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철 칼럼] 파국으로 치닫는 세계…'중견 국가'들의 새로운 생존 연대 모색 불가피

김상철 글로벌비지니스연구센터 원장
[김상철 글로벌비지니스연구센터 원장]


 
냉전 종식 이후 1990년대에 세계는 모스트 모던 자본주의와 미국 일극 체제에서 나름대로 번영을 지속한다. 세계화로 선진국과 후발도상국 간의 초연결적 분업이 효율적으로 이루어지면서 한동안 밀월 관계를 지탱해 왔다. 그러나 채 10년도 지나지 않아 9.11 테러가 발발하였고 세계를 긴장 속으로 몰아넣었다. 그 이후에도 불안정하게 유지되던 세계화와 이에 따른 국제질서가 2010년대 이후 중국의 급부상으로 균열과 파열음이 생겨나면서 질서의 붕괴와 혼돈의 조짐이 곳곳에서 나타났다. 2020년대 들어서는 벽두부터 3년여에 걸쳐 코로나19 팬데믹은 초연결 세계에 경고음을 던지면서 고립주의가 전면에 부상했다. 중국의 굴기는 상대적으로 미국의 힘의 약화로 나타나면서 무질서와 혼란이 극단을 치닫고 있다.
 
미국과의 경쟁에서 패퇴하면서 설 자리를 잃은 러시아가 중국에도 힘의 기울기가 밀려나면서 푸틴이라는 위험한 인사가 등장, 장기 집권을 한다.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시작된 전쟁이 4년 이상 계속되고 있지만 극심한 소모전과 교착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시간이 갈수록 러시아가 종이호랑이에 불과하다는 객관적 사실만 드러나는 중이다. 그렇다고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대응도 과거 같지 않고 전쟁은 여전히 미궁이다. 러시아가 악수를 두는 동안 유럽은 더 분열되고 존재감을 상실하고 있다. 미국과의 결속력은 더 소원해지고, 에너지 위기 등으로 경제는 더 피폐해져 가는 것이 실상이다. 미국 없는 유럽 자체의 안보적 자율성이 시험대에 오르는 대전환의 시기에 직면하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무질서와 혼돈이 가중되는 세계에서 보이는 가장 두드러진 현상은 전통적 강대국의 쇠퇴다. 위에서 언급한 미국과 러시아를 비롯하여 일본이나 독일의 경제력이 과거와 비교해 약화하고 있으며, 특히 제조업 경쟁력의 후퇴가 현저하다. 이외에도 영국, 프랑스, 캐나다, 이태리 등 서방 선진국의 위세가 과거와는 다르다. 이유는 의외로 명료하다. 중국이 이들의 자리를 꿰찬 것에 그치지 않고, 이들이 가진 힘의 상당 부분을 뺏어오고 있다. 세상에 온통 미국과 중국만 보이고 다른 국가들의 존재감은 갈수록 미미하다. 미국 주도의 서방 선진국 모임인 G7은 유명무실해지고, 오히려 중국 주도의 BRICS나 상하이협력기구(SCO)가 대항마로 떠오른다. 또 다른 양쪽 국가들이 대부분 참여하는 G20(주요 20개국)까지 생겨났다.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한 국가들의 이합집산과 합종연횡이 가시적이다. 미국이나 중국의 편을 수시로 들락날락하면서 반사이익을 노리는 경향을 보인다. 한편으론 질서의 붕괴에 따라 지구촌 곳곳에서 성난 군중이 진영으로 나뉘고, 이 틈을 타 진영의 이기에 편승하는 정치적 집단이 필연적으로 등장한다. 보수와 진보, 좌와 우를 넘나드는 잦은 정치 지형 변화가 불가피해지며 자연스럽게 진영 간의 대립에서 우월적 지위를 확보한 정치의 횡포가 독재의 형태로 나타난다. 국가 간의 긴장 관계는 더 심화하고 일촉즉발의 위기는 증가한다. 미국과 중국의 2강(强) 구도는 더욱 굳어지고, 나머지 국가들과의 격차가 더 벌어지는 문제다. 그리고 뒤처지기 시작한 국가들의 위상은 회복이 어렵거나 더뎌지는 것이 보편화하고 있다.

중견국 연대’ 다자 질서 태동
 

특정 지역이나 개별 국가의 지정학적 질서가 무너지면 점진적으로 글로벌 질서의 파괴에 영향을 미친다. 트럼프, 시진핑, 푸틴 등과 같은 스토롱맨이 필연적으로 등장하면서 안보와 경제를 사이에 두고 줄다리기를 연출한다. 세계는 점점 분열로 치닫고 파국적 미래에 대한 예언이 나오기 시작한다. 정치적 소용돌이가 그치지 않으면서 군중의 삶은 불안하고 팍팍하게 만들고 있다. 절대강자인 미국과 중국의 극단적 대결 구도가 글로벌 상품 무역이나 자원(광물 포함)의 기존의 공급망 구조와 시장 질서를 일시에 허물어뜨린다. 이로 인해 세계화로 만들어진 국제 분업 구조를 크게 왜곡시키고 ‘세계의 공장’이 선순환하는 구조가 마비된다. 중국에서 인도나 동남아로 넘어가는 공장 이전 과정에도 일시적인 제동이 걸린 상태다.
 
정부 보조금을 등을 업은 중국 제조 기업의 무차별적 과잉생산으로 글로벌 자유무역 체제의 종말을 예고하고 있다. 중국이 전 산업에서 절대적 우위를 차지하면서 세계 시장을 초토화한다. 중국 상품으로 지구촌이 몸살을 앓는 중이다. 각국 산업의 근간이 흔들리고 지방 경제가 흔들리면서 경제적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진다. 독일이나 일본, 한국 등 제조 강국의 지형에도 변화가 불가피해지는 상황이다. 결국 자국 시장 방어를 위한 보호무역이 글로벌하게 확산하면서 정상적인 무역 거래가 크게 위축받고 있다. 미국에 이어 EU도 중국산 제재에 적극적으로 동참할 태세다. 멀지 않아 ‘중국 제조업 버블’이 올 수 있다는 경고음에다 대규모 구조조정과 내수 시장 침체가 동반할 것이라는 전망이 이미 나오고 있다.
 
결국 과하면 독이 되는 과유불급인가. 미국과 중국의 첨예한 갈등으로 인한 질서의 파국을 모면하기 위해 새로운 연대가 모색되고 있다. 강대국 대열에서 이탈한 세력들이 결합 중이다. 미국과 중국을 제외한 새로운 다자 질서가 태동한다. 전통적 미국 동맹국들이 미국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캐나다와 EU 등이 이 흐름을 주도한다. 소위 말하는 ‘중견국 연대’다. 자연스럽게 일본 주도의 ‘CPTPP(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가 시선을 끈다. 중견 국가들의 연대라는 명분을 얻으면서 EU-CPTPP의 연대도 탄력을 받고 있다. 당연히 한국도 이 대열에 동참해야 한다. 미국·중국과의 불협화음을 외부에 노출하지 않고 물밑에서 진행해야 한다. 중국과는 싸워서 이기기보다 중국의 과잉생산 때문에 생기는 글로벌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생겨나는 이익을 챙기는 전략적 포지셔닝을 준비할 시기다.

김상철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경제대학원 국제경제학 석사 △Business School Netherlands 경영학 박사 △KOTRA(1983~2014년) 베이징·도쿄·LA 무역관장 △동서울대 중국비즈니스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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