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낭기의 관점] 미국·독일의 실패에서 배우지 못한 '사법 개혁'

조희대 대법원장왼쪽과 천대엽 법원행정처장이 지난달 1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하고 있다 20251013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조희대 대법원장(왼쪽)과 천대엽 법원행정처장이 지난달 1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하고 있다. 2025.10.13[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대법관 증원·재판소원 추진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는  ‘사법 개혁’을 놓고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대법원 무력화 내지 길들이기가 아니냐는 논란이다. 국회 다수 권력으로 사법부를 장악하려는 의도라는 주장도 나온다.  과거 미국과 독일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다. 하지만 모두 실패로 끝났다. 민주당이 되돌아볼 만하다.  

민주당이 추진하는 사법 개혁안의 핵심은 대법관 증원과 사실상의 4심제인 재판소원 제도의 도입이다. 현재 대법관은 대법원장을 포함해 14명이다. 민주당은 대법관을 이보다 12명이 많은  26명으로 늘리겠다고 한다. 법 시행 이후 2029년까지 3년 동안 매년 4명씩 순차적으로 늘린다는 것이다. 이 경우 신임 대법관 12명은 모두 이재명 대통령이 임명하게 된다. 이 대통령 임기 동안 기존 대법관 10명이 임기(6년) 만료나 정년(70세)으로 퇴임한다. 이 대통령은 이들의 후임 대법관도 임명한다. 결국  이 대통령 은 임기 동안  대법관을 총 22명 임명하게 된다. 

대법원은 대법관 사이에 의견이 갈리거나, 기존 대법원 판례를 변경할 필요가 있을 때는 전체 대법관이 심리에 참여하는 전원합의체 판결을 한다. 전원합의체는 다수결로 결정한다. 이 대통령이 임명하는 대법관이 절대 다수이니 이 대통령 정권이 사실상 대법원을 장악하게 된다. 사법부 독립성이 흔들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주장은 그래서 나온다. 

재판소원은 판결도 헌법재판소의 재판 대상으로 하는 제도이다. 공권력으로부터 기본권을 침해당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할 수 있다. 헌재가 그 공권력이 기본권을 침해해 위헌이라고 결정하면 그 공권력은 무효가 된다. 법원 판결도 공권력의 하나이지만 지금은 헌법소원 대상에서 제외돼 있다. 그런데 민주당은 판결도 헌법소원 대상으로 하겠다고 한다.

이 제도가 도입되면 대법원 판결도 헌재에서 무효가 될 수 있다. 법원이 재판에서 적법절차를 어기거나, 국민 기본권을 침해했다고 인정되는 때이다. 그러면 대법원은 재판을 헌재 결정에 맞춰 다시 해야 한다. 사실상의 4심제가 된다.  대법원의 최고 법원으로서의 독립적 기능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    

민주당의 이 같은 사법 개혁 추진은 정치 권력이 사법부의 독립성을 침해하는 것 아니냐 하는 점에서 과거 미국과 독일의 사례를 연상케 한다. 미국에서는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1930년대에 뉴딜 정책을 펴는 과정에서  보수 우위 연방대법원이 정책에 제동을 건다고 대법관 구성을 바꾸려 했다. 당시 연방대법원 대법관 9명 중 5~6명이 보수 성향으로 꼽혔다. 이들은 다수결을 통해 13개월 동안 뉴딜정책 관련 법안 최소 16개에 위헌 판결을 했다.  

루스벨트는 대법원이 자신의 개혁 정책을 의도적으로 방해한다고 판단하고 분노에 차 대법원 개혁에 나섰다. 1937년 ‘대법원 확장법’이라는 개혁 법안을 의회에 보냈다. 핵심은 대법관 재임 기간이 10년 이상 되고 70세가 넘은 대법관이 은퇴하지 않을 경우 대통령이 기존 대법관 1명당 새 대법관 1명을 추가로 임명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다만 추가 임명할 수 있는 대법관 수는 최대 6명으로 제한했다. 이리 되면 대법관 정원은 기존 9명에서 최대 15명으로 늘어나게 된다.  

연방대법관은 종신직이라 자발적으로 은퇴하지 않으면 공석이 생기지 않는다. 그러면 루스벨트가 새로운 대법관을 임명할 기회가 없다. 이에 루스벨트는 뉴딜 정책을 지지할 만한 새 대법관을 임명할 수 있게 하려고 이런 법안을 구상한 것이다. 루스벨트는 고령 판사들의 과중한 업무 부담을 줄이고 사법 효율성을 높인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하지만 실제로는 신임 대법관 임명을 통해  보수 우위 대법원을 진보 우위로 바꿔 뉴딜 정책을 안정적으로 추진하고자 했다.  

미국과 독일, 사법부 장악 시도하다 무산

그러나 거센 비판과 사회적 논란에 부딪쳤다. 의회는 물론이고 언론과 법조계, 일반 여론이 모두 루스벨트의 개혁안에 반대하고 나섰다. 심지어 여당인 민주당 내부에서조차 반발이 나왔다. 이들은 개혁안이 사법부 독립성을 침해하는 것으로 간주했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법안을 가로막은 사람이 루스벨트가 속한 민주당 소속의 상원 법사위원장이라는 점이다. 그는 청문회를 지연시키며 165일 동안이나 법안 처리를 미뤘다. 그는 "서두르지도, 조급해하지도 말고, 낭비하지도, 걱정하지도 마라. 이것이 이 위원회의 좌우명이다"라고 말했다. 법안은 결국 의회에서 통과되지 못하고 무산되고 말았다.    

캘리포니아대학교 샌디에이고 캠퍼스의 역사학 교수인 마이클 패리시(Michael E. Parrish)는 자신의 책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법원 확장 법안을 둘러싼 장기간의 입법 투쟁은 추가 개혁의 동력을 둔화시켰고, 뉴딜 연합을 분열시켰으며, 루스벨트가 1936년 선거에서 얻었던 정치적 이점을 헛되게 했고, 그를 독재, 폭정, 파시즘으로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탄약을 제공했다.” 

독일에서는 콘라드 아데나워 총리가 독일 재무장을 앞두고 연방헌법재판소 재판관을 줄이려 했다. 아데나워는 미국과 소련을 필두로 한 동서 진영 간 냉전이 격화되던 1950년대에 독일 재무장을 들고 나왔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가입하고, 연방군을 창설하려 했다. 그러나 독일 내에서는 재무장 반대론이 컸다. 나치 시대 같은 군국주의가  다시 살아날 수 있고, 동서독 분단을 영구화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런 상황에서 아데나워는 연방헌법재판소가 재무장의 합헌성을 문제 삼지 않을까 우려했다. 아데나워는 연방헌법재판관들 중 다수가 문제 삼을 가능성이 있다고 여겼다. 이에 아데나워는 그럴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재판관들을 축출하려고 했다. 임기 단축 등의 방법으로 24명인 재판관 숫자를 줄이는 방법을 구상했다. 그러나 실패했다. 재판관 임기 문제를 정략적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여론 때문이었다. 독일은 후에 재판관 수를 16명으로 줄이긴 했지만 이는 정치적 고려가 아닌 행정적, 사법적 고려에서였다. 1970년에는 정치가 재판관 임기에 관여할 여지를 없애기 위해 재판관 임기를 12년으로 못박았다. 

 더불어민주당은 대법원 상고 사건이 너무 많아 재판이 지연되고 있어 대법관을 증원하려 한다고 말한다. 국민들이 대법원의 신속한 재판을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한다. 그러나 사건 수가 많아 재판이 지연되는 곳은 1심과 2심이지 대법원이 아니다. 법원행정처 자료에 따르면, 민사 사건의 경우 1년 6개월~2년씩 재판이 끝나지 않고 계속되는 장기 미제 사건이 대법원은 2021년 652건에서 2024년 242건으로 감소했다.

그러나  같은 기간 1심은 5873건에서 8245건으로 늘었고, 2심도 2200건에서 3323건으로 증가했다. 형사 사건의 경우도 대법원은 받은 장기 미제 사건 피고인 수가 2023년 175명에서 작년 149명으로 15% 감소했다. 반면 1심은 2023년 4583명에서 작년 4223명으로 소폭 줄었다가 올해 상반기 4526명으로 다시 늘어났다. 2심도  442명(2023년), 358명(2024년), 376명(올해 상반기)으로 비슷한 추세를 보였다.

사법부 독립성 무너지면 권력 견제 불가능

민주당은 재판소원 제도 도입은 국민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국민들이 잘못된 재판으로부터 피해를 받으면 헌재에서 구제받을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재판소원이 도입되면 사실상 4심제가 된다. 그러면  3심제에도 만족하지 못하고 너도 나도 헌재로 달려갈 가능성이 크다.  재판 기간이 더 늘어나고, 변호사 선임료 등 소송 비용도 덩달아 늘어난다. 헌법 제101조 ①항과 ②항은 각각 ‘사법권은  법원에 속하고’  ‘최고법원은  대법원’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사법권이란 재판권을 말한다. 헌재가 4심을 맡게 되면 위헌 논란이 벌어질 수도 있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대법관 증원과 재판소원 제도 도입을 이 대통령의 퇴임 후 사법 리스크를 없애기 위한 의도라고 주장한다.  이 대통령은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을 비롯해 대장동, 대북 송금, 백현동 등 5개 사건 12개 혐의로 기소됐다. 대통령 당선 뒤 재판이 중지됐지만, 법적으로 따진다면 퇴임 뒤 재판은 피할 수 없다. 대법관을 증원할 경우 대법관 다수가 정권과  코드가 맞는 인사로 꾸려질 가능성이 크다. 정권을 불문하고 코드 인사가 횡행한 그간의 경험에서 쉽게 예상할 수 있다. 그런 대법원이 현 정권 또는 이 대통령에게 불리한 재판을 하겠느냐고 의심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만약  대법원에서 불리한 재판이 나온다면  또 한번의 기회가 있다. 재판소원이다. 대법원이 적법 절차를 어기거나 법률 해석을 잘못해 기본권을 침해했다며 헌법소원을 청구할 수 있다. 이게 헌재에서 받아들여지면 대법원 판결이 무효가 될 수 있다. 이러니 대법관 증원과 재판소원 도입이 이 대통령을 위한 이중삼중의 안전장치가 아닌가 하는 의심을 살 만도 하다. 

정치 권력은 사법부가 걸림돌이 된다고 여기면 어떻게 해서든 사법부의 힘을 빼려고 한다. 명분은 다 그럴듯하다. 그러나 속셈이 뭔지는 뻔하다. 권력이 사법부를 장악하면  삼권분립은 지켜질 수 없다. 삼권분립이 무너지면 국회 다수당과  대통령 권력을 견제할 최소한의 둑마저 무너진다. 미국과 독일은 그 둑을 끝내 지켰다. 사법부 독립성이라는 가치를 지켰다. 우리는 지금 그 반대의 길로 가고 있다.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정치학과ㆍ 대학원 정치학 석사 ▶조선일보 논설위원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본부장 ▶원주 한라대 특임교수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댓글0
0 / 300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