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화자금시장에는 달러가 많지만 정작 외환시장에서는 달러를 구하기 어려운 괴리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수출기업 등을 중심으로 달러를 원화로 환전하지 않고 외화예금으로 보유하는 움직임이 이어지면서 현물환 시장의 달러 공급을 제약하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전문가들은 고환율 기대가 기업들의 달러 보유를 부추기고 있다고 진단했다.
14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기업 달러예금은 올해 1월 819억3000만달러에서 2월 816억2000만달러, 3월 727억1000만달러로 감소한 뒤 4월 800억4000만달러, 5월 829억9000만달러로 다시 증가했다. 반면 개인 달러예금은 같은 기간 144억달러에서 143억8000만달러, 129억2000만달러, 132억7000만달러를 거쳐 125억7000만달러로 감소세를 보였다.
기업과 개인의 달러 보유 흐름이 엇갈리면서 거주자의 외화예금 증가는 기업을 중심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지난 3월에는 기업들의 국내 거래처 원화대금 결제와 법인세 납부 영향으로 달러예금이 일시 감소했지만 이후 빠르게 회복하며 5월에는 연초 수준을 웃돌았다. 이를 고려하면 올해 기업들의 달러 보유 성향이 강화된 것으로 풀이된다.
수출기업들이 달러를 원화로 환전하기보다 외화예금으로 보유하면서 현물환 시장에 공급되는 달러 물량이 줄어들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같은 현상은 외화자금시장과 외환시장의 엇갈린 모습에서도 확인된다. 외화자금시장에서는 원화를 담보로 달러를 빌리는 거래가 활발하게 이뤄지면서 달러 조달 여건이 양호한 반면 현물환 시장에서는 달러 공급 부족이 이어지며 원·달러 환율이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달에는 1560원 가까이 올랐고 이달 들어서도 1490원대 후반에서 움직이는 등 환율은 여전히 높은 상태다.
문다운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외화자금시장에서 달러를 빌릴 때 반영되는 프리미엄이 역사적 수준까지 하락하다 못해 마이너스 전환했다"며 "외화자금시장에서는 달러가 그렇게까지 귀하지 않은 반면 외환시장에서는 달러 품귀 현상에 환율이 급등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고환율이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가 기업들의 달러 보유를 더욱 늘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주가 상승에 따른 차익실현과 리밸런싱 등으로 외국인 투자자금이 순유출되면서 수급 측면에서 달러가 부족해지는 가운데 환율 상승을 예상한 기업들이 달러 매도를 미루면서 실제 환율 상승 압력을 키우고 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환헤지를 줄이고 달러 보유 비중을 높이는 전략이 확산되면서 외환시장으로 유입되는 달러는 더욱 감소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하반기부터는 기업들의 달러 매도 요인이 늘어나면서 현물환 시장으로 유동성이 일부 유입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한화오션의 대규모 선물환 매도와 SK하이닉스 미국주식예탁증서(ADR) 자금 유입, 반도체 수출 호조에 따른 달러 유입 확대, 법인세 중간예납을 위한 환전 수요 등이 달러 공급 확대 요인으로 거론된다. 실제 이날 환율이 1490원대로 떨어진 것도 SK하이닉스 ADR 환전 물량 효과라는 분석이 제기됐다.
문 연구원은 "정부의 외환수급 대책은 수급 쏠림을 점진적으로 완화하는 방향으로 기저에서 작용 중"이라며 "이에 맞춰 대기업을 중심으로 수급 조정이 나타나면서 환율에 대한 기대가 점차 아래로 꺾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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