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상 컬럼] BTS의 '아리랑' 이후 K-헤리티지는 어디로 가야 하나

  • 이지위드에서 시작된 질문

전통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종종 너무 큰 장면부터 떠올린다. 국가 행사나 세계 무대, 혹은 단 한 번의 상징적인 성공 같은 장면들이다. 그러나 요즘 K-헤리티지의 변화를 가장 또렷하게 보여주는 곳은 의외로 조용한 전시 공간과 공공 문화 현장이다. 그곳에서 전통은 박제된 대상이 아니라, 다시 사람 앞에 놓이는 존재로 모습을 드러낸다.

조선시대 민화 雲逋筆虎圖  자료국립중앙박물관
조선시대 민화 雲逋筆虎圖 [자료=국립중앙박물관]

이지위드는 그런 흐름을 가장 차분하게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다. 이지위드는 전통 수묵화와 민화, 한글 서체 같은 한국 전통예술을 데이터로 정리하고, 이를 AI와 미디어아트로 연결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접근 방식은 흔히 떠올리는 ‘재해석’이나 ‘트렌디한 변주’와는 다르다. 전통을 새롭게 만들겠다고 말하지도 않고, 흥행을 전면에 내세우지도 않는다. 대신 전통이 사람 앞에 어떤 거리로 놓일 때 가장 자연스러울지를 묻는다.


이지위드의 전시는 대체로 조용하다. 궁궐의 문양은 빛과 영상으로 천천히 움직이고, 민화 속 호랑이는 화면 속에서 과장된 동작을 하지 않는다. 관람자의 움직임에 반응하긴 하지만 감탄을 요구하지도, 설명을 강요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어떤 이는 멈춰 서서 오래 바라보고, 또 다른 이는 잠시 스쳐 지나간다. 그러나 그 둘 사이에 우열은 없다. 문화는 원래 그렇게 작동한다. 중요한 것은 전통이 보호의 대상에 머무르지 않고, 마주칠 수 있는 상태로 놓여 있다는 점이다.
 

이 장면을 보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하나의 기억이 떠오른다. 방탄소년단(BTS)이 ‘아리랑’을 말했을 때 많은 이들은 전통이 다시 살아났다고 표현했다. 하지만 그 장면을 조금 더 차분히 바라보면 전통이 새로 태어났다기보다는 사람을 다시 만났다는 사실이 더 정확하다. 아리랑은 사라진 적이 없었다. 다만 일상에서 멀어져 있었을 뿐이다. BTS는 전통을 새로 만들지 않았다. 전통이 다시 보이게 만들었을 뿐이다. 
 

이지위드의 시도는 바로  BTS아리랑 이후의 세계를 보여준다. 세계적인 무대에서의 단 한 번의 장면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반복되는 작은 만남의 세계다. 그래서 이 흐름은 더 느리고, 더 조용하다. 그러나 그만큼 오래 이어질 가능성을 품고 있다.


요즘 전통 앞에는 기술이 놓여 있다. AI와 미디어아트, 디지털 플랫폼 같은 도구들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기술이 무엇을 하느냐보다, 무엇을 하지 않느냐다. 기술은 감동을 만들어내지 않는다. 컴퓨터는 그림을 그릴 수 있지만 감정을 느끼지는 못하고, AI는 형태를 따라 할 수는 있어도 사람처럼 마음이 움직이지는 않는다. 그래서 기술은 언제나 주인공이 될 수 없다. 조연에 머무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럽다.


한국 속담에 “장맛은 손맛이 낸다”는 말이 있다. 도구가 아무리 좋아도 맛을 내는 건 결국 사람이다. 문화 역시 마찬가지다. 감동은 기술이 아니라 사람에게서 나온다. 기술의 역할은 감동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감동이 생길 수 있는 자리를 넓히는 데 있다. 전통이 특정 박물관이나 교과서, 특정 기념일에만 머무르지 않도록 돕고, 더 많은 사람이 더 다양한 시간과 공간에서 우연히 마주치게 만드는 일이다.


이지위드는 바로 그 역할에 충실하다. 빠른 성과를 말하지 않고, 대단한 선언도 하지 않는다. 대신 전통을 조용히 꺼내 놓고, 사람의 반응을 기다린다. 누군가는 멈춰 서고, 누군가는 지나가며, 그 모든 반응이 문화의 일부가 된다.
 

그래픽노트북LM
[그래픽=노트북LM]


우리는 흔히 묻는다. 이 시도가 성공할 수 있을지, 돈이 될 수 있을지, 세계에서 통할 수 있을지를. 그러나 K-헤리티지에 더 중요한 질문은 따로 있다. 이런 만남이 계속 이어질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한국 속담은 “길은 걸어야 길이 된다”고 말한다. 전통도 마찬가지다. 한 번의 큰 성공보다, 여러 번의 작은 만남이 더 중요하다.


BTS의 ‘아리랑’은 전통이 지금도 살아 움직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었다. 이지위드 같은 시도는 그 가능성이 일상으로 내려오는 과정을 보여준다. 급하지 않게, 확신을 앞세우지 않고, 사람을 중심에 두는 방식으로 말이다. 그래서 BTS의 ‘아리랑’ 이후, K-헤리티지가 가야 할 길은 더 빠른 성공이 아니라 더 오래 이어질 길이다. 그리고 그 길은 지금도 이렇게 조용한 현장에서 하나씩 만들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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