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원칙부터 분명히 해야 한다. 기업은 사적 주체이며 노사 교섭은 자율이 기본이다. 임금과 성과급, 근로 조건을 둘러싼 협상은 당사자 간 이해 조정의 문제다. 이를 공익이라는 이름으로 일방을 억누르는 논리로 가져가는 것은 정당성을 얻기 어렵다. 노동자의 쟁의권 역시 헌법이 보장한 권리다.
그럼에도 이번 사안이 갖는 특수성은 있다. 바이오 의약품 위탁생산은 장기간의 신뢰와 품질 인증을 기반으로 유지된다. 생산 차질이 발생하면 단기 매출 감소를 넘어 계약 안정성과 기업 평판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이는 다시 협력사와 투자자, 지역 경제로 파급된다. 즉, 사적 분쟁이지만 외부 효과가 큰 산업이라는 점에서 공익적 고려가 함께 작동할 필요가 있다.
다만 이를 이유로 갈등의 책임을 한쪽에만 돌려서는 안 된다. 파업이 기업에 부담을 준다는 이유만으로 노조의 요구를 ‘과도하다’고 단정하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반대로 경영진 역시 생산 안정성이 절대적인 산업에서 갈등이 파국으로 치닫도록 방치했다면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시스템 리스크가 큰 산업일수록 사전에 갈등을 관리하고 타협을 끌어내는 능력은 경영의 핵심이다.
노동자 보상과 미래 투자를 단순히 맞바꾸는 문제로 보는 시각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기업의 자본 운용은 복합적이다. 임금 인상이 곧바로 연구개발 축소로 이어진다고 단정할 수 없다. 반대로 과도한 단기 보상이 투자 여력을 압박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어느 한 항목을 줄이고 늘리는 문제가 아니라, 전체 자원의 배분을 어떻게 균형 있게 설계하느냐다. 노사는 이 지점에서 현실적인 접점을 찾아야 한다.
해법이 단순히 ‘대화’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대화가 작동하려면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정부의 역할은 여기서 시작된다. 정부가 임금 수준이나 경영권 문제에 직접 개입할 수는 없다. 그러나 중재의 틀을 만들고 협상이 지속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은 가능하다. 예컨대 일정 기간 집중 교섭을 유도하는 조정 절차, 핵심 공정에 대한 최소 운영 유지 기준, 갈등 장기화 시 공익 영향 평가 제도 등이 검토될 수 있다. 이는 노사 자율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산업적 충격을 줄이는 장치가 될 수 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투명성이다. 임금 요구와 경영 성과, 투자 계획이 서로 단절된 상태에서는 합리적 판단이 어렵다. 기업은 재무와 투자 계획을 보다 명확히 제시할 필요가 있고, 노조 역시 요구의 근거를 구체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정보가 공유될 때 협상은 감정이 아니라 숫자로 진행될 수 있다.
결국 이번 사안의 본질은 균형이다. 노동자의 권리와 기업의 지속 가능성, 산업의 안정성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 어느 한쪽만을 강조하면 해법은 나오지 않는다. 파업은 마지막 수단이어야 하며, 경영 역시 마지막까지 타협의 여지를 남겨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힘겨루기가 아니다. 신뢰를 회복하고 현실적인 접점을 찾는 일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사태는 한국 산업이 성숙 단계로 가는 과정에서 겪는 진통일 수 있다. 이 진통을 관리하지 못하면 위기로 번질 수 있지만, 잘 풀어낸다면 새로운 균형을 만드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노사 모두 그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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