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그 해협에서 들어오는 석유가 1%도 안 된다. 더 많이 의존하는 나라들이 와서 도와야 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이 발언은 거칠고 직설적이지만, 그 이면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미국이 더 이상 ‘세계의 경찰’ 비용을 홀로 감당하지 않겠다는 선언이자, 수익자 부담 원칙을 안보 영역까지 확장하겠다는 선고다.
“우리가 4만5000명의 병력을 두고 보호하는 나라들이 있다”는 언급까지 더해지면서 압박의 성격은 더욱 노골적이 됐다. 이는 단순한 방위비 분담을 넘어, 전략 자산의 운용 비용까지 동맹에 청구하겠다는 계산된 포석이다.
하지만 이 같은 요구에 단선적으로 응답하는 것은 하책(下策)이다. 호르무즈 해협은 한국뿐 아니라 일본, 중국, 인도, 동남아시아 등 아시아 제조 강국들의 ‘에너지 탯줄’이다. 이 좁은 물길이 막히는 순간, 국제 유가와 물류 비용이 연쇄적으로 상승하고 이는 곧 아시아 전체의 물가와 생산 원가를 끌어올리며 민생 전반을 압박하게 된다. 공동의 위기라면 대응 또한 공동이어야 한다.
이제 한국도 ‘참여냐 거부냐’의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 아시아 주요 에너지 소비국들이 머리를 맞대고 ‘아시아 에너지 수송로 협의체(가칭)’와 같은 다자간 대응 틀을 구축하는 것이다.
각자도생식 대응은 미국의 각개격파 압박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한국, 일본, 중국, 인도, 동남아 주요국이 공동의 원칙과 기준을 세운다면, 해상 안전 확보 방식과 비용 분담, 참여 범위, 외교 메시지를 함께 설계할 수 있다. 이는 곧 미국과의 협상에서 집단적 협상력으로 작동한다.
더 나아가 이번 사태는 단기 대응으로 끝낼 문제가 아니다. 에너지가 다시 지정학적 무기로 등장한 이상, 공급망 안정은 더 이상 경제의 문제가 아니라 안보의 핵심 과제다. 공동 비축 시스템 구축, 공급망 다변화, 수송 리스크 분산, 가격 급등 대응 체계를 포함하는 ‘에너지 연맹’ 수준의 제도화가 필요하다.
트럼프의 ‘호르무즈 청구서’는 하나의 요구가 아니라, 앞으로 반복될 질서 변화의 신호다. 여기에 각국이 흩어져 대응한다면 비용은 커지고 선택지는 줄어든다.
에너지가 무기가 된 시대다.
아시아의 답은 ‘각자도생’이 아니라 전략적 연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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