 정치학 박사 ▷한국국제정치학회 부회장 ▷전 통일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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