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오후 서울고법 형사7부 법정. 오세훈 서울시장의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 항소심 5차 공판에서 스피커를 통해 명태균씨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사투리가 섞이고 음질도 고르지 않아 재판장이 "소리를 좀 키워달라"고 요청했지만, 몇몇 대목은 선명했지만 그렇지 않은 대목도 있었다.
"하여튼 오세훈이는 몰라요. 모르고, 걱정하지 말아요. 내가 알아서 할게."
법정 분위기가 순간 달라졌다. 검찰 공소사실의 중심에는 오 시장이 명씨에게 비공표 여론조사를 의뢰하고, 김한정씨가 그 비용을 대신 지급했다는 의혹이 있다. 그런데 2021년 당시 명씨가 김씨와 나눈 실제 통화에서는 오 시장이 여론조사 진행 과정을 알지 못했다는 취지의 말이 나온 것이다.
다른 대목도 이어졌다.
"지가 알든 모르든 상관없고…."
김씨 역시 "나는 여론조사를 어떤 식으로 해서라도 오세훈이 이기는 것으로 생각했다"며 "잘 나오게 해주겠다는 말을 믿었지만 결과도 그렇게 나오지 않아 생색낼 것도 없었다"고 말했다. 오 시장이 요청해서 움직였다기보다 자신이 오 시장을 돕기 위해 명씨에게 일을 맡겼다는 취지였다.
명씨는 자신이 돈을 빌려 여론조사를 돌렸다는 취지의 말까지 했다. 녹음 전체의 해석을 둘러싼 공방은 남아 있지만, 적어도 이날 법정에서 재생된 대화만 놓고 보면 오 시장의 지시와 김씨의 대납이 사전에 연결됐다는 공소사실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어 보였다.
재판부는 검찰의 부동의에도 해당 녹음파일을 탄핵증거로 채택했다. 불법적으로 취득됐거나 허위·조작됐다고 볼 만한 정황이 아직 없다는 이유였다. 오 시장 측 변호인은 녹음이 단순히 명씨 진술의 신빙성을 흔드는 데 그치지 않고 "공소사실이 진실이 아님을 보여주는 적극적인 반대증거"라고 주장했다.
검찰은 즉각 맞섰다. 제출된 3개 파일 가운데 하나가 원본이 아닐 가능성이 있고, 김씨가 모두 35개의 녹음 중 자신에게 유리한 3개만 골라 뒤늦게 제출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김씨가 파일을 갖고 있으면서도 숨겼다가 항소심에서 발견한 것처럼 주장한다고 의심했다.
그러자 김씨가 발끈했다. 그는 검찰을 향해 "죄송하지만 찾으려고 별로 노력하지 않은 것 같다"며 "딱 한 번 물어본 것 같다"고 받아쳤다. 검찰이 녹음파일을 숨겼다고 몰아세우지만, 정작 수사 당시에는 과거 휴대전화의 소재를 적극적으로 확인하지 않았다는 반박이었다.
김씨는 서울 주거지와 사무실은 물론 제주 별장까지 압수수색을 받았고, 별장 비밀번호도 알려주며 수사에 협조했다고 진술했다. 제주 별장 압수수색 당시의 상황을 두고도 검찰 측 설명과 자신의 기억이 다르다며 "저분은 나와 같이 있었다"는 취지로 반박했다. 자신이 증거를 감추려 했다면 압수수색에 그처럼 협조했겠느냐는 말이었다.
이 장면에서 김씨의 태도에는 검찰을 향한 냉소가 묻어났다. 그러나 단순한 감정적 조롱으로만 보기는 어려웠다. 검찰이 "증거를 숨겼다"고 주장하려면 김씨가 해당 휴대전화와 녹음파일의 존재를 명확히 알고도 의도적으로 제출하지 않았다는 사실부터 입증해야 한다. 김씨는 휴대전화를 여러 차례 바꿨고 문제의 옛 전화기는 제주에서 잃어버린 줄 알았다가 별장 창고에서 뒤늦게 찾았다고 설명했다. 수사기관도 압수수색 당시 그 전화기를 발견하지 못했다.
김씨의 말이 모두 사실인지는 포렌식 결과와 나머지 녹음파일을 통해 확인해야 한다. 다만 검찰이 '의도적인 은폐'를 기정사실처럼 주장한 것에 대해 김씨가 압수수색 과정과 검찰의 확인 횟수를 구체적으로 들어 반박한 장면은 객관성도 상당했다.
이날 공판의 핵심은 김씨가 검찰과 설전을 벌였다는 데 있지 않다. 명씨가 사건이 불거지기 전 김씨와 나눈 통화에서 "오세훈은 모른다"고 말한 사실 자체가 중요하다. 법정에서 한 명씨의 진술과 당시 육성이 충돌한다면 재판부는 어느 쪽이 더 믿을 만한지를 판단해야 한다.
명씨의 법정 진술은 1심 유죄 판단을 떠받친 주요 기둥이었다. 그 기둥에 균열을 낼 수 있는 당시 녹음이 항소심 법정에서 실제 재생됐고, 재판부도 이를 증거로 받아들였다. 파일의 원본성과 전체 맥락을 둘러싼 검증은 남아 있다. 그러나 이날 법정에서 울린 "오세훈이는 몰라요"라는 명씨의 육성은 1심 판단을 다시 들여다보게 만드는 무거운 한마디였다.
항소심 재판부는 다음 기일에 변론을 종결할 예정이다. 아직 판결을 예단할 단계는 아니다. 다만 검찰이 명씨의 달라진 진술을 뒷받침할 별도의 객관적 증거를 내놓지 못한다면, 합리적 의심을 배제해야 하는 형사재판의 원칙은 오 시장 쪽으로 기울 수밖에 없다. 이날 공판은 오 시장에게 단순한 호재를 넘어, 1심 유죄 판단을 뒤집을 수 있는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였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르포] 중력 6배에 짓눌려 기절 직전…전투기 조종사 비행환경 적응훈련(영상)](https://image.ajunews.com/content/image/2024/02/29/20240229181518601151_258_161.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