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송 한국은행 총재가 취임 후 첫 금융통화위원회를 열고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시장의 관심은 금리 결정 자체보다 향후 금리 경로에 쏠렸다. 신 총재는 물가와 금융안정 상황을 고려해 적절한 시기에 기준금리를 인상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매파적'(통화긴축 선호) 동결이다. 시장에 통화 긴축 신호를 던진 이번 결정은 한국 경제가 처한 현실을 고려하면 중앙은행 본연의 역할에 가까운 선택으로 읽힌다.
공교롭게도 미국 역시 비슷한 시기 중앙은행 리더십 교체기를 지나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도 새 의장 체제 아래 초기 정책 방향을 조율 중이다. 양국 중앙은행 모두 '새 리더의 첫 메시지'가 시장의 시험대에 오른 것이다. 미국은 인플레이션 압력이 확대되면서 기준금리 인하가 아닌 인상 여건이 갖춰지고 있다. 한국은 예상을 웃도는 경기 호조와 가계부채, 부동산 시장, 환율 불안이라는 복합 리스크를 동시에 방어해야 하는 처지다.
그렇기 때문에 신 총재가 던진 첫 메시지는 더욱 묵직하다. 신 총재는 "고려 요소가 서로 상충돼 딜레마에 빠지는 게 가장 힘든데, 이번엔 예외적으로 물가·성장·환율·부동산을 보면 갈 길이 명확하다"고 단언했다. 여러 리스크가 상충하는 고차방정식이 아니라, 모든 지표가 '금리 인상'이라는 하나의 목적지를 향하고 있다는 선언이다.
최근 한국 경제는 겉보기에 반도체 호황과 수출 회복 덕분에 비교적 양호한 성장 흐름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내부를 들여다보면 온기보다 냉기가 가득하다. 수도권 부동산 가격은 다시 들썩이고 있고 가계대출 증가세도 심상치 않다. 중동 전쟁으로 인한 국제유가 상승, 환율 변동성 확대까지 겹치며 물가 상방 압력은 커지고 있다. 시장 일각에서 재정 확대와 유가 상승이 맞물려 인플레이션이 우려를 제기하는 이유다.
이런 상황에서 신현송호(號) 첫 금통위가 연내 두 차례 안팎의 추가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한 것은 시장의 불확실성을 줄이는 신호로 읽힌다. 이미 중동 전쟁 여파로 금리 인상론이 시장을 지배하며 금리가 치솟은 상황이다. 한국처럼 자산시장과 가계부채가 경제 전반을 흔드는 구조에서는 중앙은행의 미온적인 태도가 오히려 화를 키우기 십상이다. 신 총재의 이번 발언으로 3년 6개월 만의 금리 인상이 기정사실화됐다.
미국 연준 내에선 "금리 인상 신호를 줘야 한다"는 분위기가 확산하고 있다. 연초만 해도 시장에선 금리 인하 전망이 우세했고 대통령의 금리 인하 압박도 이어졌다. 그러나 최근 중동 전쟁발 인플레이션 우려가 고개를 들며 금리 인상 가능성이 열리고 있다. 시장과 정치권의 압박 속에서도 물가 안정이라는 가치를 지키려는 모습이다. 중앙은행의 신뢰는 '불편한 결정을 내릴 수 있는가'에서 나온다는 점을 방증한다.
신 총재 역시 이 지점에서 본연의 키를 단단히 잡아야 한다. 정부의 확장 재정 기조 속에서 경기 부양 요구가 거세질수록, 통화당국의 독립성과 물가 안정 의지는 더욱 엄격한 시험대에 오른다. 재정과 통화정책의 박자가 어긋나는 국면일수록 중앙은행이 중심추 역할을 해줘야 한다. 긴축의 고삐를 늦췄다간, 훗날 환율 불안과 인플레이션 고착화라는 더 혹독한 대가를 치를 수 있다.
물론 긴축만이 만병통치약이라는 뜻은 아니다. 자영업자와 취약차주의 고통이 임계점에 달한 상황에서 금리 정책은 언제나 뼈아픈 부작용을 동반한다. 중요한 것은 신 총재가 언급한 대로 속도와 방향이다. 한은이 해야 할 또 다른 일은 시장 기대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면서 경제 주체들이 예측 가능한 환경 속에서 움직이도록 나침반을 제공하는 것이다.
중앙은행은 경제의 마지막 안전판으로서 시장이 불편해 하더라도 쓴소리를 던질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번 첫 금통위는 단순한 금리 동결 이상의 의미를 남겼다. 지금 한은에 필요한 것은 신뢰를 축적하는 시간이다. 그 신뢰는 지표가 가리키는 명확한 목적지를 향해 흔들림 없이 직진하는, 원칙 있는 통화정책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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