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북중미 월드컵 개막이 이제 눈앞으로 다가왔다. 6월11일부터 7월19일까지 캐나다·미국·멕시코에서 열리는 이번 대회는 참가국이 48개국으로 늘어난 사상 최대 규모의 월드컵이다. 경기 수도 대폭 확대됐다. 세계 수십억 명이 TV와 모바일 화면으로 연결되고, 수백만 명이 국경을 넘어 경기장을 찾게 된다. 월드컵은 단순한 스포츠 이벤트가 아니다. 인류가 만든 가장 거대한 글로벌 축제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축제를 기다리는 세계의 표정은 밝지만은 않다. 중동에서는 미국과 이란의 긴장이 계속되고 있고, 우크라이나 전쟁도 끝나지 않았다. 국제사회는 공급망 불안과 에너지 충격, 테러 위협 속에서 흔들리고 있다. 미국 정부가 월드컵 경기장 주변 드론 테러 가능성을 우려하며 대응 체계를 점검하고 있다는 보도까지 나오고 있다. 첨단 기술 시대의 월드컵은 이제 테러와 사이버 위협, 드론 공격 가능성까지 함께 고민해야 하는 시대가 됐다.
결국 스포츠와 정치는 분리될 수 없다는 현실을 다시 보여준다. 사람들은 흔히 “스포츠에 정치를 끌어들이지 말라”고 말한다. 이상적으로는 맞는 이야기다. 그러나 현실의 월드컵은 언제나 국제정치의 그림자 위에서 열렸다.
총 대신 공으로 겨루는 문명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은 나치 독일의 체제 선전장이었다. 냉전 시대 올림픽은 미국과 소련의 체제 경쟁 무대였다.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은 군사정권 논란 속에서 열렸고, 남아공은 인종차별 정책 때문에 국제 스포츠 무대에서 오랫동안 고립됐다. 2002년 한일월드컵 역시 스포츠를 넘어 한일 관계 변화와 동아시아 질서 재편 흐름 속에서 열렸다.
스포츠는 인간을 하나로 묶는 힘을 갖고 있지만, 동시에 국제질서의 현실도 비춘다. 월드컵은 늘 세계 정치의 거울이었다.
이번 북중미 월드컵도 예외가 아니다. 특히 미국과 이란 관계는 대회의 안정성과 상징성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미국과 이란의 종전 협상과 관련해 “서둘러 합의하지 말라”고 밝혔다. 그는 “시간은 미국 편”이라고 강조하며 해상 봉쇄 유지 방침도 재확인했다.
겉으로는 협상 국면이지만, 긴장은 여전히 살아 있다는 뜻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이란 축구대표팀은 당초 미국 애리조나에 마련하려 했던 월드컵 베이스캠프를 멕시코 티후아나로 변경했다. 이란축구협회는 보안과 비자 문제 등을 이유로 들었다. 월드컵을 준비하는 대표팀조차 국제정치의 현실을 피해갈 수 없는 것이다.
사실 월드컵은 평화가 전제돼야 가능한 행사다. 선수단과 팬, 기업과 미디어, 관광객과 자본이 자유롭게 이동해야 한다. 전쟁과 테러 위협은 월드컵의 본질 자체를 흔든다. 국제 유가가 급등하고 항공 노선이 흔들리면 대회 운영에도 직접 영향을 준다. 세계 경제가 흔들리면 소비와 광고 시장도 위축된다.
월드컵은 스포츠 산업인 동시에 거대한 경제 이벤트다. FIFA와 글로벌 기업들, 방송사와 플랫폼 기업, 항공·호텔·유통 산업까지 모두 연결돼 있다. 평화는 단지 정치적 이상이 아니라 경제적 필요이기도 하다.
드론과 AI 시대의 월드컵
이번 월드컵이 더욱 주목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세계경제는 지금 복합 위기 속에 들어가 있다. 지정학 충돌과 공급망 불안, AI 혁명과 보호무역주의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전략 경쟁도 계속되고 있다. 국제질서는 냉전 이후 가장 불안정한 시기를 지나고 있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그럴수록 월드컵의 의미는 더 커진다. 월드컵은 서로 다른 국가와 인종, 종교와 문화가 하나의 규칙 아래 경쟁하는 공간이다. 총과 미사일이 아니라 공 하나로 승부를 겨룬다. 인간 문명이 만든 가장 평화적인 경쟁 방식 가운데 하나다.
고대 그리스가 전쟁 중에도 올림픽 기간에는 휴전을 선언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인간은 경쟁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지만, 최소한 파괴 대신 규칙 속 경쟁으로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이다. 월드컵은 현대판 올림픽 휴전과 비슷한 의미를 갖는다.
물론 현실은 녹록지 않다. 스포츠조차 정치 갈등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번 월드컵 역시 미국 대선 이후 정치 지형 변화와 이민 문제, 치안 문제, 테러 위협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미국 정부가 드론 방어 체계 구축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보도는 첨단 기술 시대의 불안한 현실을 보여준다.
AI와 드론 기술은 인간 삶을 혁신했지만 동시에 새로운 위협도 만들었다. 과거에는 국가만 가능했던 공격이 이제는 소형 드론 몇 대로도 가능해지는 시대다. 월드컵 같은 글로벌 이벤트는 그런 위험에 가장 민감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월드컵의 존재 이유가 더 중요해진다. 세계가 갈등과 혐오, 극단주의로 흔들릴수록 인간은 서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경험이 필요하다. 브라질 축구에 환호하고, 아프리카 약팀의 선전에 감동하고, 아시아 국가의 도전에 열광하는 경험은 단순한 스포츠 소비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 공동체에 대한 확인이다.
2002년 한일월드컵 때 한국 사회가 보여준 거리 응원 역시 단순한 축구 열기를 넘어섰다. 외환위기 이후 움츠러들었던 국민들이 다시 자신감을 회복하는 계기였다. 세계는 한국 시민들의 질서와 열정에 놀랐고, 한국인들은 함께 응원하며 공동체의 힘을 확인했다.
스포츠는 때로 경제와 사회 심리까지 바꾼다. 그래서 월드컵은 단순한 공놀이가 아니다.
월드컵의 진짜 우승은 평화다
지금 세계는 다시 거대한 전환기 위에 서 있다. AI 혁명과 지정학 충돌, 경제 불안과 안보 위기가 동시에 밀려온다. 그 속에서 인간은 점점 더 분열되고 있다. 서로를 적으로 규정하는 정치가 늘어나고, 플랫폼과 알고리즘은 분노와 혐오를 증폭시키고 있다.
그럴수록 월드컵의 본래 목적을 잊어서는 안 된다. 월드컵은 누가 더 강한가를 겨루는 대회이면서 동시에 인간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존재인지를 시험하는 무대이기도 하다.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 전략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미국과 이란의 긴장도 쉽게 끝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적어도 월드컵 기간만큼은 세계가 조금 더 평화로운 방향으로 움직이기를 바라는 마음은 모두 같을 것이다.
월드컵의 진짜 성공은 우승 국가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세계가 전쟁과 증오 대신 평화와 공존으로 한 걸음이라도 더 나아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월드컵이 존재하는 가장 큰 이유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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