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는 거품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그게 좋은 일이라고 본다.”
세계경제포럼, 이른바 다보스 포럼의 공기는 이 발언을 낯설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AI가 경제 전반을 바꿀 것이라는 믿음은 이미 상식이 됐고, 자본은 그 믿음보다 더 빠르게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AI에 거품이 있느냐가 아니라, 이 거품을 우리는 어떻게 통과할 것인가다.
이 장면은 낯설지 않다.
18세기 초 런던을 뒤흔든 ‘남해회사(South Sea Company) 투기 광풍’도 그랬다. 남해회사는 남미 무역 독점이라는 그럴듯한 약속을 내걸었지만, 실체는 희미했다. 그럼에도 귀족과 상인, 성직자까지 투기에 뛰어들었다. 남은 것은 폭락한 주가와, 손실을 본 뒤 “나는 천체의 움직임은 계산할 수 있었지만 인간의 광기는 계산할 수 없었다”고 탄식한 아이작 뉴턴의 고백뿐이었다.
한국의 전통 설화에도 같은 욕망이 반복된다. 도깨비 방망이를 얻어 하루아침에 부자가 되려는 이야기, 땅만 파면 금이 솟아날 것이라 믿는 장면들이다. 결말은 늘 비슷하다. 욕심을 부린 쪽은 속고, 쉽게 얻은 부는 쉽게 사라진다. 공짜로 얻는 부에는 언제나 대가가 붙는다는 교훈이다.
물론 AI는 18세기 투기 광풍의 허구와는 다르다. 기술은 실재하고, 이미 산업을 바꾸고 있다. 테일러 의장의 말처럼, 거품은 새로운 기술이 시장에 안착하기 위해 치르는 일종의 수업료일 수도 있다. 닷컴 버블이 터진 뒤의 잿더미 위에서 아마존과 구글이라는 거인이 등장했듯, AI 거품이 가라앉은 자리에도 진짜 경쟁자는 남을 것이다.
문제는 그 과정이다. 시장은 본래 냉혹하다. 거품이 꺼지면 누군가는 살아남고, 누군가는 사라진다. 자본은 증발하고, 판단은 평가받는다. 이 불편한 조정이 바로 자본주의의 작동 방식이다. 조지프 슘페터가 말한 ‘창조적 파괴’는 고통 없는 축제가 아니었다. 실패와 손실을 전제로 한 역동이었다.
그런데 이 과정에 정부는 늘 개입하려 든다. 거품이 보이면 으레 “과열을 막겠다”며 규제의 칼을 빼 든다. 마치 시장보다 자신들이 더 현명하다는 듯한 태도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정부가 거품을 미리 골라 제거하는 데 성공한 사례는 드물다. 대부분은 너무 빨리 개입해 혁신의 싹을 자르거나, 너무 늦게 움직여 파국의 비용을 키웠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거품을 터뜨리는 것이 아니다. 거품이 터질 때 튀는 파편이 금융 시스템과 실물 경제 전체를 무너뜨리지 않도록 방파제를 쌓는 것이다. 전력 부족, 데이터센터 병목, 인프라 과부하 같은 ‘공급의 동맥경화’를 풀어주는 것이다. 시장의 판단을 대신하려 들면 그 순간부터 정부는 조연이 아니라 주인공이 되고 혁신은 뒤로 밀린다.
투자자 역시 예외는 아니다. AI라는 이름에 취해 묻지마 투자에 나섰다면, 그에 따른 손실도 감수해야 한다. 거품의 과실은 챙기고 조정의 대가는 사회에 떠넘기겠다는 발상은 시장경제의 문법이 아니다. 흥부 이야기 속 제비가 물어온 박은 설화 속 선물이었지, 현실의 자본시장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다보스에서 시작된 AI 낙관론은 언젠가 시험대에 오를 것이다. 거품은 식을 수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그 다음이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선택은 많지 않지만, 분명히 그어야 할 선은 있다.
정부는 AI의 승자를 고르려 들지 말아야 한다. 대신 전력·데이터센터·반도체처럼 거품이 공공재를 잠식하는 경로만은 관리해야 한다. 시장의 실패를 대신 떠안는 순간 다보스에서 웃으며 던진 ‘좋은 거품’이라는 말은 결국 국민의 세금과 전기요금으로 전가될 것이다.
기업에는 실험의 자유가 필요하다. 다만 그 실험이 실패했을 때, 다시 도전할 수 있는 통로까지 함께 남겨야 한다. 실패를 처벌하는 시장에서는, 거품 이후에 남는 것이 혁신이 아니라 침묵이기 때문이다.
AI 거품은 피할 수 없다. 그러나 그 계산서를 누가 부담하게 할지는 지금 결정할 수 있다.
그 선택이 AI 혁명을 진보로 만들지, 또 하나의 값비싼 사회적 청구서로 남길지를 가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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