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8월 15일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광복절 경축식 도중 총성이 울렸고 육영수 여사가 숨졌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 그날의 사건이 다시 논쟁의 한복판에 섰다. 지난 23일 개봉한 허진호 감독의 영화 '암살자(들)' 때문이다.
극 중 인물들이 사건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당시 권력기관의 개입 가능성 등을 의심하는 대목을 놓고 역사 왜곡 논란이 불거졌다. 국민의힘에서는 법적 대응과 감독의 국정감사 출석을 거론했고,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은 상영 중단을 요구했다. 제작진은 특정 인물을 사건의 배후로 규정하거나 영화 속 가설을 역사적 사실로 제시한 것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먼저 영화와 역사적 사실은 구분해서 봐야 한다. 당시 수사당국은 문세광의 범행과 그 배후에 대한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후 사건을 둘러싸고 여러 의문과 해석이 제기돼 왔지만, 영화에서 거론되는 의혹까지 확인된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제작진도 이를 확정된 사실이 아닌, 등장인물들이 사건을 쫓으며 던지는 가설이라고 설명한다. 관객이 놓치지 말아야 할 경계다.
그렇다고 극영화를 역사 교과서와 같은 잣대로 재단할 수는 없다. 실제 사건에 허구와 상상력을 보태는 것은 영화와 드라마가 오래 써 온 방식이다. 현대사를 소재로 한 작품도 기록에 없는 대화와 인물의 심리, 사건의 이면을 상상한다. 그것까지 막는다면 역사를 소재로 한 창작은 설 자리를 잃는다.
다만 역사적 사실을 소재로 삼은 상상에는 그만큼 무거운 책임이 따른다. 기록에 없는 대화나 인물의 속내를 그리는 것과 사건의 성격이나 인과관계에 새로운 가설을 들이는 것은 관객에게 미치는 무게가 다르다. 실존 인물과 실제 희생자가 있는 현대사의 비극이라면 신중해야 할 이유는 더 크다. 관객은 극장에서 본 장면을 실제 역사와 혼동할 수 있다. 확인되지 않은 의혹이 강렬한 영상으로 전달될 때 허구와 사실의 경계가 흐려질 수 있다는 우려를 흘려들을 일은 아니다.
제작진도 이번 논란을 '영화는 창작물'이라는 말로만 넘겨서는 안 된다. 어떤 기록과 문제의식에서 출발했고 어디까지 영화적 상상력을 보탰는지 충분히 설명해야 한다. 역사적 사실을 다룰 자유가 있는 만큼 관객이 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가늠할 수 있도록 돕는 것도 창작자의 몫이다.
논란이 있다고 해서 정치권이 처벌이나 상영 중단부터 앞세우는 것도 성급하다. 극영화라고 법적 책임에서 예외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 판단은 구체적인 표현과 작품 전체의 맥락 등을 따져 사법적으로 가려질 문제다. 정치권이 먼저 역사 해석의 옳고 그름을 정하고 창작의 허용 범위까지 재단하려 든다면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또 다른 논란을 부를 수 있다.
정치권에는 일관된 원칙도 필요하다. 자신과 가까운 역사적 인물을 다룬 작품에는 표현의 자유를 좁게 적용하고, 반대편을 다룬 작품에는 넓게 적용한다면 설득력을 얻기 어렵다. 어느 시대, 어느 인물을 다루든 창작의 자유와 역사적 책임에는 같은 기준이 적용돼야 한다. 작품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면 구체적인 사실과 기록을 들어 반박하면 된다. 제작진도 그런 비판에 성실히 답해야 한다.
영화 한 편이 역사의 결론을 대신할 수는 없다. 정치권이 영화 한 편의 해석을 역사의 정답으로 판정해서도 안 된다. 역사적 사실을 둘러싼 논쟁에는 더 정확한 사실로, 창작물의 해석에는 더 치열한 비평으로 답하는 것이 옳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르포] 중력 6배에 짓눌려 기절 직전…전투기 조종사 비행환경 적응훈련(영상)](https://image.ajunews.com/content/image/2024/02/29/20240229181518601151_258_161.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