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소영의 우.다.세] 한 사람의 죽음 뒤에야 보이는 것들 –영화 '다음 소희'

  • 또 다른 '소희'는 누구든 될 수 있다

▲ ‘다양성 영화’는 단순히 장르를 뜻하기보다 상업 중심의 주류 영화와는 다른 시선·형식·주제를 가진 영화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다양한 국적, 장르, 소수성 등을 포함하는 범주를 갖고 있다. 누군가는 불편하다며 외면했던 이야기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고 마주하는 역할을 기대해본다. '우'리들의 '다'양한 '세'상을 위해. ※ 이 글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사진영화 다음 소희 스틸컷
[사진=영화 '다음 소희' 스틸컷]

 2017년 1월 23일, 전주의 한 저수지에서 여성이 떠올랐다. 이 여성은 전북의 한 특성화고에 다니던 18세 홍모양으로 밝혀졌다. 당시 홍 양는 한 통신사 고객센터의 하청업체에서 현장실습을 하고 있었는데, 그는 실습을 시작한 지 124일 만에 주검으로 발견된 것이었다.

그로부터 5년 뒤 홍 양의 이야기는 영화 ‘다음 소희’에서 소희(김시은)라는 인물로 되살아났다. 정주리 감독은 홍 양이 겪었던 현실을 바탕으로 영화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영화 속에서 소희는 자신이 드디어 ‘직장인’이 됐다는 사실에 들뜬다. 그는 사회의 일원으로 한 발짝 나아가 당당하게 선 자신의 모습을 상상했을테지만 그를 기다리고 있던 건 그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세계였다.

영화는 한 학생이 왜 죽음에 이르게 됐는지 자세히 보여준다. 그리고 그저 19세에 불과했던 그녀를 둘러싼 학교와 회사, 교육 시스템을 차례로 조명한다. 그리고 단 하나의 물음을 던진다. 

소희를 죽음을 몰아간 것은 과연 누구인가.

소희는 춤을 좋아하고 친구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는 평범한 열여덟 살이다. 특성화고 반려동물관리학과에 다니던 그는 졸업을 앞두고 한 통신사 콜센터에 현장실습을 나간다. 출근 첫날만 해도 소희는 “한번 열심히 해보겠다”며 패기 있는 모습을 보인다. 남자친구에게는 자신이 이제 ‘사무직 여직원’이 됐다고 자랑한다.

소희가 맡은 일은 고객의 해지를 막는 ‘해지방어’ 업무였다. 일의 특성상 고객의 욕설과 폭언을 견뎌야 했고, 동시에 정해진 콜 수와 실적을 맞춰야 했다. 잘하지 못하면 압박을 받았고, 잘하면 다음 목표치가 올라갔다.

학생의 신분이던 소희는 회사에선 노동자로 취급된다. 그러나 정작 노동자로서 자신의 권리를 제대로 주장하기에는 너무 어린 위치에 있었다.

현장실습이라는 이름으로 학교에서 사회로 나온 순간 소희는 학생으로서의 배움이 아닌 또 다른 현실을 마주한다. 냉정하고 모진 칼바람이 부는 성과라는 늪이었다. 

그렇게 밝았던 소희의 얼굴은 조금씩 굳어간다. 
 
사진영화 다음 소희 스틸컷
[사진=영화 '다음 소희' 스틸컷]

전반부에서 소희가 실습 현장으로 나가 일을 하고 점차 지쳐가는 모습을 조명했다면 후반부는 형사 오유진(배두나)이 소희의 죽음을 추적하는 과정을 다룬다. 유진은 학교와 회사, 교육청 등 소희의 죽음과 관련된 사람들을 차례로 찾아간다. 

그런데 그 과정에선 석연치 않은 상황이 반복된다. 누군가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했다고 말하고, 누군가는 소희의 죽음을 개인적인 문제라고 치부한다. 회사는 회사대로, 학교는 학교대로 각자의 사정과 이유를 이야기한다.

하지만 유진에게 그 모든 설명은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 학교와 연계된 사업장으로 실습을 나온 학생의 죽음에 누구 하나 자신의 책임이라고 인정하는 이는 없었다.

영화가 날카롭게 바라보는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소희를 죽음으로 몰아간 것이 특정한 한 사람의 악의였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여러 사람이 자신의 역할만 수행하는 동안 그 틈에서 한 아이가 점점 벼랑 끝으로 밀려난 것에 가깝다.

영화는 곧 ‘누가 소희를 죽였는가’라는 물음보다 ‘왜 소희가 무너지고 있다는 것을 아무도 알아채지 못했는가’에 대한 의문을 던진다.

한 사람이 죽고 나서야 누군가 그 일을 견디고 있고, 그 시스템 안에서 시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럼에도 사회는 쳇바퀴처럼 계속 돌아간다. 학교는 다시 학생을 취업시킬 테고 기업은 또 다른 학생을 받아들인다. 소희가 떠난 자리에 또 다른 소희가 놓일 것이다.

소희는 실적도, 취업률도 아니었다. 단지 춤을 좋아하고 친구를 사랑하는 한 소녀였을 뿐이다. 

사회에서 흔히 누군가 “힘들다”고 토로하면 “그럼 그만두면 되지”라고 쉽게 말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자신의 일을 쉽게 놓지 못할 것이다. 누군가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 혹은 빚을 갚기 위해 혹은 자신의 커리어를 쌓아가기 위해. 다양한 이유들로 힘든 상황에서 자신의 자리를 지킨다. 

소희 역시 자신만의 이유로 자리를 지키려 했지만 아이가 사라진 뒤에야 영화는 얼마나 스스로 감당하기 어려운 관계와 제도 속에 놓여 있었는지 뒤늦게 본다.

누군가가 무너진 뒤에야 문제를 발견하고 누군가가 죽은 뒤에야 제도를 들여다보는 사회라면 그 자리에 또 다른 소희가 생기는 것을 막긴 어려울 것이다.

다시는 또 다른 소희가 나오지 않도록 끊임없이 들여다보는 일. 소희가 떠난 뒤 우리 사회에 남겨진 숙제일 것이다.
 
사진영화 다음 소희 스틸컷
[사진=영화 '다음 소희'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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