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을 던지라” (요한복음 8장 7절)
참고로 필자는 종교를 믿지 않는 무교다. 그러나 이 영화를 접한 뒤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성경의 한 구절이었다. 이 구절은 예수가 간음한 여인을 향해 비난하고 돌을 던지는 청중을 향해 외치는 말로, 누구도 손톱만큼의 죄를 짓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음을 뜻한다. 그 죄는 단순히 누군가를 해하거나 피해를 주는 방식일 수도 있지만 누군가를 향한 이기심이나 배타적인 편협함 등 무형의 것 모두 포함된 의미다.
‘죄’의 의미는 이렇듯 물리적인 공격이 아니어도 포괄적인 의미로 사용된다. 내가 어떠한 행동을 하지 않았어도 누군가의 인생과 죽음에 직간접적으로 연관이 돼 있다면 나는 이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가, 영화 ‘죄 많은 소녀’는 이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진다.
영화는 한 여자고등학교의 반 풍경을 비춘다. 대부분의 교실을 비추는 영화에서처럼 여고생들의 까르르 웃는 소리와 함께 밝은 분위기로 시작될 법하지만 이 영화는 영희(전여빈)가 교탁 앞에서 아이들을 향해 수화를 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말없이 시작된 언어 앞에 아이들은 침묵한다.
언뜻 보면 말을 하지 못하는 영희의 인사처럼 보이지만 수화를 해석해보면 이들을 향한 지독한 분노와 복수심이 서려 있다. 왜 그는 말이 아닌 수화로 이들에게 분노의 말을 토했을까.
이야기는 친구 경민(전소니)의 죽음에서부터 시작된다. 경민이 사라진 뒤 사람들의 이목을 끈 건 그와 마지막까지 함께 있었던 영희다. 경찰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은 경민이 ‘왜 죽었는지’보다 ‘누가 잘못했는가’를 묻기 시작한다. 경찰 또한 경민과 마지막까지 같이 있었다는 이유로 영희에 죽음의 이유를 추궁하고 이들과 함께 어울리던 한솔(고원희)은 “영희가 자신을 좋아한다면 증명해보라고 했다”며 영희가 경민의 죽음을 종용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한다.
한솔의 진술로 인해 영희를 향한 ‘친구를 죽음으로 몰고 간 아이’라는 의심은 커진다. 의심은 어느새 확신이 되고 영희는 “나 때문이 아니다”라고 주장하지만 이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경민의 엄마 정미(서영화) 역시 라고 영희를 향해 딸을 죽인 범인이라고 확신하듯 자신의 분노를 드러낸다.
그러나 사람들이 놓친 한 가지가 있다. 바로 경민, 영희, 한솔 세 사람의 관계다. 이들은 우정과 애정 사이 그 어느 지점에 있다. 그 중심에는 영희가 있었고, 애정으로 얽힌 질투 등 더 깊은 감정이 존재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사건이 있기 전 어떤 이유로 죽음에 이르렀는지 궁금해 하지 않는다. 그저 영희가 경민을 “죽인 것”이라는 단정 뿐이다.
경민의 어머니 정미 역시 마찬가지다. 딸이 살아 있을 때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는지 충분히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영희를 향한 분노로 대신한다. 딸의 죽음 앞에서 그는 감히 자신의 지난날을 돌아볼 여유조차 없다. 딸 죽음의 배경 중 하나가 나의 무관심이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보다 다른 이유를 찾는 것이 괴로운 마음을 더는 일이었을 것이다.
학교 친구들의 모습 또한 씁쓸하다. 경민이 살아 있을 때는 그녀의 외로움에 누구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다가 경민이 죽은 뒤 “네가 죽였다”며 화풀이 대상을 찾듯 영희를 비난한다. 그의 집까지 찾아가 신발을 찢어놓고 영희를 향한 폭력을 휘두르면서도 이들은 정당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기 바쁘다. 결국 살아 있는 경민을 외면했던 아이들이 죽은 경민을 대신해 영희를 심판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으로 이어지고 담임 선생님은 이들의 폭력을 묵인한다.
담임 선생님을 비롯한 학교의 어른들 역시 자신들의 책임 요소를 지우기 바쁘다. “경민이는 원래 어두운 아이였다”“평소 우울한 음악을 듣더라”“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않았다”는 말로 경민의 죽음에 자신의 책임을 미룬다. 담임 선생님 역시 영희가 가해자로 몰릴 때 중립적인 입장을 나타낸다는 이유로 영희를 향한 아이들의 폭력을 방관한다.
여기서 아이들과 담임 선생님의 태도가 변하기 시작한다. 영희가 극단적 선택으로 다시 피해자의 자리에 있게 되자 이들은 시끌벅적하게 영희의 병문안을 준비하고 아이들의 폭력을 방관하던 선생님은 “영희에게 잘못한 사람이 있다면 사과하자”고 말하며 선생님으로서의 위치를 지켰다고 믿는 듯 보인다. 그러면서도 누구도 죽음의 문턱까지 갖다 온 영희에게 대한 사과는 없었다.
영희의 사건 이후 또 하나의 진실이 드러난다. 한솔은 입원한 영희에 자신과 경민이 싸운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결국 그 과정에서 “정말 죽어보라”고 말했음을 고백한다. 경민의 죽음 앞에 누구도 가벼운 ‘죄’는 없었다. 그저 멀고 가까운 죄만 있었을 뿐이다.
영화 말미 영희는 경민이 죽기 전 걸었던 굴다리 밑을 걸어간다. 반 아이들에게 말한 자신의 마지막을 완성하기 위해서.
영화 속에서 영희는 경민의 죽음에 대한 유일한 책임자가 아니다. 경민의 주변 사람 모두가 크고 작은 ‘죄’를 짓고 있다. 영희 조차 “아무 잘못도 없다”고 말할 수 없다. 경민의 진심을 장난처럼 받아들이고 그에게 “그럼 죽어보라”고 아무렇지 않게 말한 죄를 갖고 있기 때문. 하지만 경민의 죽음 전체를 책임질 정도는 아니다. 그럼에도 영희는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는 모든 사람들의 죄를 담는 그릇으로 작용한다. 제목이 ‘죄 많은 소녀’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영화는 한 사람의 죽음 앞에서 우리가 얼마나 쉽게 ‘가해자’를 만들어내는지를 보여준다. 누군가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한 사람에게 집중시키는 순간, 나머지 사람들은 자신이 무엇을 놓쳤는지 돌아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누군가의 죽음 앞에서 자신의 죄를 얼마나 인정할 수 있을까. 자신의 죄를 외면하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돌을 던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한 번쯤 생각해본다. 관객인 우리 또한 영희에 함부로 돌을 던질 수 있는 사람인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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