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송천의 디지털 산책] 스테이블이란 착시 …K-코인이 마주한 시험대

  • 규제 없는 안정은 없다

문송천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교수
[문송천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교수]
 
 
비트코인 논문은 2008년 10월에 나왔다. 스테이블 코인이란 개념은 6년 뒤 2014년에 나왔다. 암호화폐가 세간에서 뜨기 시작한 것은 2017년 말이다. 암호화폐 거래가 활성화되면서 기축 통화인 비트코인과 거래소 내에서 거래할 때 달러 대신 사용될 유동성 공급 수단으로서 스테이블 코인에 대한 수요가 늘었다. S코인 업계 1위는 테더다. 말 그대로 코인 가치를 미 달러와 1:1 형태 밧줄로 묶어 둔다(peg)는 취지다. 

담보 자산을 외부 기관에 예치하고 이를 기반으로 코인 발행에 들어가는 안정성을 갖는다. 겉으로는 '1코인=1미화 달러'라는 단순 형태지만 실제로는 다층적인 기술인프라와 금융구조가 얽혀 있다. 그런 연유로 해킹 오작동 제어실패 같은 전산 오류가 발생하면 곧바로 금융 위험으로 발전할 수 있는 취약성을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실물 담보 혹은 실물 자산(국채)만으로도 스테이블 코인은 결코 스테이블(안정적인)하지 않다고 봐야 한다. 그 유명한 사례가 테라라는 미화 기반 S코인이다. 미국에서 형사 재판을 받는 권도형 테라폼랩스 설립자에게 2025년 12월 법원은 자금 세탁 혐의를 추가하면서 15년형을 선고했다. 2022년 사기 사태 직후 해외로 도피한 권 대표는 11개월 만인 이날 몬테네그로에서 위조 여권에 꼬리를 잡히며 체포됐었다.
현재까지 미화 기반 스테이블 코인의 발행 및 구조 자체에 대한 희대의 코인 사기 사건이다. 알고리즘 조작 및 허위홍보의 혐의를 받았다.

2020년부터 테라를 발행하면서 테라 프로토콜이라는 알고리즘을 통해 미화 1달러에 연동하도록 설계했다고 권씨는 주장해왔다. 이 말을 믿은 투자자들 덕분에 테라는 창업 후 1년반에 걸쳐 성장에 성장을 거듭하여 테더와 USD코인 뒤를 이어 세계 3위로 등극했다. 그러나 그 주장과는 달리 달러화 연동에 균열이 생겼다. 2021년 5월 테라 가치가 기준치인 1달러 밑으로 떨어지자 권씨는 테라 프로토콜을 통해 가치가 자동으로 회복됐다고 말했으나 실상은 테라폼랩스와 계약한 투자회사가 테라를 몰래 사들이도록 해 인위적으로 가격을 부양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 결과 대규모 투자자 피해로 이어진 것이다. 테라 사태가 특별히 주목받는 이유는 이렇다. 무엇보다 미화나 국채와 같은 실제 담보 없이 컴퓨터 알고리즘(루나라는 자매 코인과의 연동 메커니즘)만으로 1달러 (peg) 방식을 추구한 알고리즘형 코인으로서 출발부터 위험이 상존했다. 즉 처음부터 아무런 실물 담보도 없이 테라 알고리즘 (무담보)과 루나 알고리즘 (역시 무담보) 간 상호 관계에만 의존하여 작동되는 희한한 구조를 지녔던 것이다. 그러므로 암호화폐 담보형도 아니었다. 기존 암호화폐(예: 비트코인 이더리움 등)를 담보로 잡고 발행되는 구조였다면 그랬겠지만 테라는 이 요건과도 거리가 멀었다.

코인의 설계 구조 자체에 내재된 알고리즘 상의 결함을 투자자나 이용자에게 전혀 알리지 않았다는 점에서도 초장부터 투명성을 잃었다. 투자자들에게 관련 위험에 대해 실시간적으로 공개하지 않거나 달러 대비 1:1 페깅 투명성이 의심시 되기만 해도 투자자들에게 기소되는 판에 테라의 경우는 담보의 실제성조차 갖춰지지 않은 형태로 시작했다는 게 문제였다. 결국 2022년 5월 테라 가격은 물론 루나 가격도 동시에 폭락했고 이는 두 화폐를 사들인 투자자들에게 무려 60조원에 달하는 피해로 고스란히 돌아갔다. 판결에서 사건 피해 금액이 미국 연방 기소 사건 가운데 최대 규모였음이 밝혀졌다. 이게 미국 검찰 조사 결과다. 테라 사태는 스테이블코인의 위험성을 단적으로 보여주었으며 이로 인해 미국 등 주요국들은 스테이블 코인에 대한 규제(미국 GENIUS 법안, 유럽연합MICA법안 및 싱가포르 MAS 법안 등)를 테라 사건이 터진 직후(2023년)부터 도입하는 계기가 되었다.

돌이켜보면 스테이블 코인의 위험성은 기술구조상 다층 형태를 지니고 있어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어디에 어떤 문제가 잠복해 있는지 예측하기 매우 힘들다. 일례로 담보를 은행에 예치하는 구조 역시 전적으로 안전하다고 보기 어렵다. 2023년 3월, 미국 실리콘밸리은행 파산으로 미화 기반 스테이블 코인인 USDC는 한때 0.88달러까지 하락했다. 준비금 보관처도 투명하게 공개하고 24시간 모니터링 체계를 갖추기 전에는 안정적이라고 볼 수 없다. 또 다른 예로 담보 시스템 중앙화도 문제다. 단일 지점 장애 및 파산 리스크를 내포할 수 있는 까닭이다.

한국의 위믹스달러 실패사례가 이의 대표적 사례에 해당한다. 위믹스달러는 미화 기반 100% 담보를 내세웠지만 연쇄적인 브리지(암호화폐마다 채택한 블록체인 기술이 다르므로 2종 이상인 경우 블록체인 연결기술) 해킹을 겪으면서 중앙화된 담보에 대한 접근성이 상실되며 0.6~0.7달러 수준까지 가치가 하락했던 것이다. 또 다른 예로는 실물 담보형을 표방했으나 브리지 붕괴 오류로 인해 환급에 실패하거나 밧줄 이탈(디페깅) 현상이 발생한 사례가 이미 다수 존재하는 것도 간과해서는 아니된다.

이처럼 기술 설계만으로는 방지할 수 없는 리스크가 존재하므로 기술 외적으로 법적·제도적 프레임까지도 치밀하게 병행되지 않으면 안전성 확보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는 게 정론이다. 이런 가운데 우리나라의 경우, 대선 공약의 일환으로 원화기반 스테이블 코인(K-coin)이 조만간 발행될 전망이다. 현재 한국은 가상자산 이용자 자산 보호와 불공정거래행위 규제에 중점을 둔 1단계 입법은 마쳤지만 그 후 무려 1년반이란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K-코인 규제는 정부(금융위원회, 한국은행)와 국회가 함께 추진하는 디지털자산기본법(가칭)이라는 2단계 입법 과제로서 여전히 논의 중이다. 그러나 1단계 입법도 도입시기가 너무 늦어 국회의원 등 여러 공직자들이 불법에 가까운 암호화폐 비행(非行) 투자를 하도록 방치한 얼마 전 사태를 상기한다면 K-코인에서도 규제 공백이 불러일으킬 파장을 예상할 수 있다.

지난해 시행된 가상자산법 1단계 역시 이용자 보호 중심으로 구성돼 있어 해킹 사고가 발생해도 보고 의무조차 부과되지 않은 상태다(연합뉴스 2025년 12월 7일자). 가상자산 2단계 입법 과정에서는 해킹 사고 발생 시 사업자의 배상 책임과 구체적 규제 등을 마련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지만(2025년 12월 14일자) 현재 금융위원회와 한국은행, 양 기관이 K-코인 규제에 관한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는 상태에서 2단계 입법도 표류하게 될 것은 자명하다.

이견이 좁혀지지 않는 부분은 K-코인 발행 주체에 관한 것으로서 은행 독점으로 할 것인지 아니면 비은행사 포함한 개방형 모델로 갈 것인지 양단간에 어떤 것을 택할지 금융위원회와 한국은행 간의 조율이 장기화될 전망이다. 따라서 2단계 입법도 1단계 입법 때와 같은 양상으로 늦어진다면 법적 근거가 부재한 상태에서 암호화폐가 발행되거나 유통될 경우 불법적 발행에 무방비로 노출될 우려가 있다. 더욱이 만일 대규모 발행사가 부실해져 K-코인 가치가 1원 아래로 급락하는 디페깅 현상이 발생하면 대규모 코인 인출사태가 발생하여 금융 시스템 전체로 불안이 전이될 우려도 있다. K-코인은 미화 기반 스테이블 코인과 달리 통화 가치가 한국의 원화에 고정되어 운영된다. 따라서 K-코인이 만일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통화(법정화폐)를 대체할 정도로 광범위하게 사용된다면 금리 조절이나 공개 시장 조작 등을 통해 통화량을 통제하는 한국은행 자체의 능력이 약화될 수 있다.

또 다른 위험은 민간이 발행한 코인의 발행 및 소멸이 중앙은행의 통화 정책 경로를 우회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렇게 된다면 한국은행 고유의 통화 주권이 훼손되고 심각하게 도전 받는 상황이 전개될 수도 있다. 이런 형국이 벌어진다면 한국은행이 통화 주권을 이유로 비은행권의 K-코인 발행을 강력히 제한하고 은행 독점 구조를 유도할 경우 핀테크 및 테크 기업의 혁신이 봉쇄될 가능성도 있다. 이런 면에서 보면 K-코인은 빠른 결제 수단일 수는 있겠으나 통화 정책이나 금융 안정성에 미치는 영향에서 미화 기반 스테이블 코인에 비해 취약한 구조라고 봐야 한다. 국경 간 거래에서 K-코인의 사용이 증가할 경우에는 기존의 은행 채널을 통하지 않는 투기적 성격의 외국 자본 유출입이 증가할 수도 있다. 이는 외환 당국의 자본 유출입 통제를 어렵게 만들고 환율 변동성을 확대하여 거시 경제 안정성을 해칠 수 있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코인 분야에서 발생한 테라 사태나 김남국 사태의 공통점은 입법 미비라는 규제 공백을 틈타 벌어진 희대의 사건이었다. 금융위와 한은 간 권한 쟁탈이 장기화된다면 입법 공백을 노린 변종 사건, 즉 제2의 테라 사태나 제2의 김남국 사태가 벌어지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그러므로 2단계 입법에 있어서 한국은행과 금융당국 간의 명확한 역할 분담이 무엇보다 선행돼야 한다.

미국 GENIUS 법안에 의하면 암호화폐 발행 감독 구조는 단순히 연방독점 대 주정부 자율 방식의 이분법이 아니라 연방정부가 일관된 최소 기준을 설정하는 큰 그림을 그리고 대형 참여자에 대해서는 연방 감독이 이루어지고 소규모 발행 참여자에게는 주정부 감독을 허용하되 연방 기준과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협력적 접근을 취한다. 한 발행주체가 성장해 100억 달러를 넘는 스테이블 코인을 발행하게 되면 주정부 감독에서 연방 감독 체계로 전환하는 것이 역할 분담의 큰 틀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권한 대립에 매몰되지 말고 이런 방향의 협력적 관계 설정으로 풀어 나감으로써 절대로 좌실양기(坐失良機) 우를 범하지 말기 바란다.


문송천 필자 이력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교수 ▷미국 일리노이대(어바나 샴페인) 전산학 박사 ▷유럽IT학회 아시아 대표이사 ▷대한적십자사 친선홍보대사 ▷카이스트·케임브리지대·에든버러대 전산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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