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시사평론가]
경주 APEC 기간이던 지난 달 30일 이재명 대통령과 다카이치 사나에 신임 일본 총리가 한일 정상회담을 가졌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 중국 시진핑 주석에 밀려 언론의 큰 주목을 받진 못했지만 한국과 일본 모두 갓 출범한 새 정부이기에 양국 정상회담 분위기도 적잖은 관심을 모았다. 게다가 다카이치 총리는 ‘여자 아베’로 불릴 정도의 극우 인물이다. 그래서 첫 대면일지라도 자칫 한일 관계에 ‘돌발 변수’가 불거질 수도 있기에 우리 정부도 합당한 준비를 하고 정상회담에 임했던 것으로 보인다. 정상회담 이후 이재명 대통령이 “걱정을 안 한 것은 아니었지만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눠보니 한일 관계에 기대를 해도 될 것 같다”고 말한 것도 이런 배경이다.
그러나 다카이치 총리는 우리나라에 대해서 부정적이며 거친 말을 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게다가 정치 역량이나 외교적 자질도 논란이 많을 뿐더러 당내 기반도 취약하기 때문에 만날 때는 진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경주 APEC을 앞둔 지난 달 21일 취임 후 첫 기자회견에서 자신은 한국 화장품을 쓰고 있으며 한국 김을 좋아하고 한국 드라마도 본다는 등의 발언에 비중을 둬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겉으로는 특유의 눈웃음을 보이지만 속내는 ‘극우의 본성’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특히 일본 정치가 빠른 속도로 극우화되는 현실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그 상징이요, 대변자일 가능성이 높다. 시류에 업혀 갈 수밖에 없는 인물이기에 쉬 신뢰하기가 어렵다.
지난 한일 정상회담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한일 관계를 미래지향적이고 안정적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양국을 위해 유익하다고 말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지극히 의례적인 발언이며 진정성 있는 단어는 하나도 덧붙이지 않았다. 본색은 얼마 뒤 그대로 드러났다. 우리 공군의 특수비행팀 블랙이글스가 아랍에미리트 두바이 에어쇼 참가를 앞두고 오키나와 나하 기지에서 중간 급유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지난번에는 대만에서 중간 급유를 했지만 일본 오키나와 기지를 이용하면 시간과 비용을 더 아낄 수 있기에 양국이 협의를 해왔으며 일본도 동의한 내용이다. 하지만 경주 APEC에서의 한일 정상회담 직전인 지난달 28일 일본 정부가 전격적으로 취소 입장을 밝혔다. 블랙이글스 항공기가 독도 인근에서 훈련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결국 블랙이글스의 두바이 에어쇼 참가는 무산됐다. 그럼에도 다카이치 총리는 이재명 대통령 앞에서 ‘미래지향적’ 운운하며 시치미를 뗐다.
다카이치 총리가 지난 7일 일본 중의원 예산위에서 밝힌 내용 가운데 하나 더 관심을 끄는 대목이 있다. 대만 유사시 대응과 관련해 다카이치 총리는 중국이 전함을 사용해 무력이 행사된다면 ‘존립위기 사태’가 될 수 있다고 답했다. 이럴 경우 일본도 무력으로 집단 자위권을 행사하겠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경우 일본도 미국과 함께 무력으로 분쟁에 개입하겠다는 뜻이다. 사실 미국도 대만 문제와 관련해서는 ‘전략적 모호성’ 입장을 지켜왔다. 하지만 일본 현직 총리가 대만 문제에 대해 이처럼 명확하게 입장을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일본 정부가 그동안 숨겨왔던 ‘속내’를 드러낸 것이다. 당연히 중국 정부는 크게 반발했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발언의) 성격과 영향이 극도로 나쁘다’고 비판했다. 주오사카 쉐젠(薛劍) 총영사는 ‘더러운 목을 벨 수밖에 없다’는 극언까지 내놓았다. 이런 상황이라면 당분간 중일 관계가 진전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다카이치 총리의 대만 문제 발언에 대해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화답은 참으로 묘하다. 지난 10일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일본의 집단 자위권 행사와 이에 대한 쉐젠 총영사의 참수 얘기가 나오자 트럼프 대통령은 외려 중국 편을 들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보다 (한국과 일본 등) 미국 동맹국들이 무역에서 우리를 더 이용했다”며 동맹국들은 더 이상 미국의 친구가 아니라고 답했다. 물론 트럼프 대통령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지만 이 판국에 한국과 일본 등 전통적 동맹국들을 중국보다 더 부정적으로 표현한 것은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이제 미국은 과거의 미국이 아니다. 그럼에도 트럼프 대통령 옆에서 춤을 추던 다카이치 총리의 가벼움은 두고두고 회자될 것이다. 우리에겐 트럼프 대통령의 냉소와 무관심도 위험하지만 다카이치 총리의 가벼움은 더 위험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지난 9일 치러진 일본 도쿄도 지방의회 선거에서 극우 참정당이 또 약진했다. 지난 7월 참의원 선거에서 돌풍을 일으킨 기세가 여전해 보인다. 여기에 더해서 다카이치 총리의 극우 행보도 점점 본색을 드러내고 있다. 여기에 일본 청년층의 지지가 새로운 동력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일본 정치의 극우화가 어디까지 갈지 가늠하기 어렵다. 일본 정부가 견지했던 ‘비핵 3원칙’도 폐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다시 나오고 있다. 평화헌법 개정에 대한 목소리도 더 커질 것이다. 우리는 물론 중국을 향해서도 거침없는 다카이치 총리의 행태를 절대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가볍고 무지하다는 평가는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다카이치 총리 뒤에 숨어있는 일본 극우 세력의 본색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다카이치 총리는 그들을 대변하는 상징이기에 더 위험하다. 실용도 좋지만 부디 냉철하게 접근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필자 주요 이력
△시사평론가(현) △인하대 대학원 정치학 박사 △인하대 정책대학원 초빙교수(전)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선거방송심의위원(전) △혁신과미래연구원 원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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