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사설 | 기본·원칙·상식]장기 한파는 자연이 만들지만, 방치는 사회의 책임이다

한파가 이어지는 21일 서울 한강 광나루 관공선 선착장 인근 강물이 얼어 있다 사진연합뉴스
한파가 이어지는 21일 서울 한강 광나루 관공선 선착장 인근 강물이 얼어 있다. [사진=연합뉴스]

올겨울 한파는 분명 자연현상이다. 북극 한기가 남하하고, 기온이 영하 10도 아래로 떨어지는 것은 인간이 막을 수 없다. 그러나 그 추위 앞에서 누가 더 위험에 노출되고, 누가 살아남는지는 자연이 아니라 사회가 결정한다. 장기 한파를 사회적 재난으로 규정해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극한의 추위가 불가항력이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영하 20도 안팎의 기온에서는 아무리 선진적인 국가라 해도 고령자와 기저질환자의 사망 위험을 ‘제로’로 만들 수는 없다. 인간의 신체는 추위 앞에서 근본적으로 취약하다. 그러나 바로 그 불가항력성과 생물학적 한계 때문에, 한파는 개인의 각오나 주의만으로 감당할 문제가 될 수 없다. 위험이 통제 불가능할수록, 사회의 개입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된다.
한파 시 사망률이 증가하는 현상은 인체의 생리적 반응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급격한 기온 하강은 혈관을 수축시키고, 심뇌혈관·호흡기 질환의 치명도를 높인다. 이 사실은 “사회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결론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정반대다. 누가, 언제, 가장 먼저 쓰러질 수 있는지가 예측 가능한 재난이라는 점에서, 한파는 사회가 개입하지 않을 경우 피해가 집중되는 구조적 위험이다.
문제는 추위 자체가 아니라, 그 추위를 견디는 조건의 격차다. 난방이 충분한 집과 그렇지 못한 집, 돌봄을 받는 노인과 고립된 노인,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사이의 차이가 곧 생존 확률의 차이로 이어진다. 이 지점에서 한파는 더 이상 ‘모두에게 공평한 자연현상’이 아니다. 방치되는 순간, 사회적 약자를 먼저 겨냥하는 재난이 된다.
개인의 대비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방한복을 챙기고, 외출을 자제하고, 주변을 살피는 개인의 노력은 분명 피해를 줄이는 데 기여한다. 그러나 개인의 대비는 어디까지나 보조 수단이다. 고령자와 취약계층에게 “스스로 조심하라”는 말만 남기는 순간, 그것은 조언이 아니라 책임의 전가가 된다. 개인의 대응이 작동하기 위해서도, 최소한의 난방·의료·돌봄·정보 체계라는 사회적 토대가 먼저 갖춰져야 한다.
장기 한파 앞에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취약계층의 선제적 보호, 난방비 부담 완화, 현장 점검과 돌봄 공백 해소, 한랭질환에 대한 조기 대응 체계가 동시에 작동해야 한다. 이는 자연을 통제하겠다는 오만이 아니라, 자연의 한계를 인정한 사회의 책임이다.
추위는 자연이 만든다. 그러나 그 추위로 누가 쓰러질지는 사회가 결정한다. 장기 한파를 단순한 계절 뉴스로 소비하는 순간, 피해는 반복되고 사망은 통계로만 남는다. 지금 필요한 것은 자연 앞에서의 겸손이 아니라, 사회적 방치에 대한 단호한 책임 인식이다. 이것이 장기 한파를 사회적 재난으로 바라봐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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