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석만의 프리즘] '역사와 마케팅' 기업은 신중하게, 소비자는 균형있게

AI를 활용해 제작한 이미지 챗GPT
AI를 활용해 제작한 이미지 [챗GPT]


기업의 광고와 마케팅은 이제 단순히 상품을 알리는 수단을 넘어 기업의 가치관과 사회적 감수성을 드러내는 창(窓)이 됐다. 소비자들은 제품의 품질뿐 아니라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얼마나 충실히 이행하는지까지 평가한다. 최근 잇따른 마케팅 논란은 이러한 시대적 변화를 여실히 보여준다.

스타벅스의 '탱크데이' 논란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화장품 브랜드 아이소이가 과거 '625% 침투'라는 광고 문구를 사용한 것이 드러나 논란에 휩싸였다. 숫자 자체는 제품의 흡수력을 강조하기 위한 표현이었겠지만, 많은 국민에게 '6·25 전쟁'을 연상시킨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최근 에이피알의 메디큐브 역시 부스터 프로 미니플러스 광고에 '625% 흡수율'이라는 문구를 사용한 사실이 알려지며 같은 논란에 휘말렸다. 이에 메디큐브는 SNS를 통해 일반적인 화장품 사용 방식으로 도포한 대조군 대비 시험군의 흡수량이 약 6.25배 높게 측정됐다는 시험성적서까지 공개하며 6·25를 마케팅에 활용했다는 주장에 선을 그었다. 

여기에 국내 주요 대학병원의 모바일 앱에서는 환자 생년월일 입력 예시로 세월호 참사 당일인 '20140416'을 게시했다는 비판에 사과하고 해당 문구를 수정했다. 

오늘날 기업은 과거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사회적 감수성을 요구받는다. 온라인과 SNS를 통해 광고는 순식간에 확산되고, 소비자의 평가는 기업의 브랜드 가치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특히 전쟁과 국가적 재난, 민주화운동, 대형 참사처럼 국민적 기억이 남아 있는 사건을 연상시키는 표현은 의도와 무관하게 상처를 줄 수 있다. "몰랐다", "우연이었다"는 해명만으로는 소비자를 설득하기 어려운 시대다.

각기 기업들도 할 말이 있겠지만 이러한 논란을 피하기 위해서는 검수 체계 강화가 필요하다. 마케팅 문구뿐 아니라 숫자, 이미지, 색상, 행사명, 날짜 예시까지 사회적 논란의 소지가 없는지 다각도로 점검하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특히 다양한 연령과 배경을 가진 직원들이 참여하는 다중 검토 절차를 마련하고, 필요한 경우 외부 전문가의 자문을 받는 것도 고려할 만하다. 비용이 다소 들더라도 한 번의 실수가 초래할 브랜드 신뢰 하락과 사회적 비용을 생각하면 결코 과한 투자가 아니다.

하지만 소비자의 평가 역시 균형을 잃어서는 안 된다. 모든 숫자나 표현을 특정 역사적 사건과 연결해 기업을 비난하는 풍조가 확산된다면 창의적인 마케팅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의도적인 역사 왜곡이나 희화화, 특정 사건을 상업적으로 이용한 경우는 비난 받아 마땅하지만, 우연한 연상을 억지로 끼워 맞춰 같은 잣대로 재단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민주사회에서 비판은 필요하지만, 그 비판 역시 사실과 맥락에 기초해야 한다. 상식과 균형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기업은 사회적 기억을 존중하는 세심한 책임 의식을 가져야 하고, 소비자는 의도와 맥락을 함께 살피는 성숙한 비판 의식을 가져야 한다. 사회적 감수성이 높아진 시대일수록 필요한 것은 극단적인 이분법이 아니라 책임 있는 기업 문화와 합리적인 시민의식이다. 그것이 반복되는 논란을 줄이고 건강한 소비 문화를 만드는 가장 현실적인 해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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