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기고] 케데헌4-종묘의 비밀

  • 황정일 SBA 대외협력이사

황정일 SBA 대외협력이사
황정일 SBA 대외협력이사
어스름이 여명을 누르고 있는 오전 7시. 종묘 앞이 북새통이다. 개장 시간을 늘려 달라는 지구촌 세계인의 요구에 따라 종전 9시였던 관람 개시 시간이 2시간 앞당겨진 것은 한 달 전 일이다. 유네스코와 세계관광협회의 거센 항의(?)의 결과다.
 
 모여든 사람들도 다양하다. 각양각색의 피부색이 인종이 망라됐음을 웅변했다. 국가 또한 만국박람회 모양새다. 종묘광장공원에 꾸불꾸불 이어진 장사진(長蛇陣)은 조선의 군진(軍陣)을 방불케 한다.
 
 3개월 전 일이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오랜 침묵을 깨고 시리즈 4(Four)로 거듭났다. 이름하여 케데헌4-종묘의 비밀. 첨단과 전통이 공존하는 종묘와 일대 고층 건물이 주 배경이다.
 
 내용은 이렇다. 신구(新舊) 세대 갈등이 바늘 끝처럼 뾰족해진 오늘날이다. 누구든 마음에 안 들면 서로 찌르고 쉽게 피를 본다. 종묘 앞 15개 고층 빌딩에 거주하는 ‘첨단신(神)’이 신세대의 뒷배다. 전통을 부정하고 구질서와 관습을 경멸한다. 꼰대 박멸이 구호다. 구세대의 도우미는 종묘 정전에 기거하는 19신(神)이다. 젊은 놈(?)들의 말투와 머리 옷 스타일 어느 하나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다. 모든 것을 싸가지 없음으로 규정한다. 세상은 대립과 갈등으로 점점 더 헐벗고 춥다. ‘행복의신(神)’은 지구를 포기하려 한다. 와중에 종묘 정전 19신 중 세종신(神)이 영녕전의 15신과 17왕후신의 도움으로 신구 세대 갈등과 대립을 해소하고 세상에 행복을 되찾아 준다는 이야기다.
 
 케데헌 시리즈2, 3는 심심했고 반응은 시큰둥했다. 시리즈1의 명성만 믿고 졸속 제작한 결과다.
 4(Four)는 달랐다. 영화 개봉 1달 만에 세계는 뒤집어졌다. 반목과 질시, 갈등이 만연한 지구촌에 적절하고 절실한 메시지가 노래와 영상으로 세계인의 가슴에 들이꽂혔다.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 7곡이 빌보드를 휩쓸었고 10주 이상 정상에서 내려오기를 거부했다.
 
 배경 선정이 신의 한 수였다는 평가다. 세운상가를 철거하고 고층빌딩을 올리는 건 세계문화유산의 훼손이다. 아니다, 전통과 첨단의 조화로운 얽힘이다. 케데헌4의 제작진은 후자(後者)의 손을 들어줬다. 수년간의 논쟁 끝에 완성된 종묘 일대의 고층 건물이 제작 의도와 안성맞춤이었던 거다. 결과는 초대박이었다. 1이 세계인의 관심을 끌었다면 4는 지구촌을 들었다 놓은 격이랄까. 지구촌 곳곳에서 동양의 파르테논 신전인 종묘를 보러 오는 행렬이 끊이질 않았다.
 
 일본 관람객도 엄청 늘었다. 용서를 구하기 위해서다. 임진왜란 당시 한양을 점령한 왜군이 종묘에 주둔했는데 밤마다 곡소리와 괴성이 들리고 병졸들이 정신착란, 비명횡사하는 일이 속출했다. 종묘의 신령(神靈) 때문이라 믿은 왜장(倭將) 우키타는 종묘를 불태우고 주둔지를 옮겼다는 사실이 기록으로 남아 있다. 조상의 과오가 일본인의 호들갑을 부추긴 거다. 아이러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지 40여 년. 종묘에 이런 난리는 처음이다. 일사후퇴 때의 난리는 난리도 아니란다. (일사후퇴 : 한국전쟁 당시 1951년 1월 4일 정부가 수도 서울을 포기하고 철수한 일)
 
 15개 고층 건물 사이를 정글 속 타잔처럼 넘나들며 악인을 물리치는 스파이더 맨16 때도 반응이 이렇진 않았다. 톰 크루즈의 아들 코너 크루즈가 주연을 한 미션임파서블10-다른 공간에서(Another Space)의 여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지구촌이 서울을 주목하고 세계인이 종묘 일대의 조화를 추앙하는 분위기가 퍼져 솟구친 거다.
 
 고색창연(古色蒼然)한 종묘와 최첨단 고층 건물이 조화롭게 펼치는 ‘문화 리딩(Leading)’의 기운이 느껴지는 2036년 12월 서울의 겨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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