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7일 청와대에서 마주 앉은 이재명 대통령과 데미스 허사비스의 대화는 짧았지만 묵직했다. 대통령이 “AI 시대에 기본소득이 필요하지 않느냐”고 묻자 허사비스는 동의했다. 그는 일자리의 정의와 부의 재분배를 다시 설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 5년 안에 인간의 모든 인지 능력을 구현하는 범용 인공지능, AGI가 가시화될 수 있다고 했다. 이 발언은 미래 예측이 아니라 이미 시작된 변화에 대한 진단이다.
허사비스는 과장을 하는 인물이 아니다. 그는 알파고로 인간의 직관을 무너뜨렸고, AlphaFold로 생명과학의 난제를 풀었다. 그의 말은 기술 낙관이 아니라 현실 인식에 가깝다. 문제는 속도다. AI는 인간이 제도를 정비하고 사회가 적응할 시간을 주지 않는다. 경쟁은 이미 시작됐고 멈출 수 없다. 이 지점에서 많은 이들이 “AI는 통제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러나 여기서 논의를 멈추면 절반만 본 것이다. AI의 속도는 통제할 수 없지만, AI가 작동하는 ‘환경’은 설계할 수 있다. 기술 자체를 멈추는 통제는 불가능하지만, 데이터의 흐름과 활용 규칙, 시장의 작동 방식은 국가가 정할 수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기술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기술이 작동하는 ‘룰’을 만드는 일이다. 이것이 개별 국가가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주도권이다.
지금 글로벌 AI 경쟁은 기업 간 경쟁을 넘어 국가 간 질서 경쟁으로 이동하고 있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오픈AI 같은 빅테크는 막대한 자본과 데이터를 기반으로 생태계를 장악하고 있다. 이 구조에서 후발 주자가 동일한 방식으로 경쟁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전략은 달라져야 한다. 기술을 모두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규칙을 설계하고 그 안에서 경쟁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이 지점에서 허사비스의 방한과 AI 캠퍼스 설립 계획을 냉정하게 봐야 한다. 해외 AI 연구 거점 유치는 분명 기회다. 공동 연구와 기술 교류는 산업 발전에 도움이 된다. 그러나 동시에 위험도 분명하다. 글로벌 빅테크는 기술을 나누지 않는다. 인재와 데이터를 흡수하고 생태계를 확장한다. 캠퍼스는 협력의 공간이면서 동시에 인재를 빨아들이는 통로가 될 수 있다.
따라서 필요한 것은 무조건적인 유치가 아니라 조건부 협력이다. 공동 연구의 성과는 일정 부분 국내에 귀속되어야 하고, 핵심 인재가 일방적으로 유출되지 않도록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데이터 활용 역시 국내 규범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기술 협력은 열되 주도권은 지켜야 한다. 이것이 AI 시대의 새로운 산업 외교다.
AGI 논의 역시 같은 맥락에서 봐야 한다. 인간의 인지 능력을 대체하는 기술이 등장한다면 노동 시장은 근본적으로 흔들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것이 곧 인간의 역할이 사라진다는 의미는 아니다. 기술 발전에는 항상 과도기가 존재한다. 단기적으로는 인간이 AI를 설계하고 활용하는 단계가 지속된다. 중기에는 인간과 기계의 협업이 일반화된다. 장기적으로 일부 영역에서 대체가 이루어진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인간을 대체하는 기술에 대한 공포가 아니라, 인간이 AI와 함께 일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다. 데이터 해석, 알고리즘 설계, 시스템 통합 능력은 여전히 중요하다. 다만 그것이 최종 목표가 아니라 과도기를 버티기 위한 핵심 역량이라는 점을 명확히 해야 한다. 인재 전략 역시 단기와 장기를 구분해 설계해야 한다.
더 중요한 문제는 분배다. AI는 생산성을 극단적으로 끌어올린다. 동시에 부의 집중을 가속화한다. 데이터를 가진 기업, 알고리즘을 가진 기업이 대부분의 이익을 가져가는 구조가 이미 형성되고 있다. 허사비스가 기본소득을 언급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기본소득은 해법이 아니라 질문이다.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가 핵심이다.
여기서 국가 단위 정책의 한계가 드러난다. 글로벌 빅테크는 국경을 넘나들며 수익을 창출한다. 개별 국가가 이들의 이익을 포착해 과세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렇다면 해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국제 공조다. 디지털세와 같은 글로벌 과세 체계를 통해 초과 이익을 환수해야 한다. 다른 하나는 국내 제도다. 데이터 사용에 대한 가치 환원 구조를 만들고, AI로 발생한 이익이 사회로 환류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기업에도 변화가 요구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같은 제조 기업은 AI를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핵심 경쟁력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자동차, 조선, 에너지 산업 역시 마찬가지다. AI는 특정 산업의 기술이 아니라 모든 산업의 기반이다.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면 기존 경쟁력도 빠르게 약화될 수 있다.
결국 AI 시대의 경쟁은 세 가지로 압축된다. 기술을 개발하는 능력, 기술을 활용하는 능력, 그리고 기술이 작동하는 규칙을 만드는 능력이다. 한국은 첫 번째에서 일부 경쟁력을 갖고 있고 두 번째에서는 빠르게 따라가고 있다. 그러나 세 번째, 즉 룰을 만드는 능력에서는 아직 갈 길이 멀다.
허사비스의 발언은 단순한 기술 전망이 아니다. 그것은 선택을 요구하는 메시지다. AI의 속도는 멈출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속도에 휩쓸릴 것인가, 아니면 그 위에 질서를 세울 것인가. 기술을 통제할 수 없다면, 기술이 작동하는 세상을 설계해야 한다. 그것이 AI 시대에 국가가 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전략이다.
지금 한국은 기로에 서 있다. 따라가는 나라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규칙을 만드는 나라로 도약할 것인가. 답은 이미 나와 있다. 문제는 실행이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르포] 중력 6배에 짓눌려 기절 직전…전투기 조종사 비행환경 적응훈련(영상)](https://image.ajunews.com/content/image/2024/02/29/20240229181518601151_258_161.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